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벽도 없앴다…학교건축 획일화 탈피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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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인 학교건축, 심폐소생이 필요하다⑧]
표준설계도 도입 원인…일본 학교는 달라져
고령화에 커뮤니티 스쿨 등장…열린교실도 눈길
이원화된 국내 학교 환경, 짧은 설계 기간도 영향

국내 교실 획일화의 배경에는 1962년 학교시설표준설계도가 있다. 표준설계도 의무 적용은 1992년에 폐지됐지만, 여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은 열린 교육학습을 도입하고 학교를 지역 사회와 연계하면서 교실 풍경이 변화하고 있다. 교실 벽을 없앤 시키초등학교 모습(좌측)과 학교 안에 공민관이 설치된 학교 정문 전경(우측). 왼쪽이 공민관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다. (사진=정재림 기자)

 

학교 교실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네모난 공간'이다. 직사각형 교실의 단조로운 풍경을 빗대며 붙여진 수식어다.

이는 1962년 교실 과밀화로 단기간에 학교를 많이 짓기 위해 '학교시설표준설계도'를 도입한 것이 원인이 됐다. 당시 설계도는 일본의 교실형태(7.2mx9.0m)를 그대로 가져와 일본의 표준설계도와 다를 게 없었다.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당시 표준설계도를 근거해 학교를 만들었고 이는 학교 건축의 획일화로 이어졌다.

그러던 일본 학교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열린학교(오픈스쿨) 도입으로 교실 벽을 허물고 지역 사회와 연계하는 '커뮤니티 스쿨(학교시설 복합화)'이 생겨나고 있는 것.

학생들은 언제든지 도서관 열람실로 갈 수 있다. 지역 주민들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교 시설인 체육관과 음악실을 사용한다. 지역 주민들이 학생들에게 옛날 놀이를 알려주는 교육동아리가 있는가 하면,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모임도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은 학교를 통해 지역 축제 행사에 참여한다고도 한다. 사진은 공민관 도서관 사서가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사진=정재림 기자)

 

시키초등학교가 그 대표 사례다. 실제로 이 학교를 가보면 교실과 복도 사이에 벽이 없어 계단 입구에서도 학생들을 바라볼 수 있다.

탁 트인 교실 전경에 국내 교실보다 확연히 커 보이지만, 국내 교실 면적과 같은 64m²에 이른다.

여기에 학교가 공민관(주민회관)과 연결돼 있어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은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학교 측도 지역 주민을 응대할 수 있도록 교무실 벽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카구치 에이지(坂口栄二)시키 초등학교 교장은 "지역 주민이 좀 더 다가오기 쉽고 이야기 걸기 쉽도록 벽을 없앤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보여지는 환경이다 보니 (커뮤니티 스쿨에 대한) 교직원의 의식 또한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 인구부족·고령화 해결 방안…5400여개 커뮤니티 스쿨 탄생

후쿠오카에 위치한 하카타 초등학교에도 교실 벽이 없다. 아이들은 오픈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김송이 기자)

 

일본 학교가 변화된 배경에는 1980년대 당시 학교 교육의 한계를 인식한 '열린 학교 만들기'의 움직임과 인구감소·고령화에 따른 복지시설 확보 마련이 자리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본 교육당국은 학교와 공민관을 융합해 지역 교육을 활성화하고 재정부담을 낮추려 했다.

이 흐름은 1991년 '학교시설 복합화 정비 지침' 마련으로 이어졌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커뮤니티 스쿨(학교시설 복합화)' 도입이 본격화 된다.

여기에 2002년 초등학교 교실 벽을 없애는 '종합학습'이 전격 도입되면서 교실 모습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커뮤니티 스쿨은 2018년 4월 기준 5432개에 달한다. 2005년도 17개에 불과했던 커뮤니티 스쿨이 13년만에 5400여 개 이상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픽=김성기PD)

 

◇ 日 교육자치행정 일원화로 속도…1년 이상 설계 기간도 영향

일본에서 커뮤니티 학교가 빠르게 도입 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교육자치행정 일원화를 꼽는다.

행정자치와 교육자치가 이원화된 국내 사정과는 달리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 시설 허가를 내고 있는 것.

최병관 공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시 안에 교육청(교육위원회)이 들어가 있어 시장의 지시를 받게되는 구조"라며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시설 복합화가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이어 "시장이 지역시민들을 위한 시설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이원화된 환경에선) 학생들을 제외한 시민들에게만 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며 "도서관, 체육관 등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학교에 갖춰져 있음에도 이를 따로 분리해 주민시설을 만드는 것은 중복투자와도 같다"고 강조했다.

하루미 중학교는 양로원 시설과 함께 설계 됐다. 이 학교 가운데 정원에 가보면 보육원, 양로원 관계자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가 마련됐다. 이 시설 역시 시에서 주도적으로 진행됐다. (사진=김송이 기자)

 

여기에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긴 일본 학교 설계 기간이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가령 국내 학교 설계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지만, 일본 학교는 1년 이상 설계 기간을 마련한다는 것. 하카타 초등학교의 경우 설계 기간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이용민 선기획 건축사는 "학교를 장기적인 수요를 감안해서 세우는 게 아니다. 보통 아파트 단지가 확정된 다음에 학교에 대한 수요가 나오고 입주시간에 맞춰 (학교를) 지어야 한다"며 "이 기간 안에 만들어야 하니까 (학교 공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 보다는 빠르게 (설계를)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국내 학교 설계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신설 과정에서 교육부 또는 교육청은 기존 학교와 다른 유연한 공간을 가진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학교의 유연한 공간이 만들어지려면 어느 정도 재원 투자가 따라야 하고 국민적인 공감 또한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②"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③'낙오자는 없다'…건물에 교육철학 반영한 독일 ASW
④ "학교가 오고 싶어요"…비결은 '사용자 참여 설계'
⑤ "보이지 않는 공간, 폭력 부른다"…몰랐던 학교 공간들
⑥ 해외 학교만 최고? 국내 학교도 모범 사례 있다
⑦ 공간이 학생을 바꾼다…"죽어있던 교실이 살아났어요"
⑧ 교실 벽도 없앴다…학교건축 획일화 탈피한 일본
(계속)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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