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5·18 당시 성범죄로 임신→출산→입양? ②44년 만에 고백 5·18 성범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겪어" ③5·18성범죄 상당수 피해자 사망·치매로 진실규명 불가능…보상 심의 조사 허점 ④5·18 성범죄 트라우마 치료·상담 5명 미만…정신적 피해 치유 '시급' ⑤5·18 성범죄 조사·보상, 신체·정신적 상담·치료 등과 병행 필요…전문가 제언 (계속) |
5·18 성범죄 피해자 상당수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입은 피해를 알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앞서 피해 사실을 밝힌 이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CBS의 5·18 44년 연속기획보도, 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 7일은 마지막 순서로 5·18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첫 보상 심의가 시작된 상황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넘어 신체·정신적으로 입은 트라우마 등의 상담·치료를 연계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을 보도한다.
규명된 5·18 성범죄 피해자들도 트라우마 상담·치료 못 받아
지난 4월 28일 전남대에서는 5·18 당시 성폭력 피해자 8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피해자 간담회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진행한 5·18 성폭력 조사를 통해 규명된 16건에 포함된 사례의 피해자이거나 신청인이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5·18 성범죄로 인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도 관련 기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이 자리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일부 피해자들이 광주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상담·치료를 받은 사실을 듣고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 조사위')를 통해 성범죄 피해가 규명된 사례 총 16건 중 광주트라우마센터를 통해 트라우마 상담·치료를 받은 사례는 5건 미만으로 파악됐다. 국가폭력에 의한 성범죄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만 관련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것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는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인들도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규명 사례 대상자들도 이용할 수 있지만 해당 사례는 없었다.
광주 트라우마센터 김명권 센터장은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국가폭력에 의해 신체·정신적 피해를 입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며 "5·18 조사위 결과와 제8차 보상 신청이 보다 많은 피해자들이 센터를 찾고 상담·치료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신상숙 연구원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이르는 조사까지 필요"
5·18 조사위가 살핀 52건 중 피해자 조사가 불가능한 10건을 제외한 사례 26건과 관련된 트라우마 상담·치료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시에 5·18 성폭력과 관련해 제8차 보상 신청을 한 사람은 26명으로 이 중 14건이 규명 사례에 포함됐다. 5·18 조사위 규명 사례에 포함되고 이를 토대로 보상 신청을 한 10명 정도가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지 않은 것이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의 취재를 통해 피해자 중 일부는 병원 치료나 민간 시설을 통해 관련 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5·18 성범죄 피해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치료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조사·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2·3차 폭력을 입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신상숙 연구원은 "40년간 침묵했던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목표를 기반으로 앞으로 더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보상 심의를 위한 조사가 아니라 피해자의 상담과 치유, 회복 쪽에 더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광주시 보상심의위원회에도 사건 조사와 상담에 각각 전문화되고 특화된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중심이 돼야 하고 (심의 위원들도) 성별 안배가 반영돼 배치돼야 한다"며 "피해자들을 조사할 때 충분한 준비를 거쳐, 충분한 시간을 갖고 피해자들을 접촉해 진실 규명에서부터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연결할 수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조사와 치유, 보상과 상담·치료 등이 연계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차경희 위원장 "5·18 성폭력 조사 지속돼야 한다는 목소리 이어져"
5·18 조사위가 살핀 성범죄 피해 의혹 사례 52건 중 6건은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조현병, 치매 등으로 진술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5·18 성범죄에 대한 조사와 규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18년 꾸려졌던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의 2기 출범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당시 공동조사단이 시간적 한계 등으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법적 권한의 한계와 짧은 조사 기간으로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다 진전된 방식의 조사단 구성과 운영이 필요하다. 또한 향후 피해자들이 사망하는 등으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광주여성단체연합 차경희 젠더폭력특별대책위원장은 "5·18 조사위 조사 결과를 시작으로 5·18 성폭력에 대한 조사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5·18 성폭력에 대한 조사에 있어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상 심의 과정에서 객관적 자료를 요구하게 되면 성폭력 피해가 보상 체계 안에 들어가기는 매우 어렵다"며 "법에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장애 등급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5·18 조사위에 비해 짧은 기간에 깊이 있는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윤경희 팀장 "인정된 피해자들에 대한 후속 대책 가장 중요"
향후에도 5·18 성폭력에 대한 보상 신청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보상 신청 가이드라인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5·18 보상법의 취지를 살려 성폭력이 피해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5·18 조사위 보고서를 통해 국가폭력에 의한 성범죄의 실태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를 보상 등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5·18 조사위 윤경희 팀장은 "이번에 인정된 피해자들에 대한 후속 대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향후 대책이 마련되면 법 개정 등을 통해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구제의 길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가폭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진상이 규명된 첫 사례인 만큼 유사한 피해를 겪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함께 피해자 간 연대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