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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피해자 "삼성, 정직하게 대화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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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방송 : FM 98.1 (14:05~15:55)
■ 진행 : 김미화
■ 게스트 : 김시녀씨 (삼성전자에서 6년간 일하고 뇌종양 판정받은 한혜경씨 어머니)


반올림 기자회견(노컷뉴스)

 

◇ 김미화> 2007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황유미씨가 사망한 뒤 160여 명이 산재로 백혈병을 얻었다면서 피해자들이 주장해왔고요.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이 시각 현재도 많은 분들이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요. 최근 삼성하고 피해자들이 대화를 해보자고 하면서 변화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김미화의 여러분="">에서는 삼성 측하고 피해자 측 양쪽 입장을 다 들어보려고요. 삼성 쪽에도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삼성에서는 ''''아직 대화가 시작이 안 됐고, 오해를 살 수 있어서 대화를 진행하는 주력하겠다'''' 이런 입장을 밝혀왔다는 점 먼저 말씀드리겠고요.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 모셔서 얘기 나눠봅니다.

◆ 김시녀> 안녕하세요.

◇ 김미화> 딸 위해 얼마나 걱정이 많으세요.

◆ 김시녀> 지금은 걱정이라기보다도 이미 걱정단계는 지나고 무덤덤하게 살고 있어요.

◇ 김미화> 따님 한혜경씨가 몇 년도에 입사를 했나요?

◆ 김시녀> 우리 혜경이가 96년도에 입사를 했어요.

◇ 김미화> 몇 학년 때였나요?

◆ 김시녀> 고3 때 졸업하기 전에 회사에서 뽑아가요. LG, 현대 이런 곳에서 취업알선이 오나 봐요. 그래서 성적순으로 뽑아가요. 삼성은 좀 성적이 좋아야 들어가고요. 그때 제가 보기에는 한 삼성버스가 2~3대 와서 데려갔어요.

◇ 김미화> 그때 얼마나 기쁘셨어요?

◆ 김시녀> 그때는 삼성 들어갔다고 해서 되게 자부심을 가졌죠. 딸내미가 연수 끝나고 집에 오면 친구들 불러서 잔치분위기였어요.

◇ 김미화> 입사하고 어떻게 몸이 변했나요?

◆ 김시녀>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 8개월쯤 지나가지고 혜경이가 ''''엄마 왜 자꾸 생리가 없어져?'''' 이랬어요. ''''네가 하는 일이 뭔데?'''' ''''쉽게 말하면 브라운관 녹색회로판 그런 거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요. 그래서 처음에는 크게 생각은 안 했어요.

◇ 김미화> 언제 사직을 했어요?

◆ 김시녀> 2001년도 8월인가 10월인가. 8월에 한 것 같아요.

◇ 김미화> 왜요?

◆ 김시녀> 생리가 완전히 없어져서요.

◇ 김미화> 다른 증상은요?

◆ 김시녀> 다른 증상이 특별히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나중에서 혜경이가 10개월, 1년 정도 지나서 하는 얘기가. 혜경이가 생리가 없어지면 얼굴에 꽃이 막 펴서 와요. 여드름처럼. 나중에 알고 나서 저한테 하는 얘기가 ''''이 반도체에서 일하는 애들은 이런 게 많대. 그래서 산부인과 가서 약 먹고 주사 맞고 하면 괜찮으니까 걱정할 일은 아니야.'''' 이러더라고요. 그게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그리고 오죽하면 기흥공장 주위 산부인과가 삼성전자 아이들 때문에 운영된다는 낭설도 있었어요.

◇ 김미화> 병원 가서 진단받아보거나 그런 건 없었고요?

◆ 김시녀> 네, 그랬죠. 특히 더 시간이 없는 게 얘네가 그때 3조3교대인지 그랬어요. 12시간 일하고 쉬었다가 밤에 출근하고 연장근무 이어지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기숙사 들어와서 잠자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 김미화> 왜 회사를 그만 뒀어요? 생리가 끊어졌다고 그만 둔 것은 아닐 것 같고요.

◆ 김시녀> 그건 아니겠지만 생리가 완전히 끊어지면서 얼굴에 꽃이 완전 피면서 딸이 호르몬제를 많이 먹었어요. 생리를 나오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몸이 붓던게 살이 돼버린 거예요. 그런 면에서 애가 되게 고통스러워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당시 혜경이가 일도 하고 저도 일을 해서 24평 아파트도 샀어요.

