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마음에 안 드니 나가라" 내쫓기는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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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외국인 노동자의 '눈물' - 코리안 드림은 없다 ②]
농업·축산업 현장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 '비일비재'
한국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은 갈등도 크게 비화
언제 억울한 일 당할지 몰라 휴대전화 녹음·촬영은 일상
작업 장소·근로 시간 안 지켜지지만 강제 출국 우려 참아야
불법 신분 악용하는 고용주 "억울하면 신고하라"

※ 어촌뿐만 아니라 농촌 현장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일하고 있지만 역시 폭언과 임금체불 등 다양한 인권 침해에 노출돼 있다. 광주CBS 기획보도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의 '눈물' - 코리안 드림은 없다' 두 번째 순서로 농업·축산업에 종사하며 언제 내쫓길지 모른 상태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르포 형식으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섬이라는 '감옥'에 갇힌 외국인 노동자들…화장실 없는 '곰팡이' 숙소
② "마음에 안 드니 나가라" 내쫓기는 외국인 노동자
(계속)

◇ 언제 억울한 일 당할지 몰라 휴대전화 녹음·촬영 준비

전남 나주 한 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나리를 캐고 있다(사진=박요진 기자)

 

"사장님이 큰소리치면 녹음 버튼부터 눌러요"

지난 10월 말 전남 나주의 한 미나리 밭. 불과 열흘 전까지 이 밭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국적 20대 A씨 등 2명은 10월 중순 일터에서 무작정 쫓겨났다. A씨는 "점심을 먹기 위해 친구와 함께 숙소에 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욕설과 함께 소리치며 짐을 챙겨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 등이 몰래 촬영한 영상에서 고용주는 "너희 같은 애들은 필요 없어"라고 소리치며 욕설과 함께 이들을 내쫓는 듯한 장면이 담겼다. 이들은 통역과 노무사 등의 도움을 받은 이후에야 자신들이 쫓겨난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A씨는 사장님의 욕설이 익숙한 듯 "사장님이 큰소리치면 휴대전화 녹음 버튼부터 눌러요"라고 말했다.

◇ 지켜지지 않는 근로계약서… 근로시간 늘고 주거지도 달라

실제로 이들이 일하기로 계약된 장소는 토마토 비닐하우스였지만 주로 미나리 밭에서 일했으며 계약된 근로시간인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은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농업의 특성상 계절에 따라 업무량의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서는 이처럼 허울뿐인 경우가 많다.

이들의 표준 근로계약서상 주거지는 주택으로 표시돼 있었지만 실제로 머문 곳은 컨테이너였다. A씨는 "방 안에 습기가 많아 9월 달부터 밤에 추웠다"며 "다른 친구는 나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은 나무로 만들어진 숙소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 의사소통 어려워 갈등 해소 안 돼…큰 갈등으로 쉽게 비화

임금 체불이 발생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탈한 전남 화순의 한 토마토 농장(사진=박요진 기자)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고용주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서둘러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고용주는 입국 90일 안에만 만들어주면 된다며 미루기 바빴다. 결국 A씨 등은 외국인 등록증을 만들지 못한 채 사업장에서 쫓겨났다. 이에 대해 고용주 50대 B씨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친구들에 비해 한국말도 능숙하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내쫓았다"며 "실제로 A씨 등이 사업장을 떠날지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아 작은 갈등이 크게 비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남 화순의 한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와 미얀마 국적 외국인 노동자 C씨 등 13명 역시 지난 10월 중순 한꺼번에 농장에서 빠져나왔다. 지난 8월 임금의 일부가 체불된 데 이어 9월 임금까지 지불되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경영 상태가 개선되면 밀린 임금을 지불해주겠다고 했지만 무작정 고용주의 말만 믿고 있을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고용주 D씨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농업의 특성상 한 두 달 체불은 피할 수 없다"며 "하지만 토마토가 출하되고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곧바로 임금을 지급할 생각이었다"고 해명했다.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는 C씨 등은 채 4평이 안 되는 작은 방에서 2명씩 지냈으며 한 명 당 매달 30만 원을 월세로 내야 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침대 하나에서 함께 잠을 자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월세가 너무 비싸다는 이들의 불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 외국인 노동자 역시 일터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 불법 신분 악용한 고용주 "억울하면 신고하라"

이달 초까지 전남 함평 한 돼지농장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일한 베트남 국적 E씨는 새벽 시간이나 퇴근한 이후 일하는 대가는 따로 지불받기로 약속받았지만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고용주에게 추가 수당을 요구하자 고용노동청 등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눈물 섞인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 불법 외국인 노동자라는 불리한 처지를 악용한 고용주의 비정한 처사가 억울했지만 강제출국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당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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