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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에 축의금-건보료 ''콤보''… 5월은 ''등골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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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줄줄이…어느새 지갑은 ''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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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겐 5월이야말로 잔인한 달이다. 각종 기념일에 결혼 성수기까지 엎친 데다, 건강보험료 추가 징수까지 덮치면서 어느새 지갑은 황무지처럼 텅텅 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장 2년차 회사원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적자의 달"


영업직으로 일하는 회사원 최병조(26·가명) 씨가 그 황무지에 서있다. 5월을 코 앞에 두고 스마트폰 일정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때마다 모래를 씹는 듯 괴로움을 느낀다. 월 단위 일정을 주 단위로 바꿔봐도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한숨만 연신 나올 뿐이다.

앱 캘린더를 일 단위로 바꿔 5월 1일부터 휙휙 네 번 터치하자 굵은 활자로 할 일이 뜬다. 5일 어린이날. 동의어는 곧 ''조카 선물''이다.

아뿔싸.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애교로 "삼촌 어린이날 선물 주세요" 하는 조카들의 간절함을 정녕 그 누가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세 번을 더 터치하니 또다시 할 일이 뜬다. 어버이날이다. 대학교 시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버이날을 지나쳐온 최 씨다.

어렵게 취업문을 뚫은 합격자 발표날 제일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도 부모님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물리치기 힘들다.

''선물 예산은 얼마로 잡아야지?''.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니 ''가정의 달 선물비용 10∼20만 원이 대세''란 기사가 나온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가족들에게 이 정도는 해야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몇 번 더 휴대폰을 터치하니 이번엔 스승의 날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대학 시절 은혜를 입었던 은사를 찾아뵙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약속했던 게 기억난다. ''아, 도저히 취소하겠다고 전화를 드릴 수가 없다''.

답답해진 마음에 캘린더를 월 단위로 다시 바꿔본 최 씨. 웬 걸, 답답함은 한층 더 커진다.

휴일보다도 많은 결혼식 일정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다. 왜 가정의 달에 이다지도 결혼을 많이 한단 말인가. 예로부터 ''5월의 신부''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도 잠시, 이젠 고지서를 받는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70%가 축의금으로 5만 원을 낸다는데. 요즘 유행한다는 ''결혼식 알바''는 돈이라도 벌지.

하지만 최 씨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래, 그래도 나중에 다시 돌려받을 돈 아니겠어?''.

아직 5월은 오지도 않았지만, 지출이 확정된 돈만 얼추 60만~70만 원이다. 장례식 같은 ''돌발변수''까지 감안하면 5월 예상 지출만 벌써 80만 원에 가깝다.

매달 붓는 적금에 교통비에 휴대전화 요금까지. 휴~ 요모조모 생각해도 적자일 수밖에 없다. ''5월은 너무나도 잔인한 달이야''.

◈"가뜩이나 유리지갑인 직장인들 어쩌라고"


5월이 잔인한 건 비단 최 씨뿐만이 아니다.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5월이 오지 않기를 ''아기다리고기다리''한다.

특히 건강보험료 추가 징수 폭탄을 맞은 직장인들은 시쳇말로 ''멘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임금이 인상됐거나 상여금 지급 등으로 소득이 증가한 750만 명의 4월분 급여에서 1조 8968억 원을 떼어갔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만난 은행원 임모(37·여) 씨는 "4월말에 건강보험료만 20만 원을 더 떼였다"며 "이제 은사님은 거의 만나지 않지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만 해도 80만 원쯤 나갈 것 같다"고 했다.

임 씨는 "연봉은 잘 안 오르는데 물가는 오르고, 5월 부담이 매년 커져 힘이 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직장인 박주수(48) 씨도 "가뜩이나 유리지갑인 직장인인데, 다른 달에 비해 최소 3배 이상 나가 타격이 크다"며 "절약할 수 있는 사회 전체적으로 절약하면서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그래도 1년에 1번 있는 좋은 날이니…"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기회인 만큼, 부담스럽더라도 기꺼이 ''숙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회사원 서경웅(45) 씨는 "부담은 되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좋은 날이니까 좋은 기분으로 쓰려고 한다"며 웃었다.

유정수(41) 씨도 "평소 쓰는 돈에 비해 1.5배가 지출된다"면서 "월급은 오르지 않아 진짜 힘든 달이지만 그래도 기쁜 달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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