◇ 김미화> 그런데 2005년에 뇌종양 판정을 받았던 말이에요.

◆ 김시녀> 네.

◇ 김미화> 그때 어떠셨어요?

◆ 김시녀> (한숨) 그때 심정은요. 하늘이 노랗고 머리가 하얬어요. 혜경이가 관두고 와서도 2년,3년 지나 나서도 생리가 없었어요. 춘천에 있는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약 먹고 치료하면서 생리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생리가 생기고 나서는 애가 계속 감기 증상을 앓았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뇌종양이라고 판정을 받았어요. 그때는 그냥 세상이 노랗고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 김미화> 사실 들으시는 분들은 생리 없어지는 게 뭐 큰일일까 하는데, 시집도 안 간, 고등학교 갓 졸업한 딸이니까.

◆ 김시녀> 저희 딸은 그렇다고 해서 남자를 한 번 사귀어보거나 그런 딸도 아니었어요. 졸업장 딸 때도 거기 가면 못 와요. 거기서 계속 일하면서 생리 없어지고. 저도 처음에는 생리 좀 없다고 해서 관두면 괜찮아지겠지. 단지 전자파 때문에 그런 거고 관두면 다시 생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 김미화> 병원에서는 뇌종양 이유를 뭐라고 하던가요?

◆ 김시녀> 처음에는 정신과랑 정형외과만 안 가고 다 가봤어요. 맨날 혜경이가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어깨가 아프다고 하고 골이 아프다고 하다가 감기약 먹으면 괜찮아지고. 하도 그래서 안 되겠어서 춘천에 있는 병원에 MRI를 찍으러 갔어요. 딱 판정 받았을 때 그 병원에서는 그런 얘기를 들을 겨를이 없었어요. 제가 엘리베이터에 주저앉아서 진짜 어떤 생각이 있어서 운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딸이 참 착했는데 쟤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고 뇌종양에 대해서 ''''어디서 수술하고 싶으십니까?'''' 그래서 춘천에 한림대, 강대 큰 두 병원이 있거든요. 어느 병원을 원하시냐고 하길래 ''''선생님, 죽여도 큰 병원 가고 싶으니까 서울에 큰 병원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서울대로 갔어요. 그래서 했을 때 수술할 때 이러이러한 점이 생긴다고 하면서 보호자 사인 받잖아요. 그런데 수술하시는 교수님 밑에 분이 와서 사인을 받는 데 ''''한혜경씨가 어떤 일을 했냐?''''고 해서 제가 삼성반도체에서 이렇게 일을 했다고 했어요. 그때는 제가 우리 혜경이가 전문적으로 쓰는 솔더크림이라는 용어도 몰랐고 거기에 있는 성분도 몰랐을 때에요. 반도체 일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병이 생길 확률이 높은데 하면서 사인을 받아갔어요. 그런 얘기도 있었어요. 그래도 처음에는 삼성을 의심하시는 않았어요.

◇ 김미화> 혜경씨 아빠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 김시녀> 아니요. 우리 딸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혼했어요.

◇ 김미화> 혼자서 기르셨네요. 그러니 정말 금쪽 같은 딸인데. 그런데 뇌종양 판정을 받고 2009년에 산재신청을 하셨어요. 왜 2009년에야 산재신청을 하셨나요?

◆ 김시녀> 혜경이가 처음 서울대에서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받으러 춘천 병원으로 돌아갔어요. 저는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병원마다 사회복지과가 있더라고요. 그 복지과의 선생님이 혜경이가 젊은 사람이니까 같이 점심 먹고 항상 한 시간씩 티타임을 같이 가졌어요. 그러면서 그 선생님이 저를 찾아와서 반올림이라는 쪽지를 주면서 여기 한 번 전화해보시라고. 혜경씨 얘기를 들어보니 조금 의심이 가니까 전화해보시라고 해서 그때가 2008년도였죠. 반올림하고 연락했을 때가. 그래서 제가 인터넷을 할 줄 모르니까 올려달라고 해서 올렸더니 반올림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당시 의사 선생님하고 저희 병원을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직업병이 아닐까 하다하다 반올림에서 2009년에 산재신청을 해주신 거죠.

◇ 김미화> 반올림이라는 곳은 삼성에서 근무하시다가 산재혜택을 못 받은 분들과 함께 싸워주시는 곳인가요?

