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수지 하지/마로니에북스
과거에는 미술가를 평가할 때 종이나 캔버스에 실제 세계를 충실히 모방하고, 나무나 돌로 인물을 실감나게 만드는 기술적 능력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사진이 발명되면서 미술가들은 실물과 닮게 그리는 것을 중단했다. 대신 주제에 대한 감정표현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옛 화가들이 공 들였던 세부묘사는 단순한 선으로 대체됐는데, 당시 평론가들은 테크닉의 부재를 지적하며 이러한 그림을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의 그림일 뿐이라고 조롱했다.
신간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는 이러한 현대미술이 아이의 장난과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1936년 석고로 만든 '바닷가재 전화기'라는 기이한 작품을 보자. 바닷가재와 수화기를 기묘하게 결합시킨 이 작품의 시각적 효과는 상당히 놀랍다. 책은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강한 반응의 유발을 의도했던 이 작품은 바닷가재의 성기가 말하는 사람의 입에 맞춰지도록 설계되었다. (중략) 결과물은 달리의 대단한 자신감이 반영된, 성가시면서도 불안하게 하는 오브제다. 달리의 이 작품은 일상의 사물에 대한 재기 넘치는 장난이며, 성과 음식의 연관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여준다. (12, 13쪽)'
달리는 기상천외한 행동과 작품으로 20세기 미술계에 흥미로운 족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환각상태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바닷가재 전화기를 만들 때도 "식당에서 구운 바닷가재를 주문했을 때 단 한 번도 구운 전화기를 내오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니 달리의 독특한 정신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달리에 대해 이 책은 이러한 인물평을 내놓는다. '1939년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추방당한 달리는 엘자 스키오파렐리와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사람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회화, 조각, 판화, 영화, 패션, 광고 분야에서 초현실적인 작품을 계속 만들어냈다. 부단한 그의 자기계발은 천재로서의 화가라는 개념을 강화했다.'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는 달리의 바닷가재 전화기를 비롯해 평단의 강한 반감을 불러온 100점의 현대미술 작품을 살펴본다. 이들 작품이 당시 미술개념을 어떻게 확장시켰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낙서 같이 보이는 사이 톰블리(1928-2011)의 '올림피아'(1957), 어린아이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붉은 삼나무 블록을 직각 배열한 칼 앙드레(1935-)의 '조각되지 않은 블록'(1975),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은 듯 보이는 트레이시 에민(1963-)의 '내 침대'(1998) 등 악명 높은 현대 미술 작품을 살펴본 뒤 당대 이들 작가와 작품의 영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후대 미술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 책에 나오는 작가 대부분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를 진지하게 고찰한다. 그들은 사회의 다원주의, 영적인 삶과 시민적 삶 사이에 내재된 갈등, 소비주의와 책임성의 영향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탐구한다. 결과가 편하지만은 않다. 종종 불편한 진실이나 해결할 수 없는 모순들이 드러난다'고 전한다.
이 책은 미술발전의 전체적인 상을 그려냄으로써 현대미술에 관한 매우 인상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