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도로를 차량들이 달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50일 넘게 이어졌던 장마가 끝나고 연일 불볕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관련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고시원에서 무더위 때문에 폭행 사건이 빚어진 건 폭염이 시작된 지난 4일.
당시 더위를 식히려 속옷 바람으로 복도를 돌아다니던 문모(55) 씨는 "공공예절에 어긋난다"며 이웃들이 지적하자 "날씨가 너무 덥다"며 말싸움을 하다 결국 폭행까지 하게 됐다.
지난 6일엔 현관문을 열어둔 서초구 방배동 한 아파트에 들어가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대학생 장모(19) 씨가 붙잡히기도 했다. 열대야로 문 단속을 소홀히 한 게 가택 침입을 불러온 화근이 된 것.
잠못 이루게 만드는 열대야로 야간 활동이 많아지는 데다, 덥고 습한 날씨로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생긴 범죄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지난 2년간 6월에서 8월까지 발생한 전국의 교통사고 30만 건을 분석해보니, 불쾌지수가 80을 넘기는 날에 발생한 자동차 교통사고는 그렇지 않은 날보다 평균 14.5% 증가했다.
연구소 김태호 연구위원은 "습도와 기온이 높아지면 운전자들이 느끼는 불쾌지수가 상승한다"며 "작은 불쾌감에서 시작한 운전자간 시비가 안전운전을 방해하는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찜통 더위에 짧아진 여성들의 옷차림을 노린 '지하철 몰카' 범죄나 성추행도 기승을 부리긴 마찬가지다.
서울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여성의 특정 부위를 찍는 몰카나 성추행 등이 겨울보다 여름에 더 많은 게 사실"이라며 "더운 날씨에 여성들의 옷차림이 짧아지면서 관련 성범죄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검찰청의 '2010년 범죄통계표'에 따르면 강간 범죄는 1월과 2월에 각각 963건과 974건에 그쳤지만, 8월이 되자 2124건으로 치솟았다.
또 전체 범죄의 52.8%는 맑은 날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은 44.9%, 상해는 42.7%가 그랬다.
날씨가 더워지면 신체·심리적인 반응에 변화가 생겨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연구팀은 지난 1일(현지시각) 세계적인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우 기온이 섭씨 3도 올라갈 때마다 폭력범죄 발생 가능성이 2~4% 높아진다"고 밝혔다.
오하이오대학교 심리학과 브래드 부시먼 교수는 "기온이 오를수록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는 등 신체반응이 평소보다 빠르게 일어난다"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과 화가 나기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국대학교 이윤호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이 지난 2010년 발표한 '날씨 및 요일 특성과 범죄발생의 관계분석'이라는 논문도 비슷한 결론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과도한 열이 감정을 자극하고 격한 심리적 상태를 유발해 개인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만들어 범죄로 연결된다"며 "미국의 뜨거운 남부지역에서 더 높은 살인율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