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가장 밑바닥 '복면영화왕' 부산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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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상징 '가이 포크스' 가면 쓰고…빨간 복싱 가운 두르고
부산영화제 토론회 '복면토크, 한국영화 제작현장은 지금!'
"초과근무수당 기준 천차만별…제도로 명확하게 확립돼야"
"스태프·제작사·감독 이해관계 상충…표출 없는 감정 대립"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회 '복면 토크, 한국영화 제작 현장은 지금!'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였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 이곳 회의장 입구에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2005)에서 저항을 상징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 여러 개를 손에 쥔 스태프가 서 있었다. '복면 토크, 한국영화 제작 현장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회 자리였다.

토론회 시작과 함께 단상 위 테이블에 앉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최정화 대표 소개로 토론자 4명이 등장했다. 그들은 모두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채 빨간 복싱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최정화 대표는 "복면을 쓴 4명은 모두 영화 스태프"라며 "지난해에 이어 이 자리를 기획한 취지는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스태프들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 대표는 먼저 주 52시간 근무제를 주제로 올렸다.

영화 현장에서 제작실장을 맡고 있는 복면1은 "근로시간 계약 과정에 의문이 든다. "투자사마다, 영화사마다, 팀마다 초과근무수당 등에 대한 기준이 모두 다르더라"며 "계약할 때 제작실장끼리도 서로 물어보는데, 이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스태프들이 혼란을 겪는다. 이 부분을 제도적으로 보다 명확하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출팀 소속 복면3 역시 "현장 근로시간은 스태프들이 굉장히 잘 끊어서 잘 지켜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래와 같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당일 촬영분량을 못 찍거나 하는 부분이 간혹 생기는데, 이를 주 52시간 안에서 소화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스태프들이 원하는 것을 챙기고, 제작사나 감독 등도 원하는 바를 챙기는 게 원활하지 못하다.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대립이 있다고 본다."

◇ "관행이 누군가에게는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최 대표는 "평소 드러내기 힘든 감정적인 대립까지 이야기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며 "스태프들 스스로가 현장을 잘 끊어서 근로시간이 잘 지켜진다는 말은 깊은 함의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소품팀장을 맞고 있는 복면2는 "사실 영화 현장에서 주 52시간 근로는 촬영시간으로만 봤을 때는 잘 지켜지지만, 촬영 전후로 일하는 것까지 치면 어마어마하게 오버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해 한 현장에서는 초과근무수당 관련 계약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시간을 재보자'고 해서 6개월을 했는데, 한달 평균 410시간을 일했다. 많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복면1과 마찬가지로 제작실장을 담당하는 복면4는 앞선 이야기들과 결이 조금 다른 현장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다른 작품을 할 때 먼저 가서 끝까지 남아 팀별로 근로시간을 체크했는데, 한 달에 200시간도 안 돼 불만을 제기하는 팀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결국 일한 시간을 합산했을 때 본인들이 예상했던 금액이 안 나온 것이다. 주 52시간 일한 금액을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안 되니 계약을 변경하고 싶어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기대했던 만큼 급여가 안 나오니 계약을 변경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프리랜서 개념으로 용역 계약을 하자는 쪽도 나온다"며 "표준근로계약서를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기준이 하나 밖에 없다보니 이해관계 상충 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통 월 320시간을 기준으로 잡아 포괄임금 형태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젠 시급을 정확하게 따지다보니 낮 촬영 위주의 2달짜리 영화 현장은 급여가 턱없이 낮아진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복면2는 "관행적으로 근로시간 기준이 월 320시간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너무 헷갈린다. 관행이 누군가에게는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그러한 관행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법적인 정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 "사전 약속만 잘 지켜도 근로시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소품팀처럼 현장 밖에서까지 촬영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도 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목됐다.

복면2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제작에 들어가기 전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한 약속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변경사항 등이 계속 생기는 상황에서도 촬영은 계속 진행돼야 하니 요구에 맞춰주다 보면 오버되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고 토로했다.

복면3 역시 "한 번도 사전 약속대로 이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주체가 되는 감독·제작자 등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복면4도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더라도 항상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문제에 부딪히는 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약이 잘못됐다'고들 한다"며 "제작진이 함께 준비하면 되는데, 비용이 너무 적게 책정되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최정화 대표는 "제작자가 투자를 제대로 받아오지 못하니 그런 문제가 생긴다. 원했던 모습이 아닌데, 나 역시 그러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며 "(감독에게) 열심히 전달하면서 '미리 보여달라'고 하는데, '작업이 안 됐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복면3은 "감독은 창작자다. 3개월 전 그려 놨던 구상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과정이 안 생길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그러한 변동사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다양한 이유로 변동사항이 생길 때를 대비해 제작자 등이 보상 등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면1 역시 "영화 현장 시스템이 감독 위주로 돌아가다보니 (그러한 변동사항 등을)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로서는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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