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원',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죽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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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다큐멘터리 '동물, 원' 왕민철 감독-김정호 수의사 ①

지난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왕민철 감독의 작업실에서 왕민철 감독(오른쪽)과 김정호 수의사(왼쪽)를 만났다. (사진=이한형 기자)

 

평소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공연 기획 일을 하던 중 우연히 청주동물원 이야기를 들었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동물원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담게 됐다. 한 일 년 정도 찍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 달리 작업은 3년 가까이 걸렸다. 아마 3년 걸릴 걸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란다.

지난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동물, 원'(감독 왕민철)은 울타리 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반(半)야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물원의 야생동물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을 담아냈다. 왕민철 감독은 공연 기획의 한 부분으로 청주동물원을 찍기 시작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장편으로 찍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촬영이 진행됐고 마침내 개봉했다. 지난해 제10회 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젊은 기러기상을 받았고 올해 열린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는 한국 경쟁 대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9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제26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 제7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를 뿌렸다.

개봉 이틀 전인 지난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왕민철 감독과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김정호 수의사를 함께 만났다. 다큐멘터리 개봉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를 이미 몇 번 한 두 사람에게, 이제 조금 익숙해졌냐고 물으니 왕 감독은 "익숙해지지 않는다"라면서 웃었다. 김 수의사는 "가끔은 감독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걸 제가 할 때도 있다.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아서… 파트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거들었다.

◇ 축적된 시간 속 '사실'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동물, 원'은 청주동물원을 배경으로 그곳의 동물과 사람을 좇는다. 계기는 우연한 데서 왔다. 왕 감독이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공연 기획을 하던 중 현재 청주를 주제로 한 영상을 찍고 거기에 라이브 연주를 더해보자는 기획이 나왔다. 그때 청주동물원이 가진 특이한 분위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관심이 생겼다.

왕 감독은 "산속에 있다 보니까 어렸을 때 다녔던 동물원 느낌이 아니라, 마을에 있는 작은 동물원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더라. 동물원으로서는 좋지 않겠지만 관람객과 동물의 거리도 가깝고. 처음에는 30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었는데, 저는 계속 장편으로 찍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동물원 사육장의 뒷모습이라든지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여서 촬영에 더 몰입했던 면도 있다. 왕 감독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희한한 모습들? 거기에 사실 관심을 가졌다. 김정호 수의사를 비롯해 사육사분들도 인터뷰하고,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있더라"라고 전했다.

지난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동물, 원' (사진=케플러49 제공)

 

촬영을 시작하면서 청주동물원에 어떤 제안을 했는지 묻자, 왕 감독은 "개인이 가서 얘기했다가 허락 못 받을 수도 있어서 6~7개월은 표 끊고 가서 몰래 찍었다"라고 해 웃음이 터졌다. 나중에는 미술관을 통해 업무 협조를 받았다고.

김 수의사에게는 왕 감독의 촬영을 수락한 이유를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고때 마침 (제가) 팀장이 됐어요. 그래서 조금 협조를 해 드릴 수 있지 않았나…" 조금 뜸을 들인 후, 김 수의사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를 포함해 직원분들도 우리가 뭐 그렇게 나쁜 짓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밖에선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도 듣지만 우리는 직업인으로서 열심히 했고, 그걸 보여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쩌면 열악한 뒷공간들을 열어놓은 거죠. 다른 분들이 관심을 가져야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이 일치한 거죠. 어떤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방송은 잠깐 와서 잠깐 찍잖아요. 길어야 반나절 정도. 그렇지만 (왕 감독은) 3년 넘게 (저희를) 보셨기 때문에 뭔가 조금 더 객관적일 거라고 봤어요. 저희가 (왕 감독을) 속일 수도 없고요. 사실만을 보고 찍을 수 있겠구나 했죠. 오랜 기간 계속 저희가 연기할 순 없을 테니까요. 사실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어요. 이걸 보여줌으로써 싫어하는 분들이 공격하지 않을까 해서요. 또 한편으로는 마니아들만 보는 독립영화여서 다행이었어요. (웃음)"

왕 감독은 "그렇다. 어차피 많이 안 본다고 설득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본 적 있냐고 물으면서"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한 1년 찍겠지 생각은 했다. 사계절을 담고 싶어서. 3년인 걸 알았다면 아마 시작도 못 했을 것 같다. 지금 돌아보니 이게 3년 찍었다고 하지만 분량 자체가 그리 많지는 않다. 매일 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청난 기간을 여기에 다 쏟아부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 왜 '공공 동물원'인가

'동물, 원'은 공공 동물원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왕 감독은 "공공 동물원 얘기를 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찍고 나서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니까 저 역시 (여러 동물원을) 그냥 '동물원'이라고 통칭해서 생각하고 있었더라"라고 말문을 열었다.

동물원이 다분히 인간 중심적으로 만들어졌기에 동물 학대 위험이 있다는 인식이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상태다. 왕 감독도 "사설 동물원은 논의의 여지 없이 바꾸고 혹은 없애야 한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니 (공공 동물원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라며 "동물을 데리고 다니며 인형 다루듯이 하는 이동 동물원이나 실내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공공 동물원은 단순히 '없애자!' 하기엔 복잡한 부분이 있다"라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동물, 원'에 나오는 동물들 (사진=케플러49 제공)

 

그렇다면 공공 동물원의 가치와 의의는 무엇일까. 김정호 수의사에게 물었다. 김 수의사 또한 "지금의 좁고, (동물을) 착취하는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아주 지배적이더라. 이 영화를 보고 알게 된 것도 있겠지만"이라며 "동물원 쪽에서 만들어 강조하는 4대 순기능이 있다. 전시, 종 보존, 연구, 교육. 그걸 어떻게 잘하느냐가 문제다. 슬로건만 내걸고 뒤에 숨느냐, 정말 충실히 하느냐"라고 밝혔다.

'동물, 원'에서 김 수의사는 "동물원이라는 데가 동물을 사람을 위해서 전시하는 곳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오락적인 요소가 강하죠"라며 "뭔가 소비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말한다. 신용묵 수의사의 지적은 더 매섭다. "자연계에서 (동물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동물원의) 종 보존 역할이 중요해요. 동물을 위해서는 필요 없는 거죠. 자기들이 이렇게 잘살고 있었는데, 그걸 잡아다가 조그만 우리에 넣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고, 먹지도 않는 걸 먹게 하고. 동물 입장에선 (동물원은) 필요 없다고 봐요."

가장 가까이서 동물의 사생활을 지켜보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동물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수의사는 "좁은 케이지를 앞에 있는 케이지와 연결해서 입체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보통 동물 수명이 15~20년인데, 증식 보존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 죽으면 계속 두지는 않는다. 그렇게 공간 확보를 한다"고 설명했다.

◇ 동물원에서 시작돼 거기서 끝나는 삶

'동물, 원'의 분량은 97분이다. 동물원의 일상 중 어떤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지 궁금해졌다. 이에 관해 묻자 왕 감독은 "저도 편집감독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었다"라며 "동물원 환경이 열악하고, 이것 때문에 동물원 사람들이 노력을 많이 한다는 게 두 번째인데 열악함만 보여줘서도 안 됐고, 이 사람들이 대단하게 미화돼서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어쨌든 동물원 안에서 벌어지는 삶의 순환 과정을 찍었던 것 같다. 거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사람 손에 길러져서 야생성을 점점 잃게 된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거기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게