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검사 "검찰 조서 부인 속출…재판 길어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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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장기화는 물론 범죄 실체 규명도 지장"
법조계 "수사 재판 당사자 장기간 불안 노출"
"진술은 늘 오류 위험…검증 거쳐야" 반론도

황진환 기자 황진환 기자 
#지난 2022년 5월 다단계 사기를 벌인 20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인들은 돌연 자신들과 공범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부인했다. 1년 반 넘게 공범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지만, 아직 남은 증인이 10명이 넘는다.

#검찰이 보험금을 노린 '나이롱 환자' 사건을 수사한 끝에 주범 2명을 재판에 넘겼다. 꼬임에 넘어간 노인 165명은 공범이 됐다. 주범들은 재판에서 검찰 조서를 모두 부인했다. 공범 대부분 70~80대 고령이라 몇년 전 일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루에 4명씩 신문을 해도 최소 41회의 속행기일이 열린다.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 능력을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312조 1항)이 2022년 시행된 여파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심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피고인이 부인한 검사 조서는 증거 능력이 없어져 검사가 법정에서 같은 내용의 신문을 반복해 재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정 당시에도 진술 증거에 의존하는 사기나 뇌물 등 부정부패 사건 또는 공범이 많은 사건의 재판 진행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실무자 증언도 나왔다.

최윤희(사법연수원 39기)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 검사는 2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고찰' 형사법 포럼 발제자로 나서 "2023년 공판부에 근무하면서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이후 발생한 여러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재판 장기화는 물론이고 범죄 실체 규명에도 적잖은 지장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 검사는 △마약 △보이스피싱 △사기 △살인 △도박공간개설 △보험사기 △유사수신 등 다양한 범죄유형에서 재판지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피고인이 공범의 피신조서 증거 능력까지 부인할 수 있어, 총책이나 교사범 등 범행을 계획·지시한 배후 인물을 처벌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증거인멸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경우 배후를 처벌하려면 공범 진술이 거의 유일한 증거인데, 법정에 나온 공범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구속 피고인이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는 사례도 다수 생긴 것으로 조사됐다. 최 검사는 300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 재판에서 증인신문을 장기간 진행하면서 구속된 주범 4명이 재판 도중 석방된 것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최 검사는 "피의자가 검·경에서 한 진술은 증거 가치가 매우 높다. 직접 사건을 경험한 이가 생생한 기억을 바탕으로 수사나 재판 영향을 가장 덜 받은 상태에서 한 진술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피의자 조사와 재판 실무를 수행하는 변호사 증언도 이어졌다. 검사 출신인 김은정 법무법인 리움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 재판이 상당히 지연되면서 수사·재판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며 "검찰 조사는 급감한 데 반해 경찰은 수사 누적 등을 이유로 매우 더디게 수사가 진행 돼 고소를 하거나 수사를 당하는 국민 모두 장기간 불안에 놓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형사 사건에서 변호사의 필요성과 역할, 중요성이 모두 증가하고 있다"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진행하는 형사소송이 변호인 역량에 따라 결론이 갈리는 민사소송화(化)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수사 기관의 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학계 반론도 제기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웅재 교수(판사 출신)는 "사람의 진술은 언제나 오류 가능성을 수반한다"며 "공판 절차에서의 검증을 거친 경우에 한해 진술은 증거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①법관이 진술 태도를 관찰할 수 있고 ②위증의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 ③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이 이뤄지는 등 세 가지 검증 과정을 거쳐야 진술의 신빙성이 확보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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