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혜란과 홍자영에게 '동백꽃 필 무렵'은 '성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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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동백꽃 필 무렵'을 보내며 ②] 옹산 사람들을 만나다 ⑷ 홍자영
노컷 인터뷰 - KBS2 '동백꽃 필 무렵' 홍자영 역 배우 염혜란

KBS2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홍자영 역으로 열연한 배우 염혜란 (사진=방송화면 캡처)

 

"얘. 너, 결혼이라는 게 뭔 줄 아니? 결혼이 뭐냐면, 난 노규태를 금가락진 되는 줄 알고 골랐는데, 살아보니까 이게, 놋가락지도 안 되는 거야. 근데 더 압권은, 시부모는 나한테 다이아나 준 줄 안다는 거지. 뭐 대단한 거 줬다고. (중략) 너, 내림굿이라고 알지? 이제 네 차례야. 내가 너 줄게. 내 인생, 노규태만 빠지면 수습이 될 거 같거든? 그럼, 너만 믿는다."

"안 잔 게 유세니? 똥 싸다 말았으면 안 싼 거야? 나는, 평생 못 잊어."

_'동백꽃 필 무렵' 22회 중 홍자영의 대사

"자영은 고양이다." 옹산 마을에서 제일 도도하고 똑똑한 고학력자 홍자영. 전교 1등, 고학력, 전문직 등 꾸준히 높은 데서, '1등'으로만 살아온 홍자영에겐 자존심이 '1번'이다. 표정도 도도하고, 말도 늘 모노톤이다. 그런 그가 눌러왔던 감정을 처음으로 표출했다. 남편 노규태(오정세 분)와 홍자영의 마음을 내내 긁어온 그녀 '향미'(손담비 분)와 삼자대면을 하고 온 후다.

눈물이 고인 와중에도 최대한 절제해 말할 줄 아는 게 홍자영이다. 절대 흥분해 큰 소리 내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할 말만 한다. 그래서 홍자영은 외롭다. 자기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저 높은 데서 홀로 외롭다. 남편에게 이혼 선언을 하고 집을 나와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없다. '까멜리아' 앞에 홀로 선 "홍자영은 고양이다."

그런 홍자영을 연기한 배우 염혜란은 '카멜레온'이다. 빛의 강약과 온도, 감정의 변화 등에 따라 몸의 빛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염혜란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딸('디어 마이 프렌즈'), 조카를 구박하는 못된 이모('도깨비'), 깔끔한 일 처리 실력을 가진 능력비서('라이프') 등 작품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며 전작의 캐릭터를 잊게끔 만든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염혜란을 만났다. '멋진 언니', '국민 누나' 홍자영만큼 염혜란도 '멋진 사람'이라는 게 그의 말과 표정에서 묻어났다. 노규태를 구하기 위해 드리프트를 선보인 홍자영처럼 말이다.

배우 염혜란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

 

◇ 염혜란에게 '처음'을 선물해 준 '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은 저한테는 '처음'이란 단어를 많이 선물해준 작품이에요. 처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해봤어요. 보고 깜짝 놀라서…. 저한테 첫 경험을 많이 해준 드라마라서 감사해요. 감사한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됐어요." (웃음)

'동백꽃 필 무렵' 대본을 처음 접했을 때 염혜란은 "너무 재밌었다"고 말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좋은 대본을 접한 즐거움이 가득했다고 했다. 그는 "대본 리딩 현장이 그렇게 생명력 넘치는 걸 처음 봤다. 리딩할 때는 사실 어떤 기운들이 많이 보이기 어려운데, 꽉 찬 자리에서 생동감 있게 대본을 읽어나가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고 말했다.

