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학생을 바꾼다…"죽은 교실이 살아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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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인 학교건축, 심폐소생이 필요하다⑦]
교실공간 바꾼 후 모둠수업 활발…쉬는 시간에도 교실 '북적'
프로젝트 수업에 메이커 스페이스 적극 활용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좋은 생활태도로 연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의 교사 중심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 중심 체험 교육이 필요하다. 교사가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을 정한 뒤 이에 맞게 공간과 교구를 바꿔야 한다(공주대 건축학과 최병관 교수)."

교육부의 학교공간 혁신사업과 맞물려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공간혁신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교육시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에 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공간만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려면 역량 중심 교육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학생 중심 체험 학습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은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 가기 위한 것만이 아닌 학생들이 자기 삶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취재진이 찾은 학교의 선생님들은 공간을 바꾸고 수업방식에 변화를 주자 학생들의 학습태도와 생활태도가 달라졌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공간혁신을 통해 수업혁신을 꿈꾸는 교육현장을 방문했다.

어룡초등학교 3학년 3반 교실. 교실은 1개의 수업공간과 4개의 휴식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사진 속 수업공간은 10여 개의 기존 책걸상과 10여 개의 앉은뱅이 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앉아서 수업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바꿨다

 

"공간혁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업혁신이죠(전남 광주 어룡초등학교 오혜경 교장선생님)."

지난 7월 찾은 어룡초등학교 3학년 3반 교실. 이 곳은 1개의 수업공간과 4개의 휴식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휴식공간은 낙서하고 그림 그리는 공간, 탁구·미니농구 등을 하면서 뛰어 노는 공간, 인형놀이하고 태블릿PC 사용하는 공간, 보드게임 하고 상담하는 공간 등 4개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어룡초등학교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교실 공간을 혁신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에서 받은 2천만원으로 우선 5개 학급을 바꾸는 중이다.

조충식 담임선생님은 바닥에 앉아 수업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총 23명)을 위해 수업공간 바깥쪽에 기존 책걸상 10여 개, 안쪽에 앉은뱅이 책상 10여 개를 배치했다.

어룡초등학교 3학년 3반 교실은 5개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이 공간은 탁구대, 미니농구대 등을 설치해 학생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2교시 후 쉬는 시간에 탁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

 

공간이 바뀌자 수업방식이 달라졌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칠판만 바라보는 수업을 줄인 대신 수업공간과 4개의 휴식공간을 활용해 모둠수업과 토론수업을 진행한다.

최은영 양은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수업하니까 재밌고 어려운 문제도 잘 풀린다"고 했고, 윤지호 양은 "태블릿PC로 바로 정보를 찾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수업태도도 바뀌었다. 조충식 선생님은 "학습공간에서 소극적이던 학생들이 휴식공간에서는 발표도 잘하고 적극적이다"고 웃었다.

1학년 3반 교실에는 MDF 목조집이 설치되어 있다. 학생들은 목조집 바닥에 깔린 매트에서 뒹굴고, 강화유리판에 낙서하며 논다

 

1학년 3반 교실에는 MDF 목조집이 놓여 있다. 학생들은 목조집 바닥에 깔린 매트에서 뒹굴고 물구나무서기하며 즐거워하고, 벽에 설치한 강화유리판에 마음껏 낙서하며 미소짓는다.

조선경 담임선생님은 "학교 오는 걸 낯설어하는 1학년들에게 집같이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학생들이 여기서 놀고 싶어서 아침 일찍 등교한다"고 웃었다.

교실에는 그리기·만들기 공간과 매트를 깔아놓은 공간도 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다.

조선경 선생님은 "학생들이 놀이를 개발하는 등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서로 싸우면서 공간 사용 규칙도 스스로 만든다"며 "공간들이 많아서 나 역시 수업 때 다양한 시도를 한다"고 말했다.

김복현 교감선생님은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머문다. 교실이 죽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이 된 거죠"라고 웃었다.

구미 봉곡초등학교는 전 학년이 프로젝트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중심 체험학습인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 공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경북미래학교(경북형 혁신학교)인 구미 봉곡초등학교는 2015년 9월 창조학교로 지정된 후 2016년 1학기부터 프로젝트 수업을 전면 실시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중심의 체험수업이다. 효과적인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 2017년 2학기 무렵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를 구축했다.

지난 9월 방문한 메이커스페이스. 앞쪽에는 '물건 아껴 쓰기', '액체괴물 만들지 않기' 등 6가지 규칙을 써서 붙여놓았고, 뒤쪽에는 각종 공구와 재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학생들은 한 손에 공구를 든 채 '공작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정재환 교사는 "2학기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 수업의 경우, 놀이공원에서 놀이가구를 타보고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나만의 놀이기구를 만드는 식으로 진행한다"며 "머릿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보는 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복도 공간을 리모델링한 '배움의 공간'. 학생들이 자유미술 수업 시간에 열쇠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 학교는 2016년말 벤처기부펀드 ‘씨프로그램(C-program)의 도움을 받아 복도공간을 '배움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당시 6학년생들은 '학생이 주인이 되는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배움의 공간' 만들기에 참여했다. 이 공간은 자유미술 수업시간 등에 활용된다.

부산 개성중학교의 경우 2014년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기 위해 건물을 리모델링한 뒤 남학생들의 생활태도가 변했다. 당시 리모델링 과정에 참여한 이은미(현 부산 광무여중) 교사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이은미 교사는 "학생들이 특별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공간이 바뀐 후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블라인드가 찢어지는 일이 없어졌다"며 "교과교실제가 잘 돌아가는 학교는 생활 지도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②"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③'낙오자는 없다'…건물에 교육철학 반영한 독일 ASW
④ "학교가 오고 싶어요"…비결은 '사용자 참여 설계'
⑤ "보이지 않는 공간, 폭력 부른다"…몰랐던 학교 공간들
⑥ 해외 학교만 최고? 국내 학교도 모범 사례 있다
⑦ "공간이 학생을 바꾼다" 죽어있던 교실이 살아났어요
(계속)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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