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부터 동백母 '정숙'까지, 배우 이정은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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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동백꽃 필 무렵'을 보내며 ②] 옹산 사람들을 만나다 ⑹ 조정숙
노컷 인터뷰 - KBS2 '동백꽃 필 무렵' 조정숙 역 배우 이정은

KBS2 '동백꽃 필 무렵' 조정숙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은 (사진=방송화면 캡처)
"내가 너 위해서 딱 하나…. 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갈게…."

_KBS2 '동백꽃 필 무렵' 정숙이 동백에게

"근데 겨우겨우 널 찾고 보니까, 네가, 진짜로 술집을 하고 사는 거야. 그것도 미혼모로. 정말로 내 팔자를 물려받았나, 억장이 무너졌는데…. 근데 가만, 들여다보니까. 네가 웃어. 네가 웃는 거야. 너는 나랑 다르더라고. 못 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네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 와 이런 얘기를, 너한테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_KBS2 '동백꽃 필 무렵' 38회 중 정숙의 편지 중

부모 없는 아이, 팔자 센 아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까멜리아' 주인 동백(공효진 분)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나타났다. 일곱 살 동백에 박카스 한 박스 안겨주고 보육원 앞에 버렸던 엄마 정숙이 나타났다. 엄마는 치매에 걸려 돌아왔다. 치매 때문에 동백의 아들 필구(김강훈 분)를 '동백'이라고 부르는 정숙은 늘 동백을 향해 말한다. 주문처럼 외운다. "내가 너 위해서 딱 하나…. 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갈게…."

느닷없이 나타난 정숙은 등장부터 그의 숨겨진 사연이 밝혀지기까지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극 도중에 툭 튀어나와서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단순히 '동백이 엄마'의 등장이 아니라 도대체 '조정숙'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뭔가 있을 거 같은데 뭘까, 자꾸 조정숙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게 했다. 배우 이정은이 만들어 낸 조정숙 캐릭터가 가진 힘이었다.

조정숙 뒤로 감춰진 사연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고 물음을 갖게 만든 건 이정은의 힘이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정은을 만나 '동백꽃 필 무렵'과 조정숙, 그리고 그의 연기 인생에 관해 짧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정은은 인터뷰하는 종종 큰 소리로, 매우 유쾌하게 웃었다.

배우 이정은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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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은을 위로한 따뜻한 이야기 '동백꽃 필 무렵'


지난 11월 21일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종영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작품을 마친 실감이 나냐고 물었더니 이정은은 아직도 드라마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작품을 통해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화목할 수 있는지, 막내 스태프까지 다들 정말 착해요. 스릴러물은 배우도, 스태프도 긴장하는데 이런 인간적인 작품은 서로 위안받고 모니터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정말 분위기가 다른 거 같아요. 임상춘 작가와 차영훈 감독의 결인 거 같아요. 두 분의 결이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서로에게 따뜻한 부분이 있고, 그런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작가와 연출자, 배우, 스태프들이 합심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이정은은 처음엔 '동백꽃 필 무렵' 섭외를 고사했다. 드라마 '아는 와이프'와 이미지가 반복되고, 이른 나이에 치매 걸린 엄마 역할을 맡은 거 같아서다. 그러나 차영훈 PD가 부모와 자식 간 이야기, 좋은 드라마를 만들 테니 같이 하자며 이정은의 마음을 흔들었다. 임상춘 작가의 전작 '쌈, 마이웨이'를 함께한 경험도 이정은을 움직였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조정숙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은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출연한 배우, 연출자가 입을 모아 극찬한 임상춘 작가의 글맛에 대한 칭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정은은 "극 중 어린 친구부터 나이 많은 캐릭터까지 그 나이대의 언어로 표현됐다. 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말이다"라며 "또 현실적인 언어를 끌어와 모두를 공감하게 만들고, 주옥같은 대사가 많았다. 임상춘 작가는 어디서 살다 온 건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사 구현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정숙이란 역할을 통해 작품으로 들어갔던 이정은이 생각하는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 요인 중 하나도 역시 '필력'이다. 이정은은 "역시 필력이 엄청난 인기 비결 아닌가. 고두심 선생님 말씀처럼 글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들도 이 드라마를 많이 봤다고 들었다"며 "글을 쓰는 형식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손을 잡아주는 이야기예요. 이웃이 되어 주고, 사람들의 도닥임 속에서 자립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동백을 통한 이웃과의 성장, 자식과의 성장 등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끈 요인 같아요. 그리고 보통 여성이 주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선 주체적인 인물도 많이 나오고, 모녀 관계를 한 면만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보여줘요. 또 어느 날은 멜로, 어느 날은 스릴러, 어느 날은 신파가 나와요. 복합장르라고 하는데 인생이 복합적이니까요. 내가 어디서 이 이야기를 봤나 했더니 차영훈 감독님 인터뷰 때 나온 이야기네요. 하하하하하. 너무 맞는 말이라 생각해요."

KBS2 '동백꽃 필 무렵' 조정숙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은 (사진=방송화면 캡처)
◇ 이정은이 그려낸 '조정숙', 그를 통해 던진 '엄마'에 관한 묵직한 질문

정숙은 치매인 척하고서라도 제 손으로 버린 딸을 보고 싶었다.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이며 잠시라도 동백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7년짜리 엄마였던 정숙은 시한부다. 자신의 남은 생이나마 동백을 위해 살고 싶었다. 그렇게 '7년 3개월짜리 엄마'가 되기 위해 어렵게 동백을 찾아온 "정숙은 매다." 동백의 근처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동백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렇게 동백의 머리 위를 맴돌며 결정적인 순간 수직 강하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조정숙도 사회가 바라는 전형적인 엄마의 길은 걷지 못했다. 일곱 살 어린 동백이를 버렸다. 사회가 생각하는 모든 엄마와 모성이 아니라 현실의 팍팍하고 고된 삶을 홀로 맞서 이겨내야 하는 외로운 엄마였다. 사회가 떠밀듯 몰아준 부조리까지 조정숙은 홀로 짊어졌다.

