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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송강호 조정석 이정재 '관상', 관상가의 영웅담? 장렬한 패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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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 한재림 감독 연출

관상 포스터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은 관상으로 살인범을 잡아낸 뒤 어느 밤 알수 없는 무리에 의해 납치를 당한다. 서늘한 검에 목이 잘려지기 직전 깊은 우물 속으로 빠진 내경.

화면이 전환되면 엄청난 크기의 먹구름이 내경의 눈앞에 펼쳐지고 압도당한 그는 거센 모래바람에 몸을 휘청인다. 극초반 내경이 자신도 모르게 거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치 풍경처럼 지나갈 뿐이나 영화 '관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이 영화는 관상을 소재로 했으나 인간이 관상대로 사는지 따지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관상가 내경의 영웅담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커다란 먹구름이 몰고온 비바람에 온몸이 흠뻑 젖는 내경의 이야기다. 주연배우 송강호의 표현을 빌면 "내경의 장렬한 패배담"인 이 영화는 한 개인이 거대한 역사의 물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관상은 관상가 내경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선왕조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1453년)을 주요사건으로 다룬다.

계유정난은 병약한 문종이 젊어서 세상을 떠나면서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오른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임금(세조) 자리에 오른 사건이다.

내경은 허구적 인물이나 수양대군과 문종의 정치적 후견인인 김종서는 역사적 실존인물로 관객은 내경과 내경 주변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몰락한 사대부가의 자손인 내경은 하나뿐인 아들 진형(이종석), 친구같은 처남 팽헌(조정석)과 함께 깊은 산속에 칩거하다 어느 날 장삿속에 자신을 찾아온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을 받고 다시 집안을 일으킬 마음으로 한양에 입성한다.

우연히 관상으로 살인범을 찾아낸 그는 장안의 유명인으로 떠오르고 권력의 실세인 김종서(백윤식)의 눈에 띄어 인재를 발굴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하지만 문종 붕어 이후 수양대군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지면서 내경의 가족은 목숨이 오가는 위기에 처한다.

내경이 저 촌구석에서 한양으로 입성해 이름을 날리고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는, 시쳇말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과정을 그린 전반부는 경쾌하다.

송강호와 조정석의 찰떡 궁합은 기대이상으로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고, 둘을 이용해먹는 연홍을 능청스럽게 연기한 김혜수의 매력도 볼거리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한시간 뒤 수양대군(이정재)이 등장하면 영화는 전반부의 경쾌함을 벗고 무겁고 심각해진다. 피빛 역모가 꾸며지고 그걸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은밀하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냥을 즐기는 수양대군이 전국의 관상가를 모아놓고 자신이 왕이 될 관상인지 묻는 장면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수양대군과 김종서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 김종서를 선택한 뒤 역모를 저지하기 위해 내경이 생각해낸 묘책은 실제 고증과 무관하게 영화적 상상으로서 흥미롭다.

더불어 관직에 오르면 화를 입을 상이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무시하고 이름을 빌려 과거시험에 급제한 내경 아들의 행보는 왠지모를 아슬아슬함을 자아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상반기 '신세계'로 재발견된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은 젊은 남자의 야심을 드러내며 화면을 장악한다. 위엄이 느껴지는 백윤식은 그 자체로 강직한 김종서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조정석은 '건축학개론' 납뜩이를 웃도는 웃음을 주면서 후반부서 농밀한 정극연기로 사건을 반전시킨다. 무엇보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있게 대놓고 주인공 행세를 하지않는 송강호의 연기가 특히 일품이다.

기존 사극과 다른 세트나 의상 등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전반부는 무채색이 주를 이루며 색을 자제하다 내경이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색깔로 변화를 준다.

원색 사용을 자제한 탓에 연홍 등 기생들이 입는 한복은 검정색과 보라색으로 어두운 색이 주를 이룬다. 대신에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스타일로 개성을 부여했다.

제작진이 북한을 제하고 다갔다고 자신할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이뤄진 로케이션은 기존 궁 세트 중심의 사극에서 벗어나고자 한 관상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다만 관상이란 소재에 매달리면 이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관상대로 산다는 말인가라고 의문부호를 달수 있을텐데, 이 영화는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더불어 계유정난에 대해서도 수양대군을 포악한 인물로 그리나 동시에 야망이 큰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하면서 수양대군과 김종서 딱히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내경을 중심으로 여럿인물들을 가만히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내경 주변 인물들이 비슷한 비중으로 살아움직이면서 그게 상업적 약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상영시간도 139분으로 긴 편이다.

한재림 감독은 노컷뉴스와 만나 "'패왕별희'나 '마지막황제'처럼 역사 앞에 무너진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좋은' 사극이 아닌가"라며 "큰 흐름 속에서 페이소스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한 "관상이나 계유정난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역사 앞에 개인의 삶은 무엇인가, 그 개인의 역사는 무엇인지 그리고 큰 역사 앞에서 당장의 승자나 패자가 무슨 의미인지 묻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한편 '강철심장' 수양대군은 재위 14년 만에 몹쓸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불교에 귀의해 속죄했다. 죽기 며칠 전에는 계유정난에 관계돼 귀양가거나 종이 된 사람들 수백명을 풀어줬다. 15세 관람가, 139분 상영,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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