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규정된 이미지' 깨려고 노력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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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태영 역 정우성 ②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태영 역 배우 정우성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청춘의 혼란과 불안, 방랑을 다룬 영화 '비트'(1997)는 나온 지 2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우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여성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담배를 문 모습은 뭇 남성들의 마음마저 동요하게 했다. 수려한 외모, 반항아 같으면서도 왠지 처연한 분위기는 정우성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정우성은 한 가지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로 자신을 표현해 왔다. '러브',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새드무비', '데이지', '호우시절', '마담 뺑덕', '나를 잊지 말아요' 등 로맨스·멜로 장르에 집중하던 시기가 있었고, '무사', '중천', '검우강호' 등으로 사극 필모그래피를 쌓았으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서부극에 도전하는가 하면, '감시자들', '신의 한 수', '아수라', '더 킹' 등으로 범죄 액션을 선보이더니,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증인'으로는 각종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 개봉 기념 정우성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정우성은 연기를 시작한 20대 초부터 '규정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의외의 선택을 꾸준히 했다고 밝혔다.

◇ '아수라' 한도경과 '지푸라기' 태영의 차이

정우성은 '아수라'(2016)에 같이 출연했던 정만식, 윤제문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재회했다. 그는 "만식 씨, 윤제문 씨는 '아수라'에서의 관계와 비슷한 게 있었다. 예전에 호흡 맞췄던 관계 안에서의 감정을 우리도 모르게 소환하면 그런(비슷한) 관계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장에서도 '어, 이거 비슷해지면 안 되는데?' 했다. 저 역시도"라고 말했다.

정우성은 "그때 (제가) 잡고 간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아수라'의) 한도경이란 인물은 압박이 들어왔을 때 두려움이 있었다. 반면 태영은 (그럴 때) 불편하고 짜증 나고 싫어한다. (태영은 한도경과 달리)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리액션에 일부러 호들갑스러움을 더 많이 심은 것"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정우성은 사라진 애인 연희 때문에 빚에 시달리며 한탕을 꿈꾸는 태영 역을 연기했다. (사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한국영화 산업의 아쉬운 점으로 '다양성의 훼손'을 예로 든 그는 "그러다 보니 영화를 편집할 때도 자신감 가지고 고집 있게, 독특하게 편집할 수 있는 제작자나 감독은 별로 없을 거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역시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완성본을 보고 그가 느낀 건 '그래도 이 영화가 용기를 냈다'는 점이었다.

정우성은 "'대중은 이런 영화를 안 봐' 하면서 대중을 너무 대상으로 놓거나 '보기 편하게 만들어줘야 해', '쉬워야 해', '이건 너무 낯설지 않아?' 하는 건 선입견 같다. 그럼 (영화가) 비슷비슷한 갈무리가 되지 않나. 그런 면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작품"이라며 "우리는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제품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창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 규정된 수식어를 깨고 얻은 것, '자유로움'

정우성은 남성들이 주로 나오는 장르물의 선 굵은 역할에서 탈피해, 최근작 '증인'(2019)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로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찾고 있다. 그는 "(관객이 제게 하는 기대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라면서도 "20대 때부터 '규정지어짐'이 싫었기 때문에 '쟤는 왜 저런 선택을 하지?' 하는 의외의 선택을 꾸준히 했었다. 정우성이라는 배우에게 관객이 가졌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제게 (반응이) 달갑진 않았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정우성은 "'규정지어짐'에 머물지 않으려고 제 길을 뚜벅뚜벅 왔고, (그걸) 관객도 오랜 시간 봐 왔다. 그 긴 시간 관심 갖고 봐 왔던 관객에게만 속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젠 서로 '아, 너는 그런 길을 걷는 배우구나'라고 좀 인정해주는 것 같다"라고 운을 뗐다.

