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축구대표팀 이강인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C조 3차전 공식훈련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탁구 게이트'의 중심에 섰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공식 사과했다. 대한축구협회(KFA) 관계자에 따르면 이강인의 자발적인 사과였다.
이강인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기간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물리적으로 충돌한 이른바 '탁구 게이트'로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주장이자 선배인 손흥민에게 항명해 하극상 논란을 빚었다.
한국 축구의 차세대 간판에서 순식간에 '문제아'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이강인은 자신을 향한 축구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큰 실망을 안겼다.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차전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황선홍 임시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이날 태국전 대비 최종 훈련을 소화했다.
소속팀 일정 탓에 합류가 늦어진 이강인은 전날(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그리고 이날 황선홍호에 합류해 훈련 전 취재진 앞에 서서 '탁구 게이트'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이강인은 "일단 이렇게 많이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이번에 기회를 주신 황선홍 감독님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라면서 "아시안컵 기간 너무 많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너무 많은 응원을 해주셨는데 그만큼 보답해 드리지 못하고 실망시켜 드려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도 이번 기회로 너무 많은 것을 배우게 됐고, 모든 분들의 쓴소리가 저한테 큰 도움이 되면서 많은 반성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좋은 축구 선수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람, 그리고 팀에 더 도움이 되고 모범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손흥민은 "분명히 사과할 용기도 필요한데,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인이가 더 단단해지고 대표팀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탁구 게이트'로 인한 갈등은 완전히 봉합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이강인은 직접 공식 석상에 서서 '탁구 게이트'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탁구 게이트'를 비롯한 여러 사건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축구협회는 커튼 뒤에 꽁꽁 숨어 눈치만 볼 뿐이었다.
'탁구 게이트'에 대한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 협회는 빠르게 이를 인정했다. 그동안 각종 논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모습과는 상반된 행보였다.
협회는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 후 거듭된 추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회 기간 선수단 관리 실패, 전술 부재 등 무능을 입증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선임 배경에 대한 의문이 그 시작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임 전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지난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독일)을 맡았지만 단 10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바 있다. 당시 구단과 상의 없이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사퇴를 발표하는 등 기행을 벌였다.
그런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에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원칙과 시스템을 무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축구 팬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정 회장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그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선임 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의혹을 풀기에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협회는 '탁구 게이트'에 이어 '카드 게이트'까지 겹치면서 혼란에 휩싸였다. 아시안컵을 앞둔 전지훈련 기간 축구협회 직원과 일부 선수들이 카지노에 쓰이는 칩을 건 카드놀이를 했다는 폭로가 터졌다.
소액의 내기였던 만큼 도박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64년 만의 우승을 목표로 대회에 나가면서 카드놀이를 했다는 것 자체는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협회는 해당 직원을 직위 해제하고 추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C조 3차전 공식기자회견에 참석해 각오를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논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해당 직원의 직위 해제 배경에 유니폼 뒷돈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한국은 아시안컵 요르단과 4강전에서 원정 유니폼을 입었는데 해당 직원이 홈 유니폼을 빼돌린 탓이라는 것이다.
협회는 이에 대해서는 적극 해명했다. 협회는 "해당 경기(요르단전)에서 한국은 AFC 경기 계획에 따라 원정팀이었다"면서 "조사한 결과 팀 내 유니폼 수량 부족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국제 대회에서 상대 팀 유니폼 색깔을 고려할 때 상충 이슈가 없다고 판단되면 홈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은 홈 유니폼에 대한 대표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관철하지 않았고, 협회는 이 같은 업무 방식에 대해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됐다며 직위를 해제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최근 대표팀 관련 업무에서 여러 의혹을 낳은 것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대표팀 관련 업무에서 이러한 일련의 의혹과 실망감을 드린 것에 대해 거듭 송구함을 말씀드린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강인처럼 직접 나서 고개를 숙인 인물은 없었다. 이강인에게 사과를 부추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는 "이강인 자의에 의한 사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선수 뒤에 숨는 비겁한 행보를 보였다.
결국 모든 부담은 이강인을 비롯한 선수들의 몫이 됐다. 선수들은 이 같은 힘든 시기에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3차전에 나선다.
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22위인 한국보다 79계단이나 낮은 101위로 비교적 약체로 꼽힌다. 역대 전적에서도 한국이 30승 7무 8패로 크게 앞선다.
하지만 자칫 승리를 놓칠 경우 이에 대한 비난의 화살도 선수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황선홍호는 협회가 떠넘긴 무거운 짐을 안고 속죄의 승리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