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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최근 ''찌라시''의 폐해에 대한 걱정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별장 성접대 리스트''라는 정치적 이슈부터 ''남녀 인기 가수들의 스캔들과 가족분쟁''에 이르기까지 찌라시 내용들이 잇달아 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찌라시는 시중에 나도는 ''사설 정보 서비스 문건''을 일컫는 말이다. 권력자 주변 이야기, 기업과 재력가들의 속 사정 이야기, 연예계 뒷 담화 등이 실려 있다. 찌라시는 ''지라시''(ちらし)라는 일본어에서 온 것이고 이것은 지리스(뿌리다)의 명사형으로 광고용 전단을 일컫는 말이다.
◇찌라시 누가 만들고 누가 보는데…?
서울 여의도나 광화문 등지에서 열리는 정보 담당자들의 계모임이 찌라시의 근원지이다. 기업체의 홍보/대외협력팀 담당자, 기획조정 부서의 정보분석 담당자, 사정기관이나 정보기관의 전현직 요원, 주간지 기자, 금융사 정보 분석 담당자, 정치인들의 보좌관 등이 참여하는 계모임이 10여개 이상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아 온 정보를 꺼내서 공유하고 평가해 보고용 문서를 만든다. 그 자리에서 함께 또는 모임 후 개별적으로 만들어 상부나 상관에게 보고한다.
이 보고내용은 관련 기관이나 기업 내에서 돌려보다 사설 정보지를 운영하는 업자나 업체로 흘러 들어간다. 업자들이 다시 정리해 상품화 된 것이 우리가 찌라시라고 일컫는 종합 정보지이다. 격주로 발행되는 것이 보통인데 한 달에 구독료는 30만원~50만원 수준이다.
이 찌라시 내용은 계모임 참석자, 찌라시 업체 관계자, 유료로 구독한 기관의 정보 방출, 취재 기자의 입수 등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된다. 증권가 찌라시라고 부르는 건 각종 정보에 민감한 다수의 증권사들이 여의도에 몰려 있고, 증권사들이 빠짐없이 찌라시를 구입해 읽고 유통시킨 탓으로 보인다.
찌라시의 구독자 역시 기업, 기관, 연예기획사, 언론계 등이다. 정보가 권력인 만큼 어떤 정보든 신뢰도에 관계없이 빨리만 입수하면 확인해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다. 골프나 술 모임에서 이런 저런 최신 정보, 첩보를 풀어내면서 좌중을 이끌어가는 것도 비즈니스니까.
또 찌라시의 가십과 뒷담화를 주고 받는 행위는 모인 사람들끼리의 동류의식 내지는 공범의식을 북돋아 친밀감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마치 훔친 물건을 슬쩍 건네받는 행위와 비슷해 보인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소문이나 추문과는 달리 찌라시에 의한 가십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전달되는 정보의 형태를 띠기에 동류의식이 높아지는 것.
자기 조직에 대한 험담은 물타기나 틀어막기로 방어할 수도 있다. 또 경쟁 상대의 부정적 정보는 널리 퍼뜨려 깎아 내릴 수도 있다. 자기 조직 정보가 찌라시에 실리도록 작업을 해 노이즈마케팅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그런 활동을 함에 있어 조직에 돈과 인력이 풍부해 정보팀을 운영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사설 정보종합지인 찌라시에 의존하는 것이다.
찌라시의 신뢰도는 과거보다 떨어지고 질도 낮아지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사실과 부합되는 정보가 20 ~ 30% 쯤으로 여겼는데 요즘은 10% 정도라는 평가들이다. 또 이전에는 정치.경제.사회 쪽 비중이 컸는데 최근 연예 정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딱딱하고 골치 아픈 정치경제 정보 틈틈이 독자들이 쉬어가게끔 서비스로 집어넣던 연예계 뒷담화가 21세기 들어서는 주요 품목이 되어 버린 것. 신뢰도와 질은 낮아지지만 인터넷, 스마트폰, SNS에 의해 전파력과 파괴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더구나 찌라시에 나온 내용이라며 찌라시를 핑계로 얼마든지 괴담과 헛소문을 만들어 퍼뜨릴 수 있으니 부작용은 커지고 있다.
개인이나 사회가 자꾸 음모론에 익숙해져 가는 것도 문제. 뭐든 뒤에 음모와 배후가 있다는 식의 해석, 그리고 그 해석에 맞지 않는 정보는 외면하는 풍토는 위험하다. 특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 공관이나 바이어 투자자들이 이런 거친 첩보 수준의 내용을 소식들로 접할 때 어떻게 한국을 이해할 지도 걱정된다.
찌라시의 또 다른 문제는 집단관음증이다. 장자연 씨 자살 사건 때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이자 철저히 ''을''인 여성 연예인이었다.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연예계 무력, 사회 지도층에 뿌리 내린 남성 우월주의, 돈과 권력이면 된다는 금권주의적 폐해가 사건의 핵심이지만 사람들은 성접대의 구체적 내용, 즐긴 사람들의 ''리스트''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번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때도 정말 참석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채 마약에 집단섹스가 어쩌구 하며 여론재판이 진행됐다. 이런 사례들은 개인의 피해를 넘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그럼에도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전파하는 것을 우월감 내지는 특권으로 여기는 그릇된 정보 문화가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 찌라시는 그저 자투리가 아니다?결국 찌라시는 고급정보나 다른 조직의 내부 사정, 스캔들 등의 정보를 구하려 기웃거리는 사람, 구해다 편집하는 사람, 유통시키는 사람, 거기에 허위 정보를 끼워 넣어 정보를 조작하려는 사람들이 얽힌 커다란 네트워크라 하겠다. ''찌라시'' 네트워크는 공적인 언론보도와 정부 발표, 기업의 홍보만으로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국민의 불만과 불안이 뒷받침하고 있다.
또 우리의 문화적.지적 삶이 피곤하고 빈곤하다는 것도 원인이다. 지적인 빈곤과 피곤을 해소하기 위해 손쉬운 대안을 찾으면서 찌라시의 뒷 담화들이 인기리에 소비되는 것이다. 매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소통의 도구도 발전하지만 정보가 넘쳐나면서 사람들의 주의력은 산만해 졌고 사회도 주의력,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찌라시 소식은 진지한 주의력이나 분석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계속해 소비가 된다.
앞으로도 언론이 진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사실 관계를 충분히 설명치 못하는데, 사람들마저 진지한 탐구와 분별에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찌라시는 자투리, 끄트러기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