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철사로 묶여…" 대마도로 흘러간 제주 4·3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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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품은 제주 4·3 ②] 70년 전 대마도서 무슨 일이
제주 4·3 당시 대마도 해안 곳곳에 한국인 시신 떠밀려와
대마도 주민들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한국인 시신이었다"
제주대 문재홍 교수 "대마난류 따라 시신 대마도로 흘러가"

70여 년 전 제주 4‧3 당시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만 3만여 명. 이 중 '수장' 학살된 사람은 기록도 없을뿐더러 먼 타국 대마도까지 시신이 흘러가 여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CBS는 대마도 현지에서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그들을 추적했다. 26일은 두 번째 순서로 대마난류를 따라 대마도 해안까지 흘러간 수장 학살 희생자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생(生)의 기억조차 말살…제주 4·3 수장 학살의 비극
② "손발 철사로 묶여…" 대마도로 흘러간 제주 4·3 희생자
(계속)

지난달 17일 오후 고후나코시 해안. 제주CBS 취재진은 현지 어부인 나카시마 노보루(68)씨의 도움으로 4‧3 수장 학살 희생자 매장지를 확인했다. 나카시마 씨와 취재진이 가리키는 곳이 매장지. (사진=고상현 기자)

 

4‧3 당시 수장(水葬)된 시신들은 일본 대마도까지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 70여 년 전 상황을 기억하는 대마도 주민들은 하나같이 수장이 자행되던 시기에 한국인 시신이 대마도 해안 곳곳에 떠밀려왔다고 증언한다. 또 해류 전문가 역시 제주도 주변 해류 흐름상 수장 희생자 시신이 대마도로 흘러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 4·3 당시 대마도 각지에 한국인 시신 떠밀려와

전직 니시니혼 신문 대마도 주재기자 오에 마사야쓰(70)씨. (사진=고상현 기자)

 

"손목은 철사로, 발목은 끈으로 묶인 시신도 있었다."

고인이 된 대마신문 아카시 기자가 생전에 증언한 말이다. 아카시 기자는 70여 년 전 대마도로 떠밀려온 한국인 시신을 취재한 인물이다. 아카시 기자는 하대마도 이즈하라 지역에서 한국인 시신들을 직접 목격했다.

지난 10월 16일 대마도 이즈하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직 니시니혼 신문 대마도 주재기자 오에 마사야쓰(70)씨도 취재진에게 아카시 기자와 같은 얘기를 했다. 오에 씨는 아카시 기자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기자다.

"제주4‧3과 한국전쟁 시기에 대마도 남동쪽인 이즈하라뿐만 아니라 대마도 서쪽 해안, 중대마도 무인도인 구로시마 섬까지 한국인 시신이 떠밀려 왔다. 그 시기에 매우 많은 시신이 대마도 곳곳에 흘러왔는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취재진이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상대마도 사고만(북서쪽), 중대마도 고후나코시(동쪽), 하대마도 마가리 마을(남동쪽) 등지에서 만난 주민들도 아카시 기자와 오에 씨의 말처럼 "4‧3 시기인 1950년 전후로 한국인 시신이 해안가로 많이 떠밀려 왔다"고 공통되게 증언했다.

주민들은 한국인 시신임을 알 수 있었던 이유로 "입고 있던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새를 보고 한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생활하다 해방 후 대마도로 건너온 주민이 많아 생김새를 보고 단번에 한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15일 제주CBS 취재진이 상대마도 미나토 마을에서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4‧3 시기 대마도로 떠밀려온 시신들은 가족이 찾지 않아 각 마을 주민이 매장하거나 화장했다. 아니면 이즈하라 태평사처럼 절 내 '무연고'묘에 안치됐다. 일본인 시신이었다면 가족이 수습해 묻어줬겠지만 연고가 없는 타국의 시신이어서 그렇게 장사를 지낸 것이다.

대마도 인근 해상을 지나던 선박이 사고를 당해 그 시신이 대마도 해안가로 떠밀려왔을 수도 있지만, '1950년 전후'에 집중적으로 대마도 해안 곳곳에서 수십 구씩 동시다발적으로 떠밀려 왔다는 점에서 그 시기에 흘러온 시신 상당수가 4‧3 수장 학살 희생자일 가능성이 크다.

1950년 전후는 제주에서 초토화 작전, 예비검속 등 4‧3 광풍이 몰아치며 군‧경이 무고한 양민을 많게는 500명 적게는 수십 명씩 수장 학살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 수장 학살 희생자, 대마난류 따라 대마도까지

지난 8일 제주대학교 지구해양과학과 문재홍 교수가 대학 연구실에서 제주도 주변 해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지리적으로 제주도와 대마도의 거리는 직선으로 200㎞가 넘는다. 그렇다면 수장된 4‧3 희생자 시신이 해류를 따라 대마도로 흘러갈 수 있을까? 해류 전문가들은 제주도 주변 해류 흐름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제주대학교 지구해양과학과 문재홍 교수는 지난 8일 대학 연구실에서 취재진이 '해류 흐름상 4.3 당시 수장 학살 희생자 시신이 대마도까지 갈 수 있는지' 묻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제주도 주변에 흐르는 해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쿠로시오 해류에서 갈라져 나온 대마난류여서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흐른다. 제주도 인근 해상에 물체를 떨어트리면 그 흐름을 따라서 대마도로 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바람의 영향으로 지체될 수 있지만 보통 2~3일이면 대마도까지 간다."

또 문 교수는 4‧3 시기 모래사장이나 폭포 등 해안가에서 총살돼 아직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도 "연안과 외해의 순환이 이뤄지기도 하고, 어떤 원인에 의해 시신이 외해로 이동하게 되면 대마난류를 따라 대마도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3월 제주 추자도에서 실종된 낚시객 2명의 시신이 20여 일 만에 일본 대마도 동쪽과 남서쪽 해상에서 발견됐다. 앞서 2003년 4월에도 서귀포시 남원읍 해상에서 물질하다 실종된 해녀의 시신이 18일 만에 대마도 해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주변해역 해류 모식도. (그래픽=김성기 PD)

 

특히 취재진은 10월 17일 중대마도 고후나코시 이케바다케 해안에 떠밀려온 쓰레기더미에서 제주에서만 소비되는 '제주비료' 포대와 한라산 소주병을 발견했다. 이곳은 육로로는 사람이 다닐 수 없고, 배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문 교수의 설명대로 제주 해상에 버려진 시신이 해류를 따라 대마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대마도 현지 어부인 나카시마 노보루(68)씨는 대마도 주변 해류 흐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마난류는 사실상 강과 같다. 대마도는 그 강 속에 있는 작은 섬이다. 강의 흐름을 방해하는 물체나 표류물은 대마도 곳곳에 닿을 수밖에 없다." 취재진이 대마도 현지에서 4.3 수장 학살의 흔적을 찾았던 이유다.

※ 내일(27일)부터 3회에 걸쳐 제주CBS 취재진이 대마도 현지에서 처음으로 확인한 수장 학살 희생자 매장지를 조명합니다. 차례대로 △상대마도 사고만 △중대마도 고후나코시 마을 △하대마도 마가리 마을 매장지를 보도합니다. 일본어 통역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번역 전공' 대학원생 이하 토모키(27)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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