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젠 이종섭 거취 결단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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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장관. 윤창원 기자이종섭 전 국방장관. 윤창원 기자
혀(舌)는 동물의 입 안 아래쪽에 있는 길고 둥근 모양의 살덩어리다. 미각과 촉각이 있고 삼킴이나 발성에도 관여하는 매우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혀는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에 경계하는 말들이 생겨났다. 세 치 혀가 사람잡는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한 치가 3.03cm이니, 9cm 남짓한 혀를 잘못 놀리면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계의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마음가짐과 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지혜는 곧 생각이다. 혀를 통해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한다. 때론 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타인을 죽이기도 하고 자신이 죽기도 한다.
 
혀는 발성기관이지만 이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생각의 명령을 실행한 것일 뿐이다.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는 한 대부분의 경우 생각의 아웃풋이 혀를 통해 배출되는 셈이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연합뉴스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다. 지난 14일 황 수석이 일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라며 1980년대 언론인 회칼 테러사건과 5.18 민주화운동 배후 의혹 등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지 엿새 만이다. 만시지탄이다.
 
대통령실의 주요 책임자가 민주주의를 통째로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후배 언론인들에게 설파한 사실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크게 후퇴했다는 유럽 유수의 연구기관 보고서를 스스로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감동이 적은 법이다. 잘못임을 느낀다면 '즉시' 반응해야 그나마 진정성이 전달되는게 이치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 직후 황 수석은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사과드리며 공직자로서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겠다'는 취지의 짧은 사과문만 내놓았고, 대통령실도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며 시간을 허비하다 민심과 당심의 역풍에 떠밀려 사퇴를 수용했다.
 
황 수석 발언보다 더 민심을 요동치게 하는 문제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건이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고 외압의혹 사건의 피의자를 주요 우방국 대사로 임명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왜 이 시점에 무리하게 내보냈느냐를 둘러싸고는 국민적 의혹이 증폭됐고, 이종섭,황상무 파동은 수도권 지지율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대로는 선거를 못치른다는 여당내 불만이 당정갈등으로 이어지자 주요 방산협력대상국 공관장회의라는 카드가 등장했다. 정부가 오는 25일부터 호주와 사우디, UAE, 인도네시아 등 6개국 주재대사를 불러 공관장회의를 열기로 한 만큼 이종섭 대사는 조만간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를 대사로 보낸 건 상식적이지도 않고 수사를 물리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허들을 세운거나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실이 최근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밝혀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자초했다.
 
총선 악재로 다급해진 여권 내에서 이종섭 대사의 즉각 귀국을 종용하거나 나아가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며 이 대사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사안의 핵심을 비껴갈 뿐 묘수가 될 수 없다.
 
아그레망을 받고 대통령의 신임장까지 전달한 대사가 일방적으로 귀국하거나 자진사퇴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수사를 받기 위해 주재국을 자주 떠나야 한다면 외교관례에도 맞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요한 순간마다 공정과 상식을 약속했다. 지금이야말로 내놓았던 말의 진정성을 보여줄 때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이종섭 대사의 임명철회를 결단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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