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 여행은 과거 역사를 찾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쟁이 많았던 곳 이다. 특히 십자군 전쟁은 유럽과 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으며, 11세기부터 14세기 동안 약 350여 년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아시아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십자군과 치열한 전쟁을 치른 인물 중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살라딘은 1138년 지금의 이라크 티크리트라는 곳에서 쿠르드 족의 귀족인 나즘 앗 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살라딘의 본명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이고, 해석하자면 "욥의 아들이며 정의로운 신앙인 요셉"이라는 뜻이다. '살라딘'이라는 이름은 십자군 전쟁 당시에 그에게 톡톡히 쓴맛을 보았던 기독교인들의 발음을 따른 것이다.
살라딘은 현재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성장하면서 용맹함을 갖춘 그는 1163년에 숙부인 시르쿠를 수행하여 이집트 원정에서 큰 공을 세우고, 죽은 시르쿠 숙부를 대신해 이집트에서 셀주크 튀르크로부터 독립한 새로운 아이유브 왕조(12~13세기)를 세우게 된다. 몇 년 후에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하는 지도자인 술탄이 된다.
예루살렘 하면 보통은 기독교의 성지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한 뿌리를 지닌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특히,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메카와 메디나 다음 가는 성지였으니, 아브라함과 여러 예언자(이슬람교에서는 예수 역시 예언자로 존중하지만,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기독교와 다르다)의 활동 무대였으며,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곳에서 천상에 다녀왔다고 전하기 때문이었다. 1099년에 제1차 십자군이 무자비한 대량 학살 끝에 예루살렘을 장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1187년에 살라딘은 그곳을 방어하던 기독교인과 협상을 벌인 끝에 무혈 입성한다. 무슬림 측에서 보자면 무려 88년 만의 감격적인 탈환이었다.
이슬람인인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유럽이 들끓었고, 교황은 다시 3차 십자군을 구성해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이후, 살라딘은 십자군과의 전쟁에서 여러 번 큰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전쟁 중에 펼쳤던 휴머니즘과 십자군에게 실종된 기사도 정신을 보이며,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지금도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Damascus)에 가면 살라딘 장군의 기마상이 서 있다. 현재 살라딘은 소속된 나라가 없다. 그는 유목민이었던 쿠르드족이였기 때문이다. 십자군을 소재로 한 여러 문학작품에서 살라딘은 종종 리처드 1세의 숙적이면서도 존경할 만한 인물로 묘사된다. 비록 나라조차 없는 슬픈 명장이지만 그의 용맹함과 기사도 정신만은 지금까지도 면면히 전해내려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