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버려진 제주 4·3, 대마도가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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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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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품은 제주 4·3 ⑥] 수장 시신 위령하는 일본인
4·3 희생자 수습한 아버지에 이어 공양탑 세운 아들
2014년부터 자비로 4·3 위령제 여는 '한라산회'
김시종 시인 "희생자 공양탑…앞으로 한·일 시민이 가야 할 길"

70년 전 한국인 시신을 수습한 아버지 故 에토 히카루 씨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에토 유키하루(62)씨. (사진=고상현 기자)

 

※제주 4‧3 당시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만 3만여 명. 이 중 '수장' 학살된 사람은 기록도 없을뿐더러 먼 타국 대마도까지 시신이 흘러가 여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CBS는 대마도 현지에서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그들을 추적했다. 2일은 여섯 번째 순서로 70년 전 수장 시신을 거둬주고 지금까지도 위령하는 대마도 주민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생(生)의 기억조차 말살…제주 4·3 수장 학살의 비극
② "손발 철사로 묶여…" 대마도로 흘러간 제주 4·3 희생자
③ '시신 태우는 곳', 대마도에 남은 4·3 수장 희생자 흔적
④ 4·3 수장 시신 흘러간 대마도, 지금은 제주 쓰레기가…
⑤ 대마도에 떠오른 시신, "밀항한 제주인과 닮아"
⑥ 바다에 버려진 제주 4·3, 대마도가 품다
(계속)


제주 4‧3 당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수장(水葬)된 희생자들은 먼 타국, 일본 대마도까지 흘러갔다. 그 시신을 수습해준 건 대마도 주민이었다.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희생자를 위해 대를 이어 공양탑을 세우고 위령제를 열고 있다.

◇ "인간의 도리" 대를 이어 수장 시신 위령하는 일본인
지난 10월 15일 대마도 히타카츠의 자택에서 만난 에토 유키하루(62)씨. (사진=고상현 기자)

 


"바다에서 돌아가신 분을 공양하는 것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도 그런 생각으로 시신을 수습하셨을 거고, 저도 같은 일을 겪는다면 똑같이 할 겁니다."

지난 10월 15일 저녁 대마도 히타카츠의 자택에서 만난 에토 유키하루(62)씨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 故 에토 히카루(2007년 81세 나이로 사망)씨는 4‧3 당시 대마도 사고만 해안으로 수백 구의 한국인 시신이 흘러오자 친구 5명과 함께 시신을 거둬 인근 해안에서 화장하거나 매장해줬다. 20대 중반 때의 일이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에토 씨도 지난 2007년 250만 엔(한화 2600만 원)을 들여 매장지 인근에 있던 어머니 땅에 희생자 공양탑을 세웠다. 아버지가 숨진 직후였다.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 같아서 결심하게 됐습니다."

2007년 이후 에토 씨는 매년 8월마다 꽃과 음식, 술을 들고 공양탑을 찾아가 희생자를 위령하고 있다. 일본에서 8월은 죽은 자의 영혼을 맞아들여 대접하고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달로, 일본어로 '오봉(お盆)'이라고 한다. "공양탑에 가면 희생자 영혼에 음식을 대접하고, '고이 주무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옵니다."
에토 씨와 그의 어머니 에토 타츠코(88‧사진 오른쪽)씨. (사진=고상현 기자)

 


공양탑 부지를 선뜻 내준 에토 씨의 어머니 에토 타츠코(88)씨도 남편에 이어 아들이 한국인 시신을 위해 공양탑을 세워준 데 대해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남편이 생전에 나라가 달라도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고 했어요. 어느 나라 사람이든 소중한 사람이니깐 그렇게 해야죠."

에토 씨 부자 외에도 대마도 각지에서 4‧3 당시 해안가로 흘러온 한국인 시신을 마을 주민들이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제주CBS 취재진은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 상대마도 사리에 마을, 중대마도 고후나코시 마을, 하대마도 마가리 마을과 이즈하라 시내 등지를 취재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인 시신 30여 구가 매장된 고후나코시 마을에서 만난 어부 나카시마 노보루(68)씨는 70년 전 부모 세대가 한국인 시신을 수습한 데 대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말했다. 나카시마 씨는 지난 10월 17일 육로로는 갈 수 없는 매장지를 직접 자신의 배(1t)에 취재진을 태워 안내했다.

"개나 고양이 사체가 파도에 떠밀려 와도 그런데,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수습해서 매장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조상들도 그런 마음으로 한국인 시신을 수습했을 겁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사이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지만, 민간의 협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7일 대마도 고후나코시 한국인 시신 매장지를 취재진에게 안내한 나카시마 노보루(68·사진 왼쪽)씨. (사진=고상현 기자)

 


◇ 김시종 시인 "에토 씨 공양탑…한·일 시민이 가야 할 길"

2014년부터는 일본 오사카 등지에 사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대마도에서 4‧3 수장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열고 있다. 나카타 이사무(71)씨가 주축이 된 '한라산회'가 그들이다. 이들은 2008년 제주에서 열린 '4‧3 60주년 추념식'에 참석했다가 4‧3을 기억하는 일본인 모임인 한라산회를 만들었다. 회원만 현재 120여 명에 이른다.
지난 9월 29일 열린 '제3회 제주도 4·3사건 희생자 쓰시마·제주 위령제' 모습. (사진=고상현 기자)

 


한라산회 회원들은 지난 2013년 '대마도에 4‧3 수장 시신이 흘러왔다'는 일본 언론 보도를 접한 뒤 한 사람당 5만 엔(한화 53만 원)씩 거둬 위령제를 열고 있다. 올해까지 <대마도해협 조난자 추도비>가 있는 대마도 서쪽 오우미 마을, 에토 씨의 공양탑이 있는 사고만에서 세 차례 위령제가 열렸다.

지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열린 '제3회 제주도 4‧3사건 희생자 쓰시마‧제주 위령제'에서 만난 한라산회 나카타 고문은 '한국인 수장 학살 희생자를 위해 위령제를 여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70년 전 대마도에 4‧3 수장 시신이 수백 구나 흘러왔는데, 바다에 버려졌기 때문에 증거도 없고, 살았다는 기억조차 누가 없애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이들이 일본까지 왔기 때문에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이 일본인으로서 그들을 추모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라산회 회원인 다카타 히로시타토(61)씨도 "4‧3 수장 학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많은 민중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게 슬펐습니다. 대마도에서 희생자를 위무하고,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행위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기억하는 행위는 다음 세대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9일 열린 위령제에서 재일제주인 김시종(90) 시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4‧3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후 일본 문학계에서 존경을 받는 예술인이 된 재일제주인 김시종(90) 시인은 이날 위령제에서 에토 씨의 공양탑을 두고 "최근 어려워진 한‧일 관계 속에서도 앞으로 시민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4‧3 당시 엄청난 학살을 저지른 자들은 일제강점기 군인 장교, 경찰 등 친일 우익이었습니다. 대마도 공양탑은 원통한 사자들을 위령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 일본의 속죄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바닷속에서 건져 올려 드러내고 있습니다."

"에토 씨 일가가 수백 구의 수장 시신을 수습해주고, 이 탑을 세웠는데 사자를 위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민심을 어루만지는 자애로운 탑으로서 앞으로도 손을 모아 위령하는 사람들로 끊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오늘 그 이정표를 공양탑에 새기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9일 에토 씨가 세운 공양탑 앞에서 한라산회 회원들이 4·3 수장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에토 씨가 세운 공양탑.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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