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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한국 번역가는 왜 물어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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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좋은 심리학자…"심리적 진실 드러내려 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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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포럼(SDF) 2013''(5월 2~3일) 참석차 한국을 찾은 작가 알랭 드 보통(44)이 지난 3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내 스페이스 신도림에서 방송작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1993년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데뷔한 그는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일의 기쁨과 슬픔'' 같은 책을 통해 사랑·행복·불안 등 현대인의 관심사를 주로 다뤘다. 최근에는 ''인생학교'' 시리즈(정신, 섹스, 일, 시간, 돈 세상 등 6권)를 출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가보다는 철학자같다. 인생에서 통찰력을 얻는 방법이 있나?

- 인생의 지혜를 찾아주는 마법은 없다. 우선 풍부한 독서경험을 쌓아야 한다. 아무리 지루한 책이라도 쓸 만한 문장 한두 개는 있는데, 이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교육도 중요하다. 다음 세대에게 삶의 가치, 사랑의 의미 등을 설명해 주려면 먼저 우리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인생학교''를 만들었다. 우리의 실수가 다음 세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알랭 드 보통은 2008년 런던 마치몬트 거리에 지인들과 ''인생학교''를 세웠다. 한국에도 ''인생학교''를 열고 싶어 한다.)

▶작가는 지나치게 상업성에 물드는 사회를 경계한다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상업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드라마가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 나는 희극보다 비극에 관심이 많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을 경우 대다수는그 사람을 ''무능력하다''고 폄훼한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의 눈으로 비극을 보면 모든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악역 심지어 살인자의 마음도 납득이 된다. ''나와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구나'' ''판단을 잘못 했구나'' 관용을 베풀고, ''나도 저럴 수 있다''고 공감하게 된다. 최고의 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을 짚어주면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인 것 같다.

▶ 작가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사랑을 정의했다. 아내와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한데….

- 끈질긴 구애 끝에 친구 소개로 만난 아내와 결혼했다. 연애시절 아내는 조용하면서 건조한 유머를 구사했고, 슬퍼보였다. 11년 전 그때 ''우리는 누구였을까'' 떠올려 보지만 기억이 흐릿하다. 혹자는 ''결혼을 하면 삶이 무미건조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렇지 않다. 결혼생활은 역동적이다. 긴장,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이 동반되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 사람들은 결혼생활에서 재미, 안정 같은 욕구를 모두 충족하길 원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 부부는 함께 사는 법,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법 등을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작가를 질투했다. 책에서 ''플라톤적 치아'' ''칸트적 치아''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지적유희를 위한 비법이 있나?

- 지적유희는 웃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즐긴다. 작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 독자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배가 고플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런 순간을 잘 포착해서 써야 한다. 전작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에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 있다. 그때 짐을 찾은 후 버스를 탈까, 기차를 탈까 고민하는 상투적 표현을 배제하고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설레임, 기대감 같은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현실의 삶을 제대로 반영해야 좋은 글이다.

▶ 전작을 보면 독자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글을 쓰는 궁극적 목적은 뭔가?

- 내가 글 쓰는 스타일은 드라마 작가와는 다르다. 드라마는 등장인물 간 대화로 전개될 내용을 암시하지만 나는 캐릭터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데 재능이 있다. 등장인물의 머릿속을 세세하게 쓰면서 특정 행동의 이유를 독자에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나는 심리적인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내 책에서 등장인물은 심리적인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 한국에 출판된 작가의 책은 출판사에 따라 문체, 번역, 편집, 표지 디자인 등이 천차만별인데….

-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고 초조해진다(웃음). 한국에서 출판된 내 책의 50% 정도는 번역과정에서 오역되거나 누락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번역작업 중 나한테 연락을 해서 헷갈리는 부분을 물어본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그나마 내가 불어, 독어가 가능해서 불어판, 독어판은 엉망진창이던 번역을 모두 뜯어고쳤다. 근본적으로는 빡빡한 번역기한과 일의 강도에 비해 열악한 대우가 번역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표지 디자인도 문제다. 한국의 주 독자층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전에 사랑이야기가 잘 팔렸다는 이유로 내 의견을 묵살한 채 진지한 책에 핑크빛 표지를 쓰고 하트를 그려넣는다. 꼭 풍선껌 같다(웃음).

▶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작가''란?

- ''좋은 작가=좋은 심리학자''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현실을 반영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실제 이렇다''는 글을 써야 한다. 나아가 독자가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글을 써서 과거 종교가 했던 역할을 대신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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