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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에도 홍어가 있고 과메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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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종합편성채널인 ‘채널 A’가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를 보도하던 중 ‘사망자가 모두 중국인이라 우리 입장에서 다행’이라는 실언을 내보내 지탄을 받고 있다.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두 명이 사망자로 신원이 파악이 됐다는 소식 들어와 있습니다. 뭐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 국적항공기에도 홍어가 있고 과메기가 있어?

이를 보도한 인민일보, 봉황망 등 중국 언론 인터넷판 기사들은 수 백 만에 이르는 네티즌이 읽고, 퍼 나르고, 댓글을 달았다. “박 대통령이 방중으로 쌓은 성과가 그 말 한마디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사고 항공기 승무원들이 위험 속에서도 본분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더라면 반한감정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는 몸을 던져 본분을 지키고 국가의 격을 높이는데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서 엉뚱한 처신으로 그걸 무너뜨리다니….

남의 나라에서 국적항공기가 불에 타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라도를 들먹인 사람들도 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아시아나를 타는 노짱’이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까지 등장시켜 성적 모욕까지 가했다. 또 ‘홍어 출신들은 무조건 아시아나만 탄다더라’며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발언들도 등장했다.

대한민국 박사모 카페에도 “아시아나는 전두환 대통령이 호남 배려 차원에서 허가를 내 준 기업으로 버스 굴리던 촌X들이 항공업에 진출했다”고 비꼬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이 글을 올린 사람들이 모두 중국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걸까? 영호남 갈등 때문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고 있을까?

◈ 공화시민의 언어, 지배자의 언어

이런 차별적 의식과 언행들은 권력이나 이데올로기, 사회적 관념이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를 왜곡시킨 탓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의식하지 못한 채 써왔던 많은 말들이 차별과 배타성을 품고 있다. 검둥이, 짱꼴라, 왜놈, 처녀작, 여류작가, 바른손, 좌빨, 보수골통… . 문제의 핵심은 그런 말, 그런 말의 습득을 만들어내고 조종하는 것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왜 정상적으로 당당히 출입하는 문이 비상구인가? 군경합동은 경군합동으로 바뀌면 안 되는 것일까? 민관군은 얼마 전까지도 군관민이었다. 일제군국주의, 군사독재로 이어진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당연히 군경이고 군관민이다.

의식주? 하루 끼니가 힘겨운 서민 입장에서 썼다면 ‘식의주’나 ‘식주의’가 타당하다. ‘조세피난처’도 돈을 갖고 도망친 사람 입장에서 쓰는 말이지 ‘조세회피처’나 ‘조세도피처’가 맞다.

‘착한 몸매’라고 부르면 다른 이의 몸매는 흉하거나 저급한 몸매라는 의미가 된다. 다른 것을 두고 ‘틀리다, 틀리다‘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뜯어고치거나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전라도 홍어, 좌빨, 골통, 노빠, 할배…. 이런 언어들은 이미 적대적.공격적 감정을 싣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확신에서 나온 말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해 시류에 휘말린 채 습관적으로 쓰는 말들이다.

그러다 어느 날 ‘당신네가 죽어 다행이다’, ‘전라도 홍어기업’ ... 이런 식으로 가해자가 되어 버린다. ‘모르고 그랬어’라고 변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편견과 이념적 공격이 담긴 언어들을 쉽게 내뱉을 때 우리는 이미 그런 차별과 편견을 만든 거대한 모순에 참여하게 되고, 왜곡된 구조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오염된 언어들은 지배권력과 정파에 의해 생산되고 확산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빼앗겨 민족의 얼을 잃을 뻔 했다. 우리말을 지켜야 했듯이 건강한 민주시민의 얼도 지켜내야 한다. 시민이 민주공화주의 체제 속에서 상식과 휴머니즘, 균형을 갖추어 써야 할 언어들이 오염되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오염된다면 민주주의가 흔들린다.

“민중은 독재자의 지배를 받으며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생각과 말은 독재자 것을 늘 빌려 쓰고 흉내 낸다.” (앙리 레비)

중국, 일본을 대할 때 민족주의야 당연한 것 아니냐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족이 더 소중하니까. 그렇다면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인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샤르트르는 이를 ‘나쁜 신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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