대본 안에는 어느 장면에 어떤 음악이 깔린다는 디테일한 지문도 많았다. 염혜란은 "'이 장면은 그 노래가 깔리며 나오는 거야?' 하면서 재밌어했다"며 "장면마다 사용하는 음악을 을 보면 작가의 감각이 10대처럼 보이는데, 또 엄마 이야기가 나올 때 보면 중견작가 같았다. 이건 정말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내공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좋은 대본이 잘 구현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그는 "세상에 나온 건 더 좋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배우 염혜란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 오른 염혜란은 대본에 충실한 편이다. 작가가 토씨 하나 얼마나 정성 들여 대본을 써 내려 가는지 알기에 무대에서 애드리브를 거의 안 한다. 염혜란은 이번 작품은 특히 애드리브 자체가 '흠'일 정도로 잘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님이 써놓은 말맛이 너무 재밌어서 그 '말맛'을 살리려고 되게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온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좋은 작가의 좋은 대본, 그걸 구현해 낸 좋은 배우들과 감독, 스태프와 함께 오랜 시간 공들여 시청자들에게 '동백꽃 필 무렵'을 선보였다. 예상 밖의 큰 인기에 놀라기도 했다. 염혜란은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를 알찬 '종합선물세트'에 비유했다.

"'종합선물세트'는 보통 안 팔리는 걸 모아놨잖아요. 근데 '동백꽃 필 무렵'은 제일 잘 팔리는 것만 모아 놓은 거 같아요. 좋아하는 것만 말이죠. 삶을 바탕으로 한 로맨스가 전개되는데, 그 로맨스도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만들어놨죠. 전혀 다른 장르인 스릴러도 잘 믹스시켜놨고요. 휴먼 드라마도 한 사람 한 사람 애정을 갖고 써준다는 게 다 보이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한 드라마로 녹일 수 있을까 생각했죠. 각 장르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도가 있는데, 그걸 조화롭게 만들어 놓은 건 역시 작가님의 힘 같아요."

KBS2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홍자영 역으로 열연한 배우 염혜란 (사진=팬엔터테인먼트 제공)

 

◇ '멋진 여자' 홍자영 안에 숨겨진 고독감, 그 고독감이 염혜란에게 다가왔다

강한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채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는 고양이는 포식자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고 도도해 외로움이라고는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립적이라고 해서 전혀 외롭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고고함으로 외로움을 감출 뿐이다. 홍자영이 그렇다. 도도의 아이콘, 곧 죽어도 자존심으로 겉을 둘러쌌을 뿐 홍자영에게도 '외로움'이란 감정이 존재하고, 그런 홍자영에게는 '사랑'이란 따뜻한 감정이 필요하다.

"홍자영은 진짜 여자가 봐도 멋있는 여자죠.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이 홍자영의 성장기라고 봐요. 홍자영은 규태처럼 투명하게 살지 못해 모든 게 깐깐해요. 자존심 지켜내느라 솔직하게 감정을 전하지도 못해 고독하고 외롭죠.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도 될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홍자영은 옹산의 '이방인' 내지 '경계인'처럼 보인다.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옹산 사람들과 달리 홍자영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극 중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건 옹상 밖에서 온 동백과 향미, 필구, 강종렬 정도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동질감이라는 게 있다. 홍자영은 관계에서도, 그러한 동질감에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KBS2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홍자영 역으로 열연한 배우 염혜란 (사진=팬엔터테인먼트 제공)

 

노규태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짐을 싸 들고 나온 홍자영이 아픔을 달래고자 술 한잔할 사람을 찾았지만, 정작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 홍자영은 옹산에서 자신이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걸까. 염혜란은 "그렇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너무 안 된 캐릭터예요. 나한테는 규태 밖에 없고, 술 마실 사람도 규태 밖에 없는데 규태한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라며 "자존심을 떠나 너무 불행했다. 어찌 됐든 문제를 다 해결했는데, 그런 홍자영에게 술 마실 친구 하나 없더라. 그때 눈물 날 뻔했다. 어떡하지, 이 여자 너무 안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자영은 처음에는 자신의 자존심을 살살 건드리던 동백(공효진 분)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러던 홍자영이 동백에 대한 오해를 풀고, 노규태와의 일을 겪은 후 동백에 이렇게 말한다. "동백 씨 마음엔 동백 씨 꽃밭이 있네. 난 그 수능 표 꼭대기 먹고 그 유명한 법대 간 사람인데. 내 꽃밭이 없더라."(37회 중) 홍자영은 동백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던 걸까. 홍자영에게 동백은 어떤 존재였을까.

