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에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바람까지 겹쳐 한국 산업계는 유례없이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서 기업세무조사가 폭넓게 진행되면서 산업계는 더욱 힘겹다. CBS는 '규제에 흔들리는 경제'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마련 25일부터 3차례 나눠 보도한다. [편집자 주] 새정부 들어 국세청이 대기업에서부터 제빵 커피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자에 이르기 까지 전방위적인 세무조사에 나서자 산업계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긴 불황의 터널 속에서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세청발 세무조사 광풍까지 몰아치자 기업에서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세무조사 광풍에 기업들은 아우성
요즘 국세청의 기세가 등등하다. 지난 7월 17일 2백명에 가까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이 롯데쇼핑 4개 사업부문에 들이닥쳐 재무관련서류들과 컴퓨터 파일들을 챙겨갔다. 롯데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와 관련 아무런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롯데측은 세무조사를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특별한 단서라도 집힌 것일까? 롯데 내부에서는 내부자거래, 일감몰아주기 관행에서 빚어진 탈세 가능성에 주목 조사에 나선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검찰수사를 받은 CJ주식회사와 한화생명 등도 정기 또는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매출 500억원이 넘는 기업 5800여개 가운데 기업 1100여개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덩치 큰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견,중소기업과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자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세무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SPC와 뚜레쥬르, 카페베네 등 거대 프랜차이즈업체에 대한 전수조사에 가까운 저인망 세무조사는 유례가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뚜레쥬르의 경우 1200개 가맹사업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과거 전수조사가 이뤄진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급해진 업계에서는 국세청에 현장의 사정을 반영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가맹사업자와 소상공인의 현금매출 탈세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전수조사에 당한 업계의 반응은 '패닉'에 가깝다. 기업이 업무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성한 POS(Point of sale)시스템이 통째로 국세청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 어떻길래 산업계에 칼바람 부나? 전방위적 세무조사보다 기업을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한층 격해진 국세청의 세무조사방식이라고 재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재계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업체들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첫째 세무조사의 강도가 아주 세졌다. 둘째 인력이나 기간이 대폭 늘었다. 세째 법규해석의 강도가 세졌다는 것이 공통된 반응이다.
전경련 홍성일 금융조세팀장은 24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소속사들을 상대로 세무조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간은 과거 보통 3개월이지만 최근 5~6개월로 는 경우가 많고인력은 대기업의 경우 1개반 6~7명에서 최근에는 2개반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세무조사 수요에 대기 위해 국세청은 최근 조사인력도 대폭 보강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기업체에 들이닥치면 기업체 업무에 큰 지장이 초래된다는 설명이다.
CBS 확인결과 국세청은 올해초 세무서 인원 400명을 지방국세청 조사국 요원으로 돌렸다.
과도한 세무조사의 부작용은 간단치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무조사가 제도의 본래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난 채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 "세금 더 걷기위한 수단 변질"'신고납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납세자가 신고한 세액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해 문제가 있는 기업에 한해 세무조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작금의 세무조사는 세금을 더 많이 걷기 위한 수단시 되면서 세무행정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24일 "신고납세제도는 기본적으로 신고사항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혹 누락된 세원이 있을 시 조사를 실시해 징세한다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원래 세무조사는 세금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신고납부하는 지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지금은 세금 징수의 도구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다시말해서 국세청이 납세자의 성실납세를 유도하기 보다는 더 많은 세수확보란 정권의 목적에 동원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무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당장 기업의 투자의욕이 꺾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 전반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장은 24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세무조사를 경제정책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경기가 나쁜데 세수확보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 경제 컨트롤타워 vs 국세청, 정책 엇박자전방위적 세무조사의 부작용도 간단치 않다. C기업은 최근 "국세청이 들이닥쳐 재무관련 서류일체를 걷어가 회사업무에 마비될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새로 투입된 신출내기 세무공무원들이 대중없이 자료를 걷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소득세 법인세 담당 공무원들은 일천한 경험 때문에 기업 접대비를 조사할 때 문제가 있는 부분만 찝어 자료를 요구하는 식이 아니라 관련 자료 일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과도한 세무조사는 정부부처간 '정책 엇박자'로도 비쳐지고 있다. 새정부들어 기획재정부는 우리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자 서둘러 추경을 편성하고 부동산시장 부양책, 취득세 인하조치 등을 내놓으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올인하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박근혜정부의 공약재원마련이란 틀에만 얽매여 경제전체의 흐름을 보지 못한채 역주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국세청도 세금을 아무리 걷어도 공약재원에 소요될 연 6조원을 맞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안다. 결국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경제가 떠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