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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강경기조를 유지하던 북한은 대화국면으로 선회하면서 "회담 장소는 남측이 정하라"며 나름 통 큰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11일 회담 대표의 ''급''을 문제 삼아 대표단 파견 보류를 통보했다.
국제적 고립 등의 문제로 대화국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이 남북 당국회담을 무산시킨 배경은 무엇일까.
대표단 수석대표의 ''급''과 관련해 남북한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지면서, 북한 내부에서 다시 군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란 분석이 제일 먼저 나온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삼으려던 우리 정부는 북한에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북한이 김 통전부장보다 급을 낮추려는 분위기를 보이자, 우리 정부도 통일부 차관급으로 대표의 격을 낮췄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내부적으로도 ''우리가 이 정도로 양보했는데 차관급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강경하게 나가니까 북한 내에서도 대화파가 군부 강경파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북한 간에 동급의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남한의 통일부장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급이다. 북한이 수석대표로 삼으려던 조평통 서기국 국장은 남한의 통일부 장관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급이지만 남한의 통일부 차관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급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수석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 인물이냐,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냐에 신경을 썼을 거라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의 통전부장이 수석대표 형식으로 나왔을 때를 돌아보면, 남한의 ''실세''가 상대일 때였다. 2000년 9월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이 방문했을 때 상대는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임동원 국정원장이었다. 김양건 통전부장이 2007년 방문했을 때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의 공동 초청 형식으로 이뤄졌다. 북한에서 통전부장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 통전부장에 비해 외교안보 부처의 한 파트인 류길재 장관은 기대에 못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류 장관이 이 정부 ''실세''이면 또 모르겠는데, 북한 입장에선 류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과 굉장히 가깝다는 인상도 못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통전부장의 위상을 우리 기준으로 따진다면 ''부총리급''이라면서 "김양건 통전부장이 회담 단장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가 회담 단장으로 나서지 않으면 장관급회담을 개최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못을 막고 북한이 그 점에 동의할 때 실무접촉에 나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과 관련해, 북한이 남북 회담에서까지 비핵화 압박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의식해 남측에 대화제의를 했는데, 이후 나온 미중의 공통입장이 ''북한의 비핵화''였다"며 "남측과의 만남에서 다시 한번 비핵화 때문에 목이 졸리는 상황을 맞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판을 헝클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