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

4 · 6 · 6 · 7

하루 3시간 통학의 굴레
아침 6시 30분.
엄마가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아들 예찬이를 깨우는 일이다. 지난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아서인지 오늘은 일어나는 걸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예찬이는 이불 속에서 쉽게 나오지 못한다.
오 분 뒤 다시 예찬이를 깨운다. 반쯤 감긴 눈을 뒤로 하고 아이를 침대 밖으로 빼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재우고 싶지만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지각이기 때문이다.
뜬 눈으로 식탁에 앉은 예찬이가 힘들게 아침을 넘겼다. 일어나자마자 먹는 아침이 쉬울 리 없다. 그래도 엄마가 요청하면 김치도 한번, 국물도 한번 떠먹는다. 그러면서 예찬이도 조금씩 생기를 찾는다. 천천히 옷을 입히고 화장실을 오가며 아침 준비를 마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예찬이는 구로구에 있는 특수학교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오전 7시 35분.
예찬이와 엄마가 집을 나선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정진학교로 가는 통학버스가 오전 7시 40분에 도착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오늘 무엇을 할지, 학교 가서 어떻게 할지, 집에 와서 무엇을 할지. 통학버스를 타러 가는 곳까지 예찬이와 엄마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사이 노란색 버스가 도착했다. 예찬이는 엄마와 인사하고 버스로 달려간다.
서울 강서구에서 예찬이를 태운 버스는 학교로 향한다. 그냥 가도 먼 거리이지만 중간중간 친구들을 태우다 보면 시간은 꽤 오래 걸린다. 평균 통학 시간 1시간 30분. 일찍 일어나 피곤했는지 예찬이는 버스에서 잠이 든다.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잠에 빠진다.
예찬이가 통학 버스에 오르기까지도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버스에 적응하지 못했던 시절은 엄마가 매일 자가용으로 함께해줬다. 그것도 더 어릴 때 일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셈.
아침 일찍 일어난 예찬이는 통학버스에서 쉽게 잠든다.
어릴 적 예찬이는 종잡을 수 없었다.
어린이집 앞까지 가서도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 다반사였다. 예찬이는 남들과 다른 만큼 남들과 다른 시간을 보냈다.
예찬이가 처음부터 특수학교에 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아이가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일반 초등학교로 보냈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에도 특수학급이 있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반학교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통학하기도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예찬이를 보며 내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똑같다는 심적인 안정감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매일 엄마와 예찬이가 학교에 같이 있었다. 아이가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천진난만하게 그네를 타는 예찬이. 고등학교 1학년인 예찬이는 발달장애 1급이다.
고학년이 될수록 친구들과 격차는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발달이 느린 예찬이와 달리 또래 아이들의 사고는 성숙해져 갔다.
본격적으로 입시 위주의 수업이 시작되는 중학교 때부터는 일반학교를 고집할 수 없었다. 공부하는 친구들에게도 더는 양해만을 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일반 초등학교 졸업 후 예찬이는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하루 세 시간의 통학 시간이 부담스러웠지만 제대로 된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는 일반학교에서 멍하게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만족도는 높다. 모든 것이 장애인 아동의 눈높이에 맞춰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만족도 역시 아주 높다.
특수학교 고등학교 1학년 발달장애인 학급 수업 내용. 특수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전학은 쉽지는 않았다.
예찬이처럼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수학교로 옮겨오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는 완전한 입시교육 시스템이기 때문에 장애인 학생 교육과 더욱 멀어진다.
억지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고등학교 때 특수학교로 넘어오는 장애인 학생도 많았다.
늘어나는 장애인 학생에 비해 학교는 턱없이 부족했다.
책상 6개가 놓인 특수학교 초등과정 교실. 담임교사가 1:1로 지도하기 때문에 6명조차 힘들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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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는 한 학급 정원은 유치원 4명, 초등학교 6명, 중·고등학교 6명, 직업훈련과정 7명으로 정해져 있다. 학급당 20~30명이 있는 일반학교에 비해 인원이 훨씬 적은 편. 담임교사가 1:1로 학생을 챙겨야 하는 만큼 학급당 학생 수를 제한해 놓은 것이다.
학급이 많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한 학년 당 한 학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수학교에 들어가려는 경쟁률은 엄청나게 높다.
예찬이가 사는 강서구에는 특수학교가 한 곳 있지만 이미 정원이 차서 입학이 힘들었다. 그나마 구로구에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해야 했다. 통학 거리는 멀지만 제대로 된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8개의 자치구는 특수학교가 아예 없는 상태다. 이럴 경우 예찬이처럼 멀리 있는 특수학교로 통학하거나 어쩔 수 없이 일반계 중·고등학교를 가야 한다.
두 조건 모두 아이와 부모에게는 가혹한 현실이다.
오후 4시 무렵.
학교에 갔던 예찬이가 집으로 돌아온다. 예찬이는 마중 나온 엄마를 보자 방긋 웃는다. 예찬이와 엄마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나누며 집으로 향한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엄마와 예찬이는 치료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 오늘 예찬이가 방과 후 갈 곳은 언어치료학원과 헬스장. 장애인 학생 대부분은 방과 후 다른 교육을 받는다.
무엇인가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치료하고 싶고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물리치료에서부터 인지 치료까지 아이가 더 좋아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아이의 발달이 멈출 것만 같이 느껴진다.
예찬이가 밖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은 엄마가 함께 한다. 부모의 도움이 없는 장애인 학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교길에서 만난 예찬이. 예찬이가 사는 강서구에는 특수학교가 설립될 예정이지만 지역주민의 반대가 거세다.
오후 7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예찬이. 오늘 예찬이는 일찍 잠든다. 아무래도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잠을 자지 않아 피곤한 듯하다. 통학버스에 잠을 잔 날이면 예찬이의 취침시간은 새벽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낮잠을 자지 않은 날은 초저녁 때 부터 잠들 때가 많다. 그러면 어김없이 새벽쯤 잠을 깨고 다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밤이 이어진다. 이래저래 통학 시간이 길수록 예찬이의 생체리듬은 불규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예찬이의 생체리듬에 따라 가족의 아침 스케줄도 뒤바뀐다. 어떤 날은 평범하게 지나가지만 반대로 뒤죽박죽으로 엉켜버릴 수도 있다. 학교가 멀어짐으로써 가족의 아침 풍경은 극과 극을 오간다.
긴 통학 시간과 하교 후 치료수업이 잡혀 있는 예찬이의 하루 일과표.
학교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예찬이.
예찬이는 학교가 좋다. 학교는 예찬이가 하루 중 가장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차별하지 않는 시선,
괴롭히지 않는 친구,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예찬이와 장애인 친구들이 함께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부모들은 오늘도 문을 두드린다.


인터뷰 : 이수연 씨(예찬이 어머니)
하교시간 통학버스로 달려가는 예찬이. 예찬이는 학교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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