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증오의 세상'에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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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혐오가 넘치는 한국사회
증오는 명확한 개인이 아닌 모호한 경계를 가진 집단이 대상
증오와 혐오는 가장 쉽고 저열한 의사표출 방식
편견의 시선을 걷어내고 '똘레랑스(관용)'의 세상으로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2019년 현재 한국은 '증오의 세상'이다.

이 땅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와 외침에는 혐오와 비난이 가득하다.

목사라고 지칭되는 어떤 인사는 '하나님도 까불면 죽는다'는, 말 인지 쓰레기인 모를 것을 입으로 내뱉으며, 연일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좌빨'(좌익 빨갱이)과 '꼴보'(꼴통보수)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이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곳에 서서 칼끝을 겨누고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는 그녀의 저서 '혐오사회'에서 증오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그녀는 비교적 다양성이 인정되는 독일 사회에서도 '증오'의 대상이 되는 성 소수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회적 증오의 대상은 명확히 지칭 할 수 있는 '개인'이 아니라 모호한 경계로 둘러싸인 어떤 집단이라고 지적한다.

유대인들, 여자들, 레즈비언들, 난민들, 정치가들...처럼

우리 사회에는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부당한 '증오와 배척의 잣대'가 존재한다.

좌익,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특정지역 출신은 물론 정치인과 연예인도 대상이고, 심지어 여성과 남성과 같은 '성별'조차 '증오의 기준'이 된다.

특정 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표출하는 것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주장하거나 요구할 때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저열한 방식이다.

그저 비난하고 혐오하면 그 뿐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책임이나 발생되는 병폐에 대한 책임은 없다.

그 집단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인격적 존재'인지는 완전히 배제되고 무시된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그저 '좌빨'이거나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라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경계선 안에 뭉개져 있는 부속품일 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증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되돌아본다.

이런 증오를 불식시키고 서로를 화해의 끈으로 이어줘야 할 종교세력마저 증오를 부추기고 있어 더 걱정스럽다.

'나'를 멋대로 규정한 틀을 깨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증오'에 저항해야 한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그것이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서로를 바라보는 편견과 혐오의 시선을 걷어 내야한다.

카롤린 엠케는 이렇게 제안한다. "서로를 좋아할 필요는 없어도, 서로를 허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

새해에는 서로를 허용하는 똘레랑스(tolerance, 관용)의 물결이 '증오의 시대'를 넘어, 우리 사회에 넘쳐흘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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