"엄마는 어떤 사회적인 자기 역할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세상에는 준비가 안 된 엄마도 많이 있는 거 같아요. 엄마라는 존재 없이 사는 엄마가 않은데, 그런 사람들의 입장을 조정숙이 가장 잘 담은 거 같아요. 저 역시도 우리 엄마가 없다면, 가족이 없다면 자식을 낳고 어떤 엄마 모델을 멘토 삼아서 아이를 키우게 될지 고민스러울 거 같아요. 특히 한부모나 경제적 능력이 없을 때 나도 저 여인처럼 아이를 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겠는가 질문을 던졌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 역할 아니었나 생각해요."

KBS2 '동백꽃 필 무렵' 조정숙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은 (사진=방송화면 캡처)
어린 동백을 버린 엄마, 엄마 없이 홀로 세상의 편견 속에 동백을 살게 한 엄마 정숙. 정숙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아이를 안고 집을 나왔지만 갈 곳도, 돈을 벌 수 있는 길도 막막했다. 술집 주방, 식당 등을 전전해야 했고, 아이가 속한 환경은 아이에게 좋지 않았다. 홀로 아이를 키우자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고, 아이는 늘 배가 고프다며 울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조정숙의 삶은 많은 시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정숙은 신장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시한부다. 그러나 차마 동백이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모텔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 한다. 침대에 누운 정숙의 머리 위로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미러볼에 반짝이며 돌아간다. 해당 장면을 찍을 때 이정은은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모텔에 누워 있을 때 실제로 만감이 교체하더라고요. 머리 위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으니 인생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나의 인생은 뭐였을까. 그리고 여관방을 돌아다니며 전전긍긍하던 정숙의 삶, 비 오는 날 자기 딸을 놔두고 모텔 방에 누워 있는 정숙의 심정을 생각하게 됐어요. 정말 인생이라는 게 파란만장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죽을 때까지 연기가 하고 싶은 이정은은 늘 열려 있고 싶다

파란만장한 연기 인생을 거친 배우 이정은에게 2019년은 더욱 특별하다. 어느덧 내년이면 연기 경력 30년 차를 맞는 이정은은 올해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가 열연한 영화 '기생충'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했다. 또 이정은에게 올해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조연상, 제24회 춘사영화제 여우조연상, 제40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씬스틸러상·배우 부문 포커스상 등이 주어졌다. 누군가는 '이정은의 해'라고까지 말한다.

"영화 '기생충'은 워낙 좋은 시나리오라 좋게 평가받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거기에 일조하는 역할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그게 여우조연상으로 이어질지는 몰랐어요. 사실 이렇게 뒤늦게 잘 됐다고들 하시는데, 저는 빨리 된 거 같아요. 연극 무대에 오래 있다가 영화, 드라마 쪽으로 왔는데, 우리 대표와 이야기한 게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극배우라는 자긍심을 버리고 시작하자는 거였죠. 차근차근 단역부터 했는데 제 딴에는 빨리 주목 받은 거 같아요. 많은 분이 도와주고 저를 찾아주고 격려해주신 덕분이죠. 그리고 시대도 한몫한 거 같아요. 주목하지 않은 역할에 사람들이 관심을 줬다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이정은에게 배우, 그리고 연기란 무엇인지 물었더니 "죽을 때까지 했으면 싶은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늘 같이 따라다니는 친구이고, 그냥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라며 "이걸 천운이라고 하나. 나는 이게 평생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연기하는 동안은 싫증이 나지 않고 재밌다. 연기를 못하면 화가 나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정은은 자신을 여러 가지로 활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 스스로 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시청자나 관객이 바라보는 나를 다르다. 여러 층위의 내가 있다"며 "그런 나를 여러 면에서 활용해주면 좋겠다. 고정관념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은은 "닫혀있지만 않는다면 여러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을 더 오픈하려고 한다"며 "내가 열려 있다면 충분히 어떤 글이든 소화할 기회가 온다고 본다. 그렇기에 나이 들수록 더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은의 차기작은 주말드라마다. 그는 '역도 요정 김복주', '아는 와이프'의 양희승 작가의 차기작이자 KBS 주말극인 '한번 다녀왔습니다'에서 김밥집 사장님 역할을 맡았다. 이정은은 "양희승 작가님을 워낙 좋아한다. 작가의 성품, 글, 작업 방식, 글의 결과물 모두 좋아한다"며 "작가님이 내 스케줄을 묻길래 같이하자고 했다. 이번 역할을 통해서 내가 나름 변신해야 하는데 고민이 여러 가지로 많다. 고민이 시작된 거 같다"고 말했다.

2019년 바쁘게 살아온 이정은은 2020년도 바쁜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이정은에게 2020년의 화두는 무엇인지 물었다.

"주말드라마를 열심히 하자! 하하하하하하.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니까요. 드라마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홍보도 열심히 할 거고,, 양희승 작가님과 감독님이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들을 수 있게 배우들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드라마를 만드는 건 한 사람의 힘만으로 안 돼요.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필요한데, 그런 거에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부터 장기전입니다." (웃음)

배우 이정은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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