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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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관련 4번째 무죄
재판부의 무죄 판단 납득하기 어려워
정운호 게이트 당시에도 법원 비난 여론 비등
사법부 국민신뢰 얻기 위해 스스로에 대한 잣대 엄정해야

'사법농단 연루'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판사들의 비리가 담긴 검찰 수사기록을 불법으로 상부에 알려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명의 현직 판사에게 1심 법원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4번째 무죄 판결인데다 판사의 개인 비리가 연루된 사건이란 점에서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하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된다.

정운호게이트는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였던 정씨가 상습도박혐의로 기소되자 변호를 맡았던 검사장 출신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정씨로부터 엄청난 수임료를 받은 뒤 이돈의 일부를 법조계 등에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사건으로, 부패한 우리나라 법조계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재판을 받은 세 사람은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던 신광렬판사와 영장전담부장판사였던 조의연, 성창호판사. 이들은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각종 영장과 영장에 첨부된 사건기록에서 판사 등 법조인 관련 수사 상황과 계획을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사실이 적발돼 공무상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무죄선고 이유로 여러 가지를 나열했지만 핵심은 세 판사가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 기밀에 해당할 만큼 가치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재판부의 설명은 이렀다. 당시 정운호씨를 둘러싼 법조비리 사건으로 법원과 검찰이 표면적으로는 갈등을 빚었지만 사법행정을 위해 상조협조관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과 검찰측 간부 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수사관련 정보가 깊숙이 공유됐으며, 세 명의 판사들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내용은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

한마디로, 세 판사가 보고한 내용은 법원행정처가 다른 경로를 통해 이미 파악한 내용이어서 기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없고, 따라서 기밀누설로도 불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법원의 이런 판단은 보편적 상식과 통념에 비춰 볼 때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수사가 끝날 때까지 영장에 적시된 범죄혐의는 영장판사만 알아야하는 기밀이며 이를 외부로 유출하는 행위는 엄연히 공무상기밀누설로 처벌 받아야 한다. 이는 피의자의 인격보호와 함께 진행 중인 검찰 수사 내용과 방향이 피의자들에게 유출됨으로써 검찰수사가 방해 받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영장의 내용과 수사기록을 복사해 그것을 법원 내부 건 외부 건 유출하는 것은 명확히 불법이다.

판사들이 유출한 범죄 관련 내용이 법원행정처가 다른 어떤 경로를 통해 알고 있던 것이면 결과적으로 죄가 되지 않고, 몰랐던 내용이면 죄가 성립한다는 법원의 판단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보고받은 사람이 기밀의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해서 영장담당판사가 영장과 수사기록을 복사해 상부로 보고한 불법을 합리화시키는 논리를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판결문 내용대로 검찰관계자들이 수사 중인 내용을 법원에 알려주었다면 이 또한 규정위반이 아닌지 따져보고 그것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맞다. 또한 행정처에 보고한 내용의 많은 부분이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기밀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재판부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설령 내용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공식 수사기록을 통해 얻은 정보는 언론 보도로 알게된 것과 신빙성이나 가치의 측면에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재판부는 또 유출된 범죄정보가 사법부 신뢰확보를 위한 법원 내부보고용으로만 사용됐다며 범죄수사와 영장재판의 기능을 방해하는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법원행정처는 현직법관 7명과 그 가족 등 31명의 명단이 든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두 영장전담판사에게 전달했고, 공교롭게도 두 판사는 이들과 관련된 영장들을 무더기로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국민들의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번 재판부도 당시 영장기각에 문제가 없었다고 강변했다. 한 솥밥을 먹는 판사가 판사에 대해 내린 이 결정에 건강한 사리 판단과 분별력을 가진 일반인들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유출된 기밀이 사법부의 신뢰확보 용도로만 사용됐다며 이를 범죄정보 유출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명분으로 내세웠다. 정부의 다른 행정기관에서 유사한 사례로 범죄관련 정보를 요청한다면 법원은 응해야 한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그리고 설명 목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과정이 불법이면 불법이다.다만 정상을 참작해 형량에 반영할 수는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사법기관은 다른 어떤 기관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특히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엄정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고 권위를 갖게 된다.

잇따른 법원의 무죄 결정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 상식에 비춰 법원의 이번 결정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 수사가 한창일 당시에도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고, 특별재판소 설치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처럼 법원의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재판에 대해서는 배심원제를 확대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공수처신설 등의 검찰개혁으로 이어진 사실을 사법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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