◆ 김시녀> 처음에는 어떤 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체적으로 짜여진 곳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 황유미씨가 돌아가시면서 유미 아빠가 너무 억울하니까 어떤 기관이나 언론을 찾아다니다가 반올림 이종란씨를 만난 거예요. 그때서부터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 같이 활동해주셨죠.

◇ 김미화> 그러면 삼성에 근무했던 것과 뇌종양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세요?

◆ 김시녀> 혜경이가 일했을 때 주로 사용했다는 게 솔더크림이라는 거였어요.

그게 뭐예요?

◆ 김시녀> 글쎄요, 저도 그게 아직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핸드폰이나 TV나 전자제품 보면 뒤에 파란색 녹색키 판있죠?

◇ 김미화> 네.

◆ 김시녀> 그것의 주성분이 바로 납 성분이래요.

◇ 김미화> 안에 바르는 게 있는가보구나.

◆ 김시녀> 네, 바르는 게 딱 저 종이컵처럼 생겼는데 완전히 고체로 돼서 부수면 부서지게 돼있어요. 그걸 갖다가 계속 저으면 액체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액체가 되면 그걸 기계가 떠주는 게 아니라 주걱으로 얘네가 떠서 넣어주면 기계가 싹 밀고 가면 기계부품이 내려온대요. 이 작업이 자동화시스템이 아니라 거의 손으로 하는 거예요. 한 라인에 기계 5개를 보면서 혼자서 보면서 이걸 계속 저으며 부품이 제대로 박혔나 보고 하는 거예요. 아무 장비도 없이. 장비가 있다면 부직포 마스크 그거 하나에 일회용 장갑.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까.

◇ 김미화>솔더크림에 납이 주성분이더라. 납이라든지 다른 인체에 유해한 성분에 오랫동안 노출이 됐기 때문에 뇌종양이 생길 수 있었다?

◆ 김시녀> 그렇죠. 처음에는 의심만 했다가 지금은 100% 확신을 하는 거죠.

◇ 김미화> 치료비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 김시녀> 처음에는 조금 있던 걸로 했어요. 아파트 팔고. 저랑 혜경이랑 벌어서 아파트 조그만 24평 샀거든요. 지금은 다 내려앉고 내려앉아서 월세로 살고 있습니다.

◇ 김미화> 산재신청 2009년에 하셨어요?

◆ 김시녀> 네.

◇ 김미화> 근로 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승인하지 않았다면서요?

◆ 김시녀> 네, 안 했습니다.

◇ 김미화> 왜요?

◆ 김시녀> 업무랑 관련성이 없다.

◇ 김미화> 그런 결정을 보고 어떤 생각 드셨어요?

◆ 김시녀> 그때 당시 저는 삼성이니까, 그래도 우리나라의 최일류 기업이니까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 거라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도 삼성이니까 1위가는 대기업이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지. 아무리 노조가 없어도. 그런데 딱 불승인 떨어지고 나서 나중에 사람들 하는 얘기를 종합적으로 들어보니까 삼성은 자기네 기업에 어떤 흠집도 낼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김미화> 인정하면 흠집이 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 김시녀> 당연히 그렇겠죠. 왜냐면 삼성은 청정 환경이라는 세계적으로 그런 인식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걸 인정한다면 삼성의 큰 오점이라고 생각하겠죠.

◇ 김미화> 최근에 산재를 인정받은 분도 있죠?

◆ 김시녀> 2분 있죠.

◇ 김미화> 그분들은 어떻게 인정 받으셨어요?

◆ 김시녀>김동훈씨인가 그분은 예전에 거기서 검사받는 게 있어요. 특수검사 같은 거. 거기에 노출이 됐던 기록이 있었나봐요.

◇ 김미화> 지금 피해자들 얘기가 한혜경씨 어머니 얘기처럼 구체화되면서 삼성도 얘길 나누자. 그렇잖아요?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드세요?

◆ 김시녀> 지금은 삼성이 얘기 나누자. 물론 나누자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큰 믿음은 안 가요. 기대도 되지 않을뿐더러 큰 믿음도 안 가요. 왜냐면 삼성으로부터 저희가 너무 많이 시련을 당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정말로 그렇지 않아도 아프고 힘들고 지쳐가는 사람들한테 너무 조롱을 많이 했어요.

