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해병대사령관 김계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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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15일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75주년 기념행사에서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15일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75주년 기념행사에서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해병대에서 장병 사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영화 <어퓨굿맨>의 주요소재다. 네이던 R 제셉 대령 역을 맡은 잭니컬슨의 소름돋는 명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연대장 제셉 대령은 한 관심사병에 대해 이른바, '코드제로'라 불리는 '가혹행위'를 하도록 부하에게 지시한다. 미 해병대는 코드제로를 금했지만 제셉 대령은 "그것은 훈련의 일종이며 미 해병대의 자랑스런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꼰대 군인이었다.
 
영화에서 진실을 파헤친 이들은 코드제로에 가담했던 병사들의 변호사였다 하지만 진실 추적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부연대장인 월시 중령이다. 그는 제셉 대령과 해군사관학교 동기였지만 진급에서 밀려 동기의 참모장으로 일했다. 변호인들에게 구타와 얼차려 지시를 했다는 암시를 한 사람이 부연대장이었으며 법정에서 증언대에 서기 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수정예라는 미 해병대의 자부심을 담은 '어퓨굿맨' 영화를 떠올린 것은 해병대 사건 때문이다. 총선이 끝난 지난 11일 해병대사령관 김계환의 열한 번째 지휘서신이 공개됐다. 채상병 사망과 대령 박정훈의 항명 사건이 없었다면 일반에 공개될리 없는 군 지휘관의 편지이다. 지휘서신은 모두 2756자로 구성된 장문의 편지였다. 대한민국에서 끈끈하기로 유명한 3대 조직 가운데 하나인 해병대에서 최고 사령관의 편지가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보면 작금의 해병대가 큰 혼란 속에 빠져있음이 분명하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지난달 21일 오전 해병대 예비역 등과 함께 3차 공판이 열리는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지난달 21일 오전 해병대 예비역 등과 함께 3차 공판이 열리는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해병대사령관 지휘서신의 시기와 내용 모두 범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령관 김계환은 열한 번째 지휘서신이 언론에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짐작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휘서신은 부하 장병들에게 그의 생각을 고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겠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 사건 관련자, 그리고 여당,야당, 국민에게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것도 또다른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사령관 김계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말 못하는 고뇌만 가득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하루하루 숨쉬기도 벅차기만 하다"는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전우들의 방파제가 되어 태풍의 한 가운데에서도 해병대 조직 보호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겠다는 다짐이다. 특히 그는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 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본인 나름의 행동 방향과 결심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아니면 그 결심을 위해 스스로 의지를 다지고 있든가. 무엇이 됐든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해병대사령관의 명예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해병대는 비록 군에선 소수지만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적진에 돌진해야하는 최고의 정예부대이다. 제복 입은 해병대사령관의 명예와 권위를 함부로 손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작년 7월 31일 대통령의 격노에서 시작된 해병대에서 '부정의, 부정직'에 대한 문제제기는 심각하다. 특히 "해병대 정신의 모토가 곧 '정직'"이라고 할때 최고사령관 김계환의 생각과 처신·행동 하나하나는 '귀신잡는 영원한 해병'의 존립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사령관 김계환은 지휘서신에서 최우선 과제가 해병대 조직 보호임을 누누이 언급했다. 비록 사령관에게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그는 선배 해병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쌓아놓은 금자탑과 후배 해병들에게 더 빛난 해병대를 물려주는 것이 금과옥조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금과옥조'를 지키려면 장군 김계환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병대 조직을 지키는 일은 최고 목표이다. 그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오직 그에게는 목표를 지키는 방법의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그 선택지는 해병대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군최고통수권자를 선택할 것이냐의 두 가지 문제로 집약된다.
 
필자가 해병대 사건을 추적하며 지켜본 사실로 볼 때 사령관 김계환은 햄릿처럼 좌고우면 하면서도 사안을 분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현실적 정치군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군 검찰조사를 받은 작년 8월 2일 밤, 해병대수사단 중수대장과 통화했다. 중수대장은 당황한 듯 "국방부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다 가져갔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우리는 그거 상관하지마! 거기에 관여할 필요가 없잖아." 그는 오직 국방부와 갈등으로 해병대가 다칠 수 있는 영역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그의 마음속에 채상병의 죽음은 부차적이었다.
 
그의 또다른 현실적인 정치군인의 모습은 꼼꼼한 기록과 법정 증언에서도 증명할 수 있다. 그가 작성한 업무수첩에는 항명사건의 기록들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외압을 행사한적이 없다"고 아직 주장하고 있지만, 업무수첩에는 법무관리관의 "외압(위압)"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법정에서도 "국방부 장관이 이첩 보류명령이 없었으면 자신도 이첩 보류지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해병대수사단 수사는 잘된 수사이고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연합뉴스
해병대 내외부에서 "사령관의 좌고우면이 오늘날 해병대 조직을 산산이 갈라놓았다"는 말들이 무성하게 들린다. 또 그가 다음달 군 인사에서 예편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이달 하순 백령도와 제주도 해병부대를 방문하는 일정과 지휘서신은 그 준비를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임성근 전 1사단장의 해병대사령관 임명 소문도 있다.
 
사실들을 분간하기 어렵다. 어쩌면 소문들은 그의 인용문처럼 '바다에 내리는 소낙비'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진실을 밝히는 것 뿐이다. 그것이 해병대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보루이다. 해병대를 지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이지 군최고통수권자는 부차적 역할이다. 그가 방법론을 몰라 혼란 속에 있다면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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