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전력당국이 전기 사용을 줄여 전력위기를 넘기고자 지난 12일 하루 지출한 비용이 41억4천만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돈은 어디에 쓰인 걸까? 전기를 사서 쓰겠다고 약정한 기업체의 조업시간을 조정하고, 기업들이 자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했다. 기업들의 휴가를 분산시키거나 전력 수요를 조정하는 작업에도 돈이 들었다.
그렇다면 올 여름 전력난의 최대고비인 12 ~ 15일 나흘을 버티는데 150억 원 가까이 쏟아 붓게 된다는 계산이다. 이른바 전력수요 관리 지원금이다. 전력수요관리 지원금은 전기요금에 3.7%를 징수해 미리 만들어 놓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온다. 결국 국민 가정과 기업이 낸 돈이다. 아깝지만 블랙아웃 사태가 빚어지면 사회 전체에 커다란 피해가 들이닥치니 돈을 들이고 모두가 협력해 막아내야 한다.
14, 15일이 올 여름 전력위기의 마지막 고비다. 특히 아침 선선한 기운이 가시고 더워지기 시작하는 11시에서 2시까지가 최대 고비이다. 전력소비를 줄이는 실천방안은 다양하다. 피크타임 때 사무실 온도를 높여 잡고, 점심 먹으러 일찍 나가면서 냉방을 잠깐 끌 수도 있다. 다른 전기제품을 꺼두거나 사용 않는 가전제품은 코드를 뽑아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엘리베이터도 가능한 여럿이 모여 타고 그냥 계단을 걷는 것도 좋겠다. 헬스클럽의 런닝머신처럼 전기를 사용해 모터를 돌리는 모든 기계의 사용을 줄이면 전력을 아끼는 방법이 된다.
물론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산업체이다. 전체 전력의 52%를 쓰고 있다. 이미 기업들은 피크 시간대에 조업을 줄이고, 사무실 조명을 끄고, 냉방용 공조기를 차단하고, 자체 발전으로 전기를 충당하고, 주간 작업을 야간작업으로 돌리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찜통 속에서 엘리베이터도 멈추고 선풍기도 없이 버티고 있다. 국민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10% 20% 씩만 에너지 소비를 줄여 보자.
▣ 전력도 모자라지만 머리가 모자라는 것 아닌가?
서울 강남대로 주변 곳곳에 폭염으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에너지 강국이 된다는 나라가 해마다 이 모양이냐는 원망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후진적인 전력구조가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해마다 국민협조, 산업체 수요관리 등으로 임시변통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우선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부터 미덥지 못하다. 우리나라 전기는 꽤 싼 편이다. 그래서 연평균 7% 이상 씩 전력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2~3% 씩 늘어날 거라 예상했다. 수요 예측에서 이리 빗나갔는데 공급계획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또 정부는 전력수요가 늘어나니 전력생산을 늘려야 한다며 원전과 화력발전을 키워왔다. 그리고 그 전기를 싸게 공급했다. 특히 산업체에는 가격을 더 낮춰 공급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기름 대신 값싼 전기로 대거 전환해 전력소비는 계속 늘어난다. 감사원도 한전이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로 판매한 것이 산업용 전기 과다소비의 원인이라 지적하고 가격을 올려 받으라 통보했다. 그런데 정부는 2012년에서 2030년 기간 동안의 전기요금 인상률을 연평균 1.2%로만 잡아 놓고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 2.2%보다 낮다. 이러면서 한전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휘청 거린다. 한전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95조원, 부채비율로 186%이다. 한전이 돈은 없고 발전소 짓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자금조달 능력도 부족하다. 결국 전력산업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민간대기업은 국가전체의 전력수급보다 수익에 치중하고 시설관리도 문제가 많아 생산비용이 더 비싸다. 전력위기 때는 값이 어찌 됐든 민간대기업의 전기를 고스란히 사서 써야한다. 그래 전력위기 때 민간대기업은 오히려 수익이 급상승한다. 오죽하면 민간기업의 수익이 마구 커지지 못하게 별도의 규정까지 마련했겠는가.
그나마 있는 전력시설도 제대로 유지·관리되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전력위기를 앞두고 여러 발전소들이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에너지원도 다변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관련 인프라가 부실하다보니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도 못하고 어느 발전소에 사고가 일어나면 위험도도 커지는 것이다. 위험을 분산하려면 산업체와 대형 빌딩의 자가발전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은 일본이 전력위기에 비틀거러지 않는 것도 산업체의 전력공급 20% 정도를 자가발전으로 충당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업체의 자가발전이 4% 정도에 불과하다. 자가발전에는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설비지원도 하고 연료비 지원도 하고 세금감면도 필요하다. 물론 평상시 유휴 설비로 남게 되는 걸 감안해 무리하게 많이 갖출 것은 아니지만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원전의 필요성도 적어질 수 있다.
오늘의 이런 전력위기는 앞으로 덜하리란 보장이 없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지만 어느 것 하나 풀지 못한 채 세월을 허비할 수는 없다. 전력 수급체제 전반을 뜯어고칠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국민의 협조도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정부에 대한 질타로 바뀔 것이다. 그 뿐인가. 지구온난화나 한반도의 아열대화로 한반도는 더욱 찜통이 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