정우성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정만식, 박지환, 배진웅, 윤제문 등과 함께 연기했다. (사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예를 들어 '똥개'(2003)의 철민이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 주진 않았거든요. '왜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고 왜 밀양 사투리를 해?' 그런 얘기를 더 많이 들었거든요. 왜 '마담 뺑덕'(2014) 같은 작품을 선택해야 돼? 왜 네가 심학규를 해? 이런 얘기도 듣고요. 그럼에도 나는 계속 도전해서 기대를 깨나가는 게,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배우로서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완성'은 없겠지만 제 길을 가는 게 아닌가 늘 혼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우성은 "(예전엔) 뭔가 강한 표현을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좀 더 유연해졌다. 그런 시간이 축적돼서 지금 정우성의 표현 방식이 완성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라면서 "전작과 다른 캐릭터를 시도하고 도전하는 걸 계속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도전으로 얻은 것은 '편안함'과 '자유로움'이다. 정우성은 "내게 규정된 이미지, 수식어를 깨려고 했던 이유가 있다. 관객이 나한테 그 모습의 캐릭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지 않나. 기대를 깨는 데 굉장히 긴 시간을 들인 이유는 (작품을) 편하게 즐겼으면 하기 때문이다. 내가 구현하는 캐릭터를 편하게 즐기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처럼, 해 보고 싶은 장르가 있냐는 질문이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나를 잊지 말아요' 이후 뜸한 멜로에 출연할 계획은 없는지. 정우성은 "영화계에서 어느 순간 멜로 시나리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양성 얘기까지도 나오는 거고. 또,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굉장히 맞물리지 않나. 분위기가 편안했을 때 극장 와서 남의 사랑 얘기, 알콩달콩 하는 것도 보고 싶지. 그래서 그런 장르 제작이 귀해졌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

정우성은 "앞으로는 조금 여러 장르가 극장에 걸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사회적 분위기가 그만큼 편해졌다는 게 아닐까. 여러 장르가 걸릴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 역시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대표작이 있고, 멜로를 했던 배우들은 다 멜로에 대한 기다림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전도연과 로맨틱코미디를 해 보고 싶다는 귀띔과 함께.

◇ '창작자'로서 정우성이 구상하는 것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들. 맨 윗줄 왼쪽부터 '비트', '태양은 없다', '새드무비', '똥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두번째 줄 왼쪽부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호우시절', '감시자들', '신의 한 수', '마담 뺑덕'. 마지막 줄 왼쪽부터 '나를 잊지 말아요', '아수라', '더 킹', '강철비', '증인' (사진=각 제작사 제공)

 

올해로 27년차를 맞은 정우성은 올해 감독이자 제작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영화 '세 가지 색-삼생', '킬러 앞에 노인', '나와 S4 이야기'의 감독을 맡았던 그는 자신의 첫 장편 상업영화 '보호자'(가제) 작업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우주 SF 스릴러인 '고요의 바다' 제작에도 참여한다.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감독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감독' 위치에서 어떤 점을 주목하고 어떤 태도를 지키려고 할까. 정우성은 "산업은 자본으로 돌아가는 거라서 자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자들이 없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지 않나. 천만 영화는 천만 영화의, 오백만 영화는 오백만 영화의 툴을 인정해야 하고, 제작자들이나 감독들도 그렇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정우성은 "(제작비) 80억짜리, 200억짜리 영화가 다 천만(관객)을 꿈꾸면 안 되지 않나. 80억에 맞는 손익분기점을 책임지는 게 맞지. 자꾸 더 많은 관객을 좇다 보니 어떻게 보면 다양성의 여지를 포기하는 것 같다. 이쪽 입장에서의 자기반성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200~300만 영화도 고민하고 거기에 맞는 예산 안에서 어떻게 똑똑하게 영상을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다들 소박하게 시작했다가도 개봉 앞두고는 '(관객) 더 많이 들면 좋잖아' 하면서 허황된 욕심 갖고 갑자기 편집을 바꾸거나 하면 자기가 가진 독창성과 개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거죠. (…) 이쪽(영화계)에서 긴 생활을 해서 경험이 더 있는 사람들이 지금 막 새로 시작하는 영화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반짝반짝한 관점이 돋보이게끔 도우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결국 책임을 함께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요. 리스크 케어를 자본에만 맡기지 말고, 여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방식도 필요하지 않나 하고요." <끝>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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