◇ 김미화> 어떤?

◆ 김시녀> 저희가 당한 수모 말로 못해요. 진짜. 때로는 와가지고 사람 갖고도 놀았고. 정말 언론플레이를 그렇게 하잖아요. ''''우리는 항상 대화할 용의가 있다. 언제든지 찾아와라. 창을 열고 기다린다.'''' 해서 찾아가면 완전 우릴 우롱하고

◇ 김미화> 2009년에 어머니가 산재신청 하시기 전에 삼성에서 어떤 제안 같은 것도 하고 그랬어요?

◆ 김시녀> 있었죠. 처음에는 삼성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어요. 거기 과장이라고는 하는데 이름은 안 밝히더라고요. 한혜경씨 근황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냐, 지금 어떠냐. 하여튼 그래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하니까 저희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왜 만나고 싶냐고 하니까 ''''어머니 그러시지 마시고 만나자.'''' 춘천으로 찾아온대요. ''''찾아와라. 찾아오되 나는 개인적으로는 안 만나겠다. 우리 피해가족 모두와 기자들 앞에서 만나겠다.'''' 그랬더니 결국은 안 만나고 노무사라고 사칭해서 그 분이 저희 집에 5번인가 6번 찾아왔었어요. 집에는 한 번 왔고 그 밑 감자탕집에서 몇 번 만났어요. 만나서 금액으로 10억이 넘는데요, 그런데 하도 사람들이 돈을 받았다고 하면 폭로를 하니까 연금제도로 하겠다 하면서

저를 설득하러 왔었죠.

◇ 김미화> 왜 거절하셨어요?

◆ 김시녀> 저는 사실상 너무 힘들어서 회유 당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 김주연씨가 자살을 했어요. 그때 합의가 잘 안 돼서 천안 순천향병원 냉동실에서 시체가 97일인가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자꾸만 자꾸만 차일피일하다가 연락은 자주 왔는데 저희 딸이 ''''엄마, 난 죽어도 반올림 식구들 배반 못한다.''''

◇ 김미화> 연금을 준다는 이유가 ?

◆ 김시녀> 이미 산재신청에서는 이미 불승인은 났어요. 저희가 재판 소송을 하려고 했는데 그 재판 소승을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거예요. 소송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 기간이 있더라고요. 그 기간이 지나면 소송을 못하는 걸 그 사람이 알고 그때 저를 계속 꼬시러 왔던 거죠.

◇ 김미화> 그럼 제가 궁금한 건 혜경씨가 아까 일하던 라인 친구들, 동료들. 다 괜찮아요?

◆ 김시녀> 한 친구는 결혼을 했는데 임신을 못해요. 한 친구는 다른 친구하고는 연락을 안 하니까.

◇ 김미화> 현재 재판은 어떤 상황이에요?

◆ 김시녀> 재판은 아직 미정으로 남아있습니다. 8번 재판했나? 9번째 미정으로 남아있어요.

◇ 김미화> 세상에 대해서 참 답답하고 억울하고 그런 생각 드셨을 것 같아요. 돌아보면 어때요?

◆ 김시녀> 돌아보면 그냥 저희 십자가려니 하고 살아야죠. 세상에 대한 억울함, 원망. 왜 하필 이렇게 착한 내 딸일까. 나도 남에게 나쁘게 안 하고 살았는데 왜 이럴까. 이래서 정말 저희 딸하고 같이 죽을까도 했었어요. 진짜. 그런 생각도 정말 했어요.

◇ 김미화> 어떻게 이겨내시고 계세요?

◆ 김시녀> 죽을 팔자가 안 되는지. 사실 저희 딸이 사실상 수술하고 재활치료 받는 과정에서 사고가 또 하나 있었어요. 소뇌에서 종양을 제거한 시간이, 제가 딸을 수술실에 9시 조금 넘어서 들여보내서 밤10시가 넘어서 받았거든요. 그런데 대뇌를 또 한 번 다치면서 그때 우리 딸이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항문이 열려있으면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죽을 고비에서 못 깨어나니까, 정신이 안 돌아오니까 그때는 그냥 제가 딸하고 저하고, 춘천에 좀 경사진 곳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사이드만 내려놓으면 굴러가 정말 죽어요. 제가 정말 우리 딸 태우고 올라갔어요. 그런데 저는 살았지만 그냥 또 살게 되더라고요.

