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4시(이하 한국시간) 중국 베이징올림픽 빌리지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투표 결과 발표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운 것은 바로 문대성이었다.
아니타 디프란츠 IOC 위원은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한 문대성은 총 7,216표의 유효표중 3,220표를 얻었다. 2위로 선수위원에 당선된 러시아의 수영 영웅 포포프의 득표수는 1903표로 1천표가 넘는 우위를 보인 것.
IOC 선수위원은 IOC 선수분과위원회에 소속되기는 하지만 모든 권한이 일반 IOC 위원과 똑같을 정도로 국제 스포츠외교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 그간 한국에서는 2000년 이은경(양궁) 2002년 전이경(쇼트트랙), 2006년 강광배(봅슬레이)등이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문대성은 달랐다. 이번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문대성은 당초 선수로 대회 2연패를 꿈꿨다. 그러나 IOC 선수위원에 대한 큰 꿈을 품은 뒤 과감히 태극마크를 포기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소통해야 하는 자리인만큼 어학공부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문대성은 지난해 말부터 뉴질랜드로 건너가 하루에 7시간씩 영어공부에 전념했다.
베이징올림픽이 개막되자 문대성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매일 같이 선수촌 식당을 찾아 선수들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의 꾸준한 노력에 나라도, 인종도, 나이도 각각인 세계 스포츠인들은 문대성에게 표를 던졌다.
열정적인 문대성의 노력에도 그의 선수위원 선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신반의''였다. 선수들이 표를 던지는 만큼 선수단의 숫자가 많은 육상, 수영등 기초종목의 후보들에게 많은 표가 쏠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문대성이 맞서 상대해야하는 후보들의 면면도 화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대성은 올림픽 개최국 중국의 육상영웅 류시앙은 물론, 쥐스틴 에넹(테니스), 그랜트 해켓(수영), 폴 터갓(마라톤)등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선수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치고 한국 스포츠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