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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소통을 부르짖지만 소통하는 방법을 깊이 고민하는 이는 드물다. 지난 15~17일 3일간 서울 종로구 신영동 비폭력대화센터에서 진행된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을 위한 비폭력대화, NVC1(총 18시간) 수업. 이 수업에는 기자를 포함한 14명이 참가했다. 직업은 예비대학생, 교사, 교수, 종교인 등으로 다양했고, 연령도 20~60대까지 폭넓었다.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대화 방법이다. 4단계(관찰, 느낌, 욕구, 부탁)로 이뤄진 비폭력대화 기본모델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말을 공감으로 듣는 것이 비폭력대화의 핵심이다.
수업이 이뤄진 방은 온기로 가득했다. 참가자들은 방 한가운데 놓인 꽃병을 빙 둘러싸고 앉았다. 수업을 맡은 한국비폭력대화센터 강사 김효선 씨는 "기존 언어습관과 다른 대화법을 배우느라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많은 참가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다. 자꾸 소담한 꽃에 눈길이 갔다. 마음에도 꽃이 피었다.
수업은 소그룹별 실습 위주로 진행됐다. 이를테면 평소 갈등관계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로 분하는 역할극을 통해 머리가 아닌 몸으로 비폭력대화를 익혔다. 강사 김 씨는 "먼저 관찰과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관찰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만 평가는 말하거나 들을 때 생각, 판단, 선입견이 개입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습관처럼 남을 평가한다. 평가하는 말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어른은 아이에 비해 선입견이 많아서 대화할 때 관찰보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평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화의 진전을 막고 진정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고 했다.
어떤 자극이 있을 경우 그것을 관찰한 후에는 우선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들여다봐야 한다. 수업에서는 각자에게 느낌말과 욕구 목록이 적힌 카드를 나눠준 후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말하게 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내 욕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40대 여성 윤 모 씨는 "그동안 상대에게 바라는 욕구와 내 욕구를 구분하지 못했다. 스스로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내 욕구를 말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30대 여성 권 모 씨는 "내 욕구가 뭔지 몰랐다. 내 자신의 욕구를 돌보기보다는 타인이 원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을 열고 의사소통 하려면 서로의 욕구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하지만 내 욕구부터 살펴봐야 한다. 김 씨는 "내 욕구를 돌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남한테 (내 욕구를) 돌봐달라고 강요하게 된다. 내 욕구가 수용되는 경험을 축적해야 나한테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이 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욕구와 욕망은 구별해야 한다. 욕구는 채워지면 사라지지만 욕망은 끊임없이 추구하게 만든다"고 경계했다.
내 느낌과 욕구를 돌보는 것(자기공감)은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과도 직결된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힘들거나 하기 싫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공감''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김 씨는 "상대방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기공감이 우선이다. 또한 대화를 할 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서로의 욕구를 이해해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후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부탁을 하면 비로소 비폭력대화가 완성된다.
3일간의 NVC1 수업 후 참가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이들은 "''본의 아니게 남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을 자주 썼구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느낌과 욕구부터 챙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만족감과 "내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가정 구성원 간 소통이 간절한데 이 수업을 통해 소통을 위한 실마리를 찾았어요. 내가 남편과 아들로부터 어떤 욕구를 충족하길 원했는지 발견하는 기회가 됐죠. 일상에서 내 느낌과 욕구를 많이 표현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어요." (40대 여성 최 모 씨)
"현재 수원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를 변화시키려면 가정교육이 동반되어야 해요. 앞으로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에 꾸준히 참여해서 다른 사람에게 비폭력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내공이 쌓이면 학부모에게 교육해주고 싶어요." (20대 남성 박 모 씨)
기자도 수업 후 스스로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즉각적으로 반응했을 갈등상황에서 내 느낌과 욕구를 들여다보자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자기치유''랄까. 상대의 말 이면에 담긴 의미를 음미해보는 여유도 조금 생겼다.
강사 김 씨는 "일단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비폭력대화를 써서 성공경험을 쌓은 후 관계가 단절된 사람에게 적용하면 연결을 회복하는데 효과적이다"면서 "처음에는 비폭력대화가 익숙지 않아 어색하지만 일상생활이나 비폭력대화모임에서 (비폭력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