창덕궁 대조전. 왕비의 침전이자 왕이 집무를 보던 부속건물들이 복도로 연결돼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황후의 치마속에 숨겨진 옥새1904년 8월 22일.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에서 순종은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전회의라고는 하지만, 총리대신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이 황제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에 서명을 요구하며 사실상 노골적인 협박을 해대는 자리였다.
이미 군권과 치안권이 일본에 넘어가, 껍데기 밖에 남아있지 않은 대한제국이었지만, 국권을 통째로 넘기는 병합조약에는 순종도 차마 서명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순종이 끝까지 동의하지 않자, 총리대신 이완용이 대신 서명에 나섰다.
매국노 이완용. 총리대신으로 순종황제 대신 합방조약에 서명했다.
매국노 이완용은 조약서에 찍을 옥새를 찾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옥새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옥새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순종의 부인 순정효황후였다.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던 황후는 대신들이 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치마속에 옥새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무례한 대신들이지만, 황후의 치마속을 뒤질 수 는 없는 노릇.
결국 친일파였던 황후의 숙부 윤덕영이 나서 황후가 숨겨 놓은 옥새를 강제로 빼앗았다.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녀린 저항이었다.
그리고 6백년을 내려온 조선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왕을 독살하라! 가비(咖啡)
가비(咖啡)는 커피의 중국식 발음을 한자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지난해 고종암살사건을 주제로 같은 이름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아내인 명성황후를 일본인의 손에 처참히 잃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 나온 고종은 유명한 커피마니아였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가비'. 고종황제 독살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홈페이지 캡쳐)
그런데 커피로 인해 고종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고종의 총애를 받던 러시아 통역관 김홍륙은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들통나자, 앙심을 품고 고종을 독살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방장을 매수한 김홍륙은 고종과 황태자가 마실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타기에 이른다. 하지만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고종은 커피에서 다른 맛이 느껴지자 곧바로 내뱉아 위기를 모면했지만, 황태자였던 순종은 모두 마셔버렸다.
정작 암살대상자였던 고종황제 대신 아들인 순종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 사건으로 순종은 겨우 목숨은 부지했지만, 치아 대부분을 잃어버렸고, 숨질 때 까지 병약한 몸으로 살아야했다.
건강을 잃고 국권마저 빼앗긴 순종은 한일합방이후 16년동안 창덕궁에 사실상 감금되다시피 살다, 대조전에 숨을 거뒀다.
순종의 유언은 차라리 한 맺힌 절규이다.
“지난날 병합의 인준은 일본국이 제멋대로 만들어 선포한 것이다...나는 종사의 죄인이고 이천만 백성의 죄인이 되었다... 이 한몸 꺼지지 않은 한 이를 어찌하여 잊을 수 있겠는가..노력하여..광복하라... 광복하라..”
이같은 간절함이 백성들에게 전해진 탓인가. 3.1 만세운동이 고종의 장례식날 촉발됐듯, 순종의 장례식은 6.10만세운동을 불러왔다.
▲잠자리마저 편하지 않았던 조선의 왕대조전(大造殿)은 경복궁 교태전과 같은 왕비의 침전(寢殿)이다. 대조(大造)는 큰 공(功)을 세우거나, 위대한 일을 한다는 뜻이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크게 만든다’인데, 미뤄 짐작 할 수 있듯이 자녀 특히 왕자의 생산을 많이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왕과 왕비의 이른바 ‘합궁’은 부부간에 사랑을 나누는 에로틱한 행위가 아니다. 사실상 공개된 곳에서 이뤄지는, 그야말로 왕자의 생산을 위한 일종의 ‘의례’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