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우리에게 즉흥여행은 사치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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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②-놀 권리]

지난 13일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가 남산서울타워에 도착한 후 서울시다누림센터가 마련한 휠체어 리프트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문수경 기자

 

"장애인 콜택시 타면 우리가 이런 대화도 못 나누잖아요?"

#지난 13일 남산서울타워로 향하는 '휠체어 리프트 버스' 안. 46인승 일반 관광버스를 개조한 이 버스에는 휠체어석 8석, 일반석 21석이 마련됐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버스에 탑승한 휠체어 장애인 10여 명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거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워했다.

장애인 탑승 차량만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따라 도착한 남산서울타워. 건물 입구에는 경사로와 도움벨이 설치됐고, 1층 상점가는 문턱이 없었다.

남산서울타워 1층 상점가는 문턱이 없어서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동하기 편하다. 사진=문수경 기자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도 장애인 친화적이었다. 나무 데크가 깔린 산책로 끄트머리에 장애인 전용 승강기가 있었고, 케이블카에는 휠체어 5대 정도까지 탑승이 가능했다. 탑승자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은 남산을 연신 핸드폰에 담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모든 사람은 관광을 통한 체험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장애물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UN 장애인 권리 협약 제30조 문화 레저·스포츠·관광에 관한 조항).'

장애인 등 관광약자의 보편적 관광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는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무장애 관광(Accessible tourism)'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2014년 5월 개정된 관광진흥법은 제47조에서 장애인의 관광 및 여행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수립한 제3차 관광개발기본계획(2012~2021)에는 취약계층 관광 활성화, 장애인 관광 여건 개선을 골자로 한 무장애 관광 내용이 포함됐다.

전국 17개 시도 중 5곳(대구·울산·충남·충북·경남) 을 제외한 지자체는 무장애 관광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특히 서울시는 무장애 관광 조성에 2017년부터 5년간 152억원을 투입한다.

장애인 여행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애인 여행 수요는 10년 새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하지만 단체관광·개별관광에 상관 없이 장애인들에게 관광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동수단 부족이다. 국내에 장애인 전문 여행사를 표방한 곳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중 휠체어 리프트 버스를 보유한 곳은 에이블투어(6대)와 홍익관광(4대) 뿐이다.

일반 관광버스를 휠체어 리프트 버스로 개조하는 데 1대 당 6천 만원이 든다. 홍익관광의 경우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버스 개조비용 2억4천만원을 지원받았는데, 내구연한 상 내년에 4대 모두 폐차해야 한다.

정부는 예산 상의 문제를 들어 휠체어 리프트 버스 개조 비용 지원 사업을 2011년 한 차례로 끝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장애인 여행업 성격상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다누림관광센터 정영만 센터장은 "휠체어 리프트 버스는 일반 관광버스에 비해 좌석 수가 적고, 운행 일수가 여름·겨울을 제외한 7개월 정도로 제한된다. 민간 전세버스업자들의 경우 휠체어 리프트 버스를 운행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남산서울타워 케이블카 타는 곳과 연결된 공간.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의자가 있어서(좌측 사진) 휠체어 장애인이 다니기 불편하다. 이 곳을 찾은 휠체어 장애인들의 의견을 즉석에서 반영해 남산서울전망대 측은 의자를 엘리베이터와 좀 더 떨어진 곳(우측 사진)으로 옮겼다. 사진=문수경 기자

 

남산서울타워는 서울에서 대표적인 무장애 관광코스로 꼽힌다. 다만 휠체어 장애인은 5층 전망대에 설치돼 있는 망원경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곳을 찾은 장애인들은 "망원경 받침대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문수경 기자

 

단체여행 못잖게 개별여행을 하는 데에도 이동수단 면에서 어려움이 많다.

정영만 센터장은 "지난달 28일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고속버스가 4개 노선에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노선이 기차(KTX)가 다니는 지역으로 한정됐다. 기차역이 없는 관광지를 운행하는 저상버스가 많아져야 한다"며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소도시를 연결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관광지를 방문할 때,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여행경비가 비싸진다. 여행 시 동반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장애인 야학 교사는 "지난달 1박2일 일정으로 학생들과 경기도 인근 사찰로 모꼬지를 다녀왔다. 휠체어 리프트 버스 3대 대여 비용 340만원 포함, 총 경비가 1천만원 가량 들었다"고 말했다.

홍익관광 관계자는 "휠체어 리프트 버스 대여 비용이 일반 전세버스보다 20% 가량 비싸다"고 전했다. 에이블투어 관계자는 "차량비, 호텔비 등이 상승하기 때문에 무장애 여행상품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행하기를 원하는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배려는 부족한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행 바우처가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05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6만 여명에게 여행 바우처(1인당 15만원)를 지급했다. 하지만 여행 바우처 제도는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누리카드로 통합돼 사실상 폐지됐다. 이후 연간 수혜자는 160만 명으로 늘었지만, 1인당 지급받는 금액은 8만원으로 감소했다.

윤삼호 장애인아카데미 장애인인식개선교육센터 소장은 "여행바우처 지급의 경우, 관광진흥법 제 47조에 규정이 있는데다 제3차 관광개발기본계획에 포함돼 있지만 과거 시행되다가 사실상 폐지됐다"며 "여행 바우처 지급에 관한 임의규정이 강행규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문화인문정신정책과 관계자는 "내년부터 문화누리카드 1년 예산이 13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늘어 1인당 지급액이 9만원으로 는다"며 "예산 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장애인 여행자의 동반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장애인의 개별여행이 늘어나려면 1대 당 1500만원 가량 드는 개인차량 개조비 지원 대상이 비근로자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2014년부터 장애인 근로자(2018년부터 장애인 사업주로 확대)가 소유한 차량에 한해 개조비를 1인당 150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고용시장에서 취약한 중증여성 장애인 근로자를 우선 지원하고 있다. 비근로자에 관한 부분은 보건복지부 관할이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여행가고 싶을 때 여행가고 싶어요. 즉흥여행이 사치가 아닌 날은 언제쯤 올까요?" 한 장애인의 하소연이다.

※지난달 28일부터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가 4개 노선에서 3개월간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 시행된 지 13년 만에 이룬 성과다. 하지만 장애인은 출퇴근과 여행을 위해 이동할 권리, 치료받을 권리 등 일상권에서 여전히 배제돼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상을 누릴 권리조차 갖지 못한 우리나라 장애인의 현실을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출근할 권리
② 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놀 권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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