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 '집단사직'에 파국 임박…의·정 대치 '악화일로'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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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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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전공의 이탈로 벌어진 의료공백이 만 4주째 지속되고 있지만 의·정 간 '강대강' 대치는 악화일로입니다. 서울대 등 16개 의대교수 비대위는 압도적 찬성으로 '25일 사직'을 결의했습니다. 이 사태를 풀려면 정부가 먼저 '의대 2천 증원' 추진을 철회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현장에 남은 봉직의·전문의 등도 "전공의 지지"를 표명한 가운데, 대화협의체에 대한 요구는 높아져 가지만 정부는 이번만큼은 '양보'를 전제로 한 협상엔 응하지 않겠단 입장입니다.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명지성모병원에서 환자들이 접수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명지성모병원에서 환자들이 접수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이 쏘아올린 의료공백 사태가 벌어진 지 18일로 만 4주째다. 수도권 5대 대형병원인 '빅5' 등의 전공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난달 20일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의(醫)-정(政) 대치는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감정의 골만 깊어지며 악화되는 양상이다.
 
전체 9할 이상이 현장을 떠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은 '면허정지 절차가 끝나기 전 복귀하면 처분에 참작하겠다'는 정부의 손짓에도 돌아올 기미가 없다. 설상가상 '제자 없이 직(職)을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의대 교수들도 사직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정부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과거 의·정 간 줄다리기를 '9전 9패'(정부의 전패)로 표현한 언론 보도까지 인용하며 "더 이상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동시에 '언제든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다. 한덕수 총리가 지난 15일, 점검차 방문한 서울대 의대 측과 뒤늦게 회동에 나섰지만, 대화협의체 구성은 여전히 난망한 상태다.

빅5, 매일 10억씩 적자…'마통' 한도 올리고 비상경영 '안간힘'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빅5 병원들은 사태 장기화에 따라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등 직격타를 맞고 있다.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일수록 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소위 '마통'(마이너스 통장)까지 불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중 전공의 비중이 46.2%로 가장 큰 서울대병원은 하루 10억 이상씩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래를 제외한 입원·수술 등이 절반으로 확 줄면서, 인건비를 졸라맬 수밖에 없게 되자 지난 4일부터 간호사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 휴가'도 신청 받고 있다.
 
원래도 연간 적자가 900억 안팎인 상황에서, 전공의 이탈은 치명타가 됐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500억 규모였던 기존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2배인 1천억으로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지난 1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교수연구동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지난 1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교수연구동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약 2주 만에 '비상 경영'에 들어간 서울아산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병상 가동률 등이 급감하면서, 매일 10억이 넘는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5일 경영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며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공식 선언했다. 금기창 연세의료원장 겸 연세대 의무부총장은 당일 내부적으로 발송한 협조요청 서신을 통해 "세브란스를 비롯한 산하 병원들의 진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 외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장 급하지 않은 지출을 줄이며, 사전에 승인된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시기와 규모 등을 한 번 더 고려해 달라"며 "세브란스를 찾는 환자의 안전과 교직원 여러분의 안녕을, 그리고 이번 사태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요즘 원내 상황은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라며 "3월 말이 지나면 진짜 파국이 시작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대로라면 병원들의 '줄도산'이 불가피하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25일 사직' 예고한 교수비대위, "정부가 '2천 명' 먼저 풀어라"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방재승 위원장(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토요일인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주보배 수습기자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방재승 위원장(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토요일인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주보배 수습기자
'제자'인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지켜 온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도 임박했다. 빅5에 들어가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서울대와 가톨릭대, 울산대는 일찌감치 교수들이 '자발적 사직'을 결의했다.
 
세 의대가 포함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지난 15일 온라인 회의를 거쳐 '20개 의대 중 16개 대학의 교수들이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며 "압도적인 찬성으로 (사직이) 결의됐다"고 밝혔다.
 
