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김갑수 주연의 '공범'은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영화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긴장의 끈을 이어가는 스릴러의 장르적 특징을 살려 공소시효(일정기간이 지나면 해당 범죄에 대한 형벌권을 없애는 제도)의 맹점을 줄기차게 파헤치는 한편, 무의식적으로 비뚤어진 사회의 공범이 돼 버린 이들의 침묵과 외면을 침착하게 비추는 까닭이다.
1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채진 군 유괴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15일 앞둔 현재, 이 사건을 다룬 영화를 보던 기자 지망생 다은(손예진)은 극에 삽입된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빠 순만(김갑수)을 떠올린다.
범인이 순만의 입버릇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까지 내뱉자 다은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그렇게 다은은 아빠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순만의 행적을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없이 다정한 줄로만 알았던 아빠의 놀라운 과거를 알게 된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축은 사랑하는 아빠를 의심하는 다은과 오직 딸을 위해 살아 온 아빠 순만이다.
상영 시간 90여 분 동안 다은 역의 손예진이 공포 ,분노, 오열과 같은 극단의 감정을 오가며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면, 순만 역을 맡은 김갑수는 차분하고 절제된 연기로 자칫 신파로 흘렀을 법한 극에 균형감을 불어넣는다.
흥미로운 점은 두 배우가 펼치는 극과 극의 연기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독특한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한쪽은 계속 던지고, 다른 한쪽은 계속 받아주던 평화가 깨지는 순간 엄습하는 낯선 공포. 김갑수의 연기는 이 한 순간을 위해 내내 참고 또 참아 온 듯한 인상을 준다.
이렇듯 이 영화는 관객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현란한 앵글이나 편집보다는,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에 기대어 끈덕지게 '자,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라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간다.
극중 얼마나 끔찍하고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나는지도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게 그거였어?"라고 극장을 나오며 왁자지껄 뱉어내고 나면 깨끗이 사라질 그런 반전 말이다.
'한채준 군 유괴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빠인가 아닌가'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영화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정의, 윤리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러나 버린 비뚤어진 우리 사회의 윤곽을 드러낸다.
공소시효 만료 전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 탓에 무리한 수사를 벌이는 경찰들, 아빠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면서 범죄자의 딸로 낙인 찍힌 다은을 외면하는 친구들,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갈까 걱정하면서 다은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담당 교수의 모습들이 그렇다. 자식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을 드러내는 아버지들의 모습까지도.
공교롭게도 최근 출간된 표창원 박사의 인터뷰집 '공범들의 도시'는 제목은 물론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영화 공범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는다. 표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반인륜적 범죄는 아무리 자기가 오랜 시간 동안 자책하고 고통받고 그랬다고 하더라도 죗값을 치렀다고 볼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인권유린적 범죄나 살인, 아동 대상 범죄나 성폭행 등은 공소시효를 안 두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고민이 없었던 거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개개의 국민, 특히 범죄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과 그에게 안겨진 피해들에 대해서 국가 단위에서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오직 행정 편의만 생각해 왔던 거죠. 일률적으로 그냥 형량별로 뚜루룩 공소시효를 정했는데요. 그것도 일본 것을 베낀 거예요. 식민 형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