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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셰임'' 섹스중독이 빚어낸 수치심의 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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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억압 탓에 왜곡된 현대인의 욕망 그려…"우린 상처받은 사람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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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영화 ''셰임(Shame)''을 본다면 어떠한 소견을 내놓을까. 

브랜든(마이클 파스벤더)은 뉴욕에서도 번화가인 맨해튼 28번가의 일터와 전망 좋은 고층 오피스텔에 있는 삶터를 오가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30대 독신남이다.

명민한 감각에다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그의 첫인상은 시쳇말로 ''먹어 준다''. 직장 동료 여성은 물론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이성들도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브랜든은 그렇게 만난 여성들과 하룻밤을 보낸다. 굳이 장소를 가리지는 않는다. 뉴욕 곳곳의 인적 드문 골목이어도 크게 상관없다.

집에 홀로 있는 밤이면 돈을 주고 콜걸을 부르거나 노트북에 저장된 포르노 영상을 본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자위도 한다.

매일 아침 헝클어진 침대 위에서 눈을 뜨는 그의 눈빛은 언제나 공허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이드, 자아, 초자아로 이뤄졌다.

이드는 ''리비도(성적 에너지)''로 움직이는 본능적인 심리 상태며, 초자아는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쌓여 온 도덕성의 총체다.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자아는 무의식 영역인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일상 속 말과 행동을 결정한다.

프로이트는 유아기 때 부모의 잘못된 교육으로 초자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너무 과도하게 형성되면 리비도가 왜곡된 형태로 일상에 나타난다고 했다. 특정한 물건이나 부위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페티쉬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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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브랜든은 성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회사의 업무용 컴퓨터에 수많은 포르노 영상을 넣어 두고는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업무 시간에 여자 동료를 보며 야릇한 상상을 하다 상사의 부름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가 불쑥 찾아오면서 브랜든의 삶은 뒤죽박죽이 된다. 그녀에게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하나 하나 들키게 된 까닭이다.

애정결핍 탓에 불안한 정서를 보이던 씨씨는 처음 만난 브랜든의 상사와 하룻밤을 보낸다. 씨씨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봐서일까. 브랜든은 스스로의 삶에 수치심을 느껴가지만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그렇게 더욱 위태롭게 쾌락에 빨려든다.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연락이 닿지 않는 브랜든에게 씨씨가 울면서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우린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상처받은 사람들일 뿐이야."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들, 즉 초자아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억압은 삶의 왜곡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브랜든이 성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섹스를 사람과 사람 사이 교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욕구 분출의 수단일 뿐이다. 속에 있던 이야기까지 나눈 여성과 관계를 맺으려다 실패한 뒤 콜걸을 불러 욕구를 푸는 브랜든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이 수치스럽다. 영화에 나오는 정사신이 슬프고도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10대때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브랜든과 씨씨 남매의 가정사가 어땠는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자본에 눌려 사람이 한낱 도구로 전락해 가는 시대를 살아내는 그들의 고충은 동시대인으로서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섹스중독자의 삶''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자극적인 영화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브랜든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억압의 시대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어떤 형태로든 왜곡된 리비도를 가진 우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브랜든 역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의 연기에 주목하자. 예술영화, 블록버스터 장르 구분 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동하는 그는 ''액스맨: 퍼스트 클래스''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다.

영화 셰임 속 그의 표정과 말, 몸짓 하나 하나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대들과 나는 하나도 다를 게 없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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