◇ 김미화> 무슨 소리에요. 이겨내셔야죠. 이겨내셔야 합니다. 다른 피해자 가족들, 제가 듣기로는 160여 명 중에 60명이 사망했다는 얘기를 피해자 쪽에서 하는데요.

◆ 김시녀> 네, 맞습니다.

◇ 김미화> 그럼 그 분들은 어떻게 사세요? 그분들도 상황이 어렵죠?

◆ 김시녀> 지금 돌아가신 분들은 거의 해고당하신 분들도 몇 분 계시고 황유미씨나 황민우씨 같은 경우는, 살아계신 분들이 고통스럽겠죠. 지금 유미 어머니 같은 경우는 우울증이 심해요. 유미 아빠도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겠죠. 유미 죽고 나서 유미 할머니 돌아가셨죠. 유미 아빠도 그 차를 끌고 싶겠냐고요. 내 자식이 뒷좌석에서 죽었는데. 그런데도 그 택시를 못 바꾸고. 오죽하면 생전 유미 아빠도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 요새는 그래요. 비가 와도 천장 쳐다보게 되고 비가 샐까봐. 바람 불면 지붕 날아 갈까봐 걱정되고. 지금 사실상 저희가 악으로 버티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거 절대 포기 안 해요. 귀신이 돼서라도 늘어지지만, 하여튼 그런 면이 없잖아 있어요. 황민우씨 아내 같은 경우도 그 집은 부부사이가 굉장히 좋았대요. 그 아이들 보면 어떻겠어요. 정혜순씨 같은 경우도 술만 먹으면 운대요.

◇ 김미화> 왜 아니겠어요.

◆ 김시녀> 그 집에 딱 갔는데 두 부부 사진을 탤런트 사진처럼 붙여놨더라고요. 아이들 방에 가봐도 그렇고. 아이들 볼 때 부모의 심정...

◇ 김미화> 어머니께서 황유미씨 아버지 택시 얘기하셨는데, 병원에 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택시에서 숨을 거둔 거예요. 딸이... 아버지가 운전하는 뒷좌석에서.

◆ 김시녀> 네. 엄마가 유미를 안고 뒷좌석에 앉아 계시다가 그 심정 아무도 모를 거예요.

◇ 김미화> 그러니까요. 우리 한혜경씨 어머니는 어려울 때 어떻게 이겨내고 계세요? 아까 포기는 안 할 거라고 하셨는데.

◆ 김시녀> 사실 지금 제가 사는 건 이달 살면 다음 달은 어떻게 사나 걱정스럽게 살고 있어요. 이렇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반올림에서 저희 모녀한테 도움을 주고 지금은 내가 나 하나가 아니다. 어쨌든 저희 피해자 식구들은 입버릇처럼 ''''피해자 누구 식구들'''' 또 ''''반올림 한가족'''' 이런 식으로 이어져 나가서인지 몰라도 주위에 좋은 사람도 많고 그래서. 예전보다는 너무 많이 편해지고 도움도 받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 김미화> 혜경씨는 지금 재활훈련 받고 있고요?

◆ 김시녀> 네.

◇ 김미화> 삼성 쪽에 대한 바람이나 박근혜 당선인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 김시녀> 제가 정말 박근혜 대통령한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권력과 돈이 있으면 물론 되겠죠. 되겠지만 그래도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 너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사람들. 제대로 된 정치를 하면서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진짜.

◇ 김미화> 기대를 해봐야 하는 거고요. 삼성 쪽에는 어떤 바람이 있으세요?

◆ 김시녀> 정말 대일류 기업이면 일류기업답게 인정할 것 인정하고. 어차피 다 검사 결과 방사선 노출된 거, 유해물질 치수 높은 거 다 나왔잖아요. 인정할 것 인정하고 사과할 것 사과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자고 우리한테 먼저 요청해왔으니까 보내준 공문에 대해서 정말로 솔직담백하게, 정직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 김미화> 혜경 어머니, 피해자 가족 여러분 힘내시라고 전해주시고요.

◆ 김시녀> 감사합니다.

◇ 김미화> 저희도 다시 또 프로그램 안에서 얘기 나누겠습니다.

◆ 김시녀> 고맙습니다.

◇ 김미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뇌종양 판정 받은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CBS 김미화의 여러분 프로그램 바로가기 http://bit.ly/Ydrn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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