"동백이를 만나면서 홍자영이 갖고 있던 편견이나 홍자영의 삶의 방식이 조금씩 무너진 거 같아요. 홍자영은 백을 갖고도 하나가 없어서 늘 그 하나를 갈망하죠. 나의 행복을 밖에서 평가해주는 게 컸고, 그런 거로 자존심을 세운 사람이죠. 그런데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며 자신만의 꽃밭을 가꾸는 동백이를 만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자존심'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허상이고, 내가 편견에 갇혀 있었음을 깨달은 거죠."

배우 염혜란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

 

◇ 여전히, 지금도 배우로서 성장해가고 있는 염혜란

홍자영을 누구보다 멋있게 그려낸 염혜란은 지난 2000년 연극 '최선생'을 통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20여 년간 무대에 오르던 그는 '살인의 추억'(2003), '밀양'(200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영화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염혜란을 TV라는 매체로 이끈 건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2016)다. 이후 '도깨비'(2016), '7일의 왕비'(201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7), '라이프'(2018) 등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완성된 이야기와 완성된 캐릭터를 바탕으로 연기했다. TV로 오니 매회 서사와 인물을 쌓아가야 했다. 무대에서는 오로지 관객의 시선만이 존재했지만, TV에서는 카메라가 자신의 연기를 응시했다. 염혜란은 그래서 드라마가 "더 어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매체 연기'에 익숙하지 못한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게 노규태 역의 배우 오정세다.

"무대에서는 서로 연습하는 기간도 많으니 수정할 수 있는 기간도 많죠. 드라마는 그럴 시간도 없고, 시간이 다 돈이죠. 한 번 더 찍고 싶어도 그걸 더 하자는 게 죄송해요. 많은 사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규태 덕분에 한 번 더 '해볼게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규태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받으러 가는 장면이었죠. 그때 컷이 났는데 안타까운 거예요. 다른 신을 찍기 위해 세팅까지 바뀐 상황이라 더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규태가 말해줘서 한 번 더 찍었죠. 나중에 감독님들이 왜 말을 못 했냐고,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아직은 한 번 더 찍자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촬영 현장이 돌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 못 해서 집에 오면 이른바 '이불 킥'(자려고 누웠을 때, 부끄럽거나 창피스러운 일이 불현듯 생각나 이불을 걷어차는 일)을 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라는 매체가 갖는 매력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그는 "연극 무대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가 내 안에 훅 들어왔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기록에 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걸 기록으로 남긴다는 게 드라마의 매력이자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말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 1954)에서 줄리에타 마시나가 맡은 '젤소미나'

 

이렇게 염혜란은 무대 안팎에서, 카메라 안팎에서 자신의 다양한 연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아직 보여주고 싶은 모습, 해야 할 연기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염혜란이 배우 인생을 살면서 시청자 내지 관객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고 한다. 바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 1954)에서 줄리에타 마시나가 맡은 '젤소미나' 같은 역할이다.

염혜란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길'이다. 연극에서 해보긴 했지만 '길'의 젤소미나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며 "그런 정말 순수한 영혼을 가진 친구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아직 너무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덧붙였다.

"배우라는 직업이 일희일비하기 정말 좋은 직업인 거 같아요. 그럴 때 내가 정신을 붙잡고 평상심을 지킨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단단한 것들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어요. 끝까지 변질되지 않는 지금의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누가 칭찬해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할 때 느끼는 만족감을 향해서 가야겠다고 생각해요." (웃음)
배우 염혜란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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