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을 통해 본 한중 고대 문화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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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민화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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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峨眉山)은 산시(山西)의 오대산(五臺山), 저장(浙江)의 보타산(普陀山), 안후이(安徽)의 구화산(九華山)과 더불어 쓰촨(四川)성 남서쪽에 위치한 중국의 4대 불교 명산 중 하나다.

현지 기록에 따르면 산의 형세가 아미(눈썹)처럼 곱고 길다 하여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지세가 험하고 곳곳에 절경이 많아 '아미천하수(峨眉天下秀·아미산의 경치는 천하에서 빼어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미산의 정상 '금정(金頂)'은 해발 3099m다. 정상에선 때때로 햇빛과 수증기가 만나 일곱 색깔의 찬란한 불광(佛光)이 만들어진다.

아미산과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당·송 시기 한반도에서 온 승려가 아미산에서 수행을 하기도 했고, 조선왕조에선 아미산은 병을 고치고 악귀를 몰아내는 상징물로 여겨졌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도 '아미산'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한국의 이 같은 지명은 조선 중·후기 유행했던 천연두와 관련이 있다.

18세기 중엽 동아시아 지역에 천연두가 유행할 당시 '아미산 신인(神人)'을 저자로 하는 중국의 여러 의학서적에는 우두(牛痘) 접종을 통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가 조선으로 전해져 <종두심법요지(種痘心法要旨)>, <마과회통(麻科會通)>, <시종통편(時鐘通編)> 등의 의학서적에 인용되며 민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선에 퍼져나가던 천연두는 이때부터 확산을 멈추기 시작했고, 한반도 여러 지역에 잇따라 '아미산'이라는 명칭이 붙기 시작했다. 당시의 한양, 대구, 부산, 평양, 춘천 등 비교적 인구가 많고 한문을 독해할 수 있는 선비들이 많았던 대도시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한국에서 아미산과 관련된 지명만 11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복궁 교태전 후원에는 '아미산 정원'이 있다. 교태전은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침전이다. 그런데 아미산의 상징이 교태전 후원에까지 적용되었다는 것은 아미산의 신력(神力)에 대한 믿음이 민간의 자발적인 유행을 넘어 국가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부터 중국의 '명산(名山) 문화'는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에 한국의 일부 산에서 중국 명산의 이름을 따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왕실의 침전 뒤뜰에 중국의 산을 테마로 정원을 꾸미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미산 정원은 많은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 높이 쌓은 실제 아미산이 아니라, 가지런한 직사각형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화단을 만들고 그 안에 분재를 놓아 아미산과 비슷한 분위기를 표현한 작은 정원이다.


조선 태조 때는 교태전 후원에 직사각형 돌이 없었고 석가산을 둘러 풍수학적으로 병풍을 조성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돌을 쌓아 화단을 만들고 '아미'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지나,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1860년대 고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 작업을 시작할 당시 경복궁 북궐의 평면도인 '북궐도(北闕圖)'에는 아미산의 위치와 자세한 모양이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미산 정원이 침전의 북쪽에 조성된 이유가 당시 북쪽 청나라에서 창궐하던 천연두를 물리치고자 하는 의미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아미산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이 비춘다는 광명산(光明山)과 보현보살의 도장(道場)으로 여겨진다.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지방인 삼십육소동천(三十六小洞天) 가운데 일곱 번 째인 허령동천(虛靈洞天) 또는 영릉태묘천(靈陵太妙天)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 전통문화에서 아미산은 상서로움과 평안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장소였던 것이다.

1995년 아미산 정원 복원 작업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현재 정원 내부의 '교태전 아미산 굴뚝'은 한국의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반도에 전래된 아미산의 이미지를 통해 과거 중국과 한국의 활발했던 문화 교류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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