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스토리]유미가 쏘아올린 작은 '반올림'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고(故) 황유미씨와 황상기 부녀 부녀와 반올림이 한 해씩 쌓아 올린 11년 이야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지난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좌)와 아버지 황상기(우)씨. (사진=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카페 제공)

아빠는 딸이 자랑스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삼성에 취업한 딸 황유미씨는 아빠 황상기씨의 자랑이었다. 아빠는 그저 삼성이 좋은 회사인줄 알았다.

입사 2년째. 딸이 어지럽다고 했다. 단순히 체한 줄 알았던 유미씨는 2005년 6월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2년간 투병이 이어졌다. 삼성은 산업재해 처리를 거부하며 부녀를 회유했다.

2007년 3월 6일 유미씨가 세상을 떠났다. 병원치료를 받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딸은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던 황씨의 차 안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황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딸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7년 11월 20일. 황씨는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앞에 섰다. 그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유일한 유족이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을 외쳤다.

단 1명의 유족으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시작됐다. 이날 이후 아빠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문제 해결의 최전선에 섰다.

2007년 11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황상기씨. (사진=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카페 제공)

한 해가 지났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피해자 4명을 찾았다. 노동자의 날인 4월 28일에는 백혈병을 얻은 노동자 4명의 산재를 신청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이란 이름의 첫 집회였다.

2008년 12월 29일 한국산업안전공단은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들의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삼성과 하이닉스 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는 일반인보다 '비호지킨 림프종' 암 발생률이 5배나 높았다. 조립공장의 생산직 여성은 최고 12배 이상까지 높았다. 하지만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에 대해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설명하며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다시 한 해가 지났다.

2009년 5월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공단 측 보고서와 자문의사 협의회 회의 결과 등을 검토해 반올림 가족 5명의 산재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 결과는 사실상 반도체 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됐다.

반올림은 반발했다. 산업안전공단 측이 조사한 것은 개별조사를 배제한 전체 모집단의 조사로 정확하다고 볼 수 없었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0년 1월 피해자들은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3월 30일 또 한 명의 반도체 노동자 박지연씨가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박씨는 19살에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취업했다. 입사한 지 2년 8개월 뒤 박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하며 항암 투병을 해오던 박씨는 증세가 악화돼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삼성 측은 박씨의 백혈병 발병은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해가 지났다.

고 박지연씨를 응원하던 반올림 카페 게시물. (사진=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카페 제공)

2011년 6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소송의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급성골수구성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2명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했다. 다른 3명은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측은 한국산업안전공단의 결과와 다르단 점을 강조하며 판결에 반발했다. 이어 "권위 있는 해외 제3의 연구기관이 실시 중인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개할 예정이다"는 입장을 내며 항소했다.

황씨와 반올림은 재판부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다른 3명이 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되기 시작한 만큼 작은 희망이 생겼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2년 10월. 언론에서 삼성전자 측이 반올림에 대화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올림은 즉각 반발했다. 반올림 측은 삼성으로부터 대화 제안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삼성이 언론플레이 하지 말고 직접 대화를 요청 하라"고 못 박았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3년 12월 18일. 삼성전자와 피해자 유가족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는 첫 교섭이었다. 황씨도 반올림과 함께 자리에 있었다.

교섭에 들어가자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을 교섭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반올림은 피해 당사자로부터 위임을 받아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지금껏 삼성전자와 협상을 반올림과 함께 해왔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교섭은 시작하자마자 삐걱거렸다. 2차 교섭은 일정을 잡지도 못하고 끝났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4년 2월 6일. 딸인 고 황유미씨와 아빠인 황상기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다루는 만큼 영화는 대형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모금 등으로 영화는 개봉됐다. 스크린 부족 등 열악한 조건에서도 영화는 50만 관객을 모았다.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8월 삼성전자 백혈병 산업재해 항소심 판결이 났다. 2011년 6월 1심 판결의 항소심이었다. 결과는 1심과 같았다. 재판부는 원심과 같이 백혈병 발병과 업무 사이 연관성을 인정해 산업재해로 판단했다.


그해 겨울 반올림과 삼성전자 측이 다시 마주 앉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의 조정하에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협상은 재기됐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5년 7월 조정위가 1차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조정위는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조정위는 "공익법인은 삼성전자가 사과·보상·재발방지 대책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해결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데 적합한 형태로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사단법인 설립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공익법인 설립에 반대했다.

1차 조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2015년 7월 23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회의에서 김지형 조정위원장이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후 삼성전자는 공익법인 설립 대신 사내기금으로 1000억원을 조성한 뒤 보상위원회를 꾸려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위의 1차 권고안과 다른 독자적인 행동이었다.

반올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5년 10월 8일 반올림은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반올림은 삼성이 성실한 대화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제대로 된 모습으로 임할 때까지 '삼성 직업병 피해자 이어 말하기' 행사도 진행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는 매일 피해자와 유가족의 억울한 사연이 줄을 이었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6년 6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종합진단하고 백혈병 등 직업병 예방 대책을 논의하는 외부 독립기구 '옴부즈만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삼성전자와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이 수차례 합의 한 끝에 만들어진 기구였다.

다시 해가 지났다.

2017년 1월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서 근무했던 김기철씨가 사망했다. 반올림 집계로 79번째 반도체 노동자의 사망이었다. 2006년 입사한 김씨는 27살이 되던 2012년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삼성전자 측은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는 공정 기술상 핵심기술이 포함돼 있어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자료를 넘기지 않았다.

그해 3월.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반올림이 농성하는 방식은 귀족노조나 전문시위꾼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양 최고위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며 승승장구한 기업인 출신이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양 최고위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정식으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해가 지났다.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2017년 3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워온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대해 '전문 시위꾼'이라고 폄하해 논란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반올림 농성도 1000일이 지났다. 딸이 세상을 떠난 지도, 아빠가 반올림과 투쟁을 시작한 지도 10년을 넘겼다.

2018년 7월 17일. 조정위는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에 2차 조정을 위한 공개제안서를 발송했다. 이번에는 조정이 아닌 중재를 택했다. 중재는 조정위에 최종방안을 백지위임하는 것으로 합의서 내용이 나오기 전에 도장을 찍는 방식이었다.

며칠 뒤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은 모두 조정위의 안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2차 조정안과 상관없이 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일주일 뒤 양측은 조정위가 마련할 중재안에 따르기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서명식을 지켜보던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7월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조정위원회 제2차 조정(중재)재개를 위한 중재합의서 서명식’ 에 참석한 반올림 황상기 대표(왼쪽)가 인사말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1023일 동안 농성을 이어오던 반올림도 지난 25일 저녁 문화제를 끝으로 천막을 접었다.

2007년 고 황유미씨 사망 이후 아버지 황상기씨와 반올림이 삼성전자를 상대로한 11년간의 투쟁.

최종 중재안은 오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딸은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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