전국 40개 의대 중 절반은 교수비대위에 참여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계명대 △경상대 △단국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아주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 △한양대 등이다.
 
이 중 아직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한 4개 의대는 이번 주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직서 제출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교수들의 사직이 결정된 곳들은 집단 사직에 대한 찬성률이 자체 조사에서 최대 9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치도 73.5%에 이른다.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방재승 서울대 의대 교수는 "우리 교수들을 포함한 병원 의료진과 직원의 희생·헌신으로 대학병원 진료가 유지되고 있지만 남아있는 이들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또 "정부와 의사가 모두 살리려는 필수의료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사·교육자로서 병원과 학교를 떠나겠단 결정은 "힘겹고, 무겁고, 참담"하지만, 이 사태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만이 환자들의 피해를 줄이고 필수의료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란 게 교수비대위 측의 설명이다.
 
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이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와 달리, '어느 형태의 증원이든 수용 불가'란 입장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고집하는 '2천'이란 수치를 철회해야, 의료계와 정부의 대화가 물꼬를 틀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방 교수는 양측 모두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면서도 "정부에 더욱더 요청한다. 제발 2천 명(증원규모)이란 수치를 풀어 달라. 그러지 않으면 협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5일을 사직일로 정한 이유는 특별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날이 정부로부터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이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지서 수령 후 기한 내 관련 의견을 내지 않으면, 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예고대로 면허가 정지된다.
 
의대별로 응급실·중환자실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22일 회의에서 재논의한다. 그는 "(단) 사직서 수리가 되면 원칙적으로 그 대학 교수가 아닌 것"이라며 "병원과 환자를 지키고 싶어도, 떠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안팎 '대화' 요구 봇물…정부 "전공의 즉시 복귀가 우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의사들의 진료거부 중단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의사들의 진료거부 중단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같은 움직임이 대학병원, 또는 특정 직함에 국한된 흐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의사가운을 벗느냐, 아니냐'의 온도 차이일 뿐,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지난 8~14일 회원 3천여 명을 조사해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2967명)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필수의료 정책패키지 강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란 질문에 "부당한 조치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또 '전공의를 비롯한 대한의사협회 회원이 면허정지 등 사법적 조치를 당한다면 사직서 제출 등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란 문항에도 90%(2782명)가 "그렇다"고 동의했다. 설문에 응한 회원들은 일반 병·의원과 대학병원, 공공병원 등에서 일하는 봉직의(페이닥터)들이다.
 
공공의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NMC)의 전문의들도 지난 15일 "전공의들을 굳건히 지지한다"는 취지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NMC 전문의협의회는 "의사들을 척결의 대상이 아닌 의료개혁의 동반자로서 존중해 달라"며 즉각 정부가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계에서도 조속한 협의체 구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전공의 이탈 등을 '의사 진료거부'라 규정하며 이들의 조건 없는 복귀를 주장하면서도, 정부의 강공 모드가 '실효성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20년 당시 전공의·의대생으로부터 전임의·교수 등으로 번진 의사 집단행동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점을 들어 "이번엔 반드시 이 고리를 끊겠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YT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국민 생명을 전제로 겁박하는 것 같아 유감을 표한다"며 "제자들이 법을 위반해 처분을 받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은 법치에 대한 도전적 발언이다. '2천을 풀라' 할 것이 아니라 현장을 떠나 있는 전공의들이 즉시 복귀토록 해서 이 상황을 먼저 풀어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이 17일 오후 중앙의료원(NMC) 연구동에서 '전문의협의회 성명문 발표에 대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이 17일 오후 중앙의료원(NMC) 연구동에서 '전문의협의회 성명문 발표에 대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도 같은 날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소속 전문의협의회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주 원장은 "전문의들이 제자와 동료로서 수련과정에 있는 전공의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집단행동을 옹호하는 태도는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어가는 데 절대로 적절하지 않다"며 의대 교수들의 사직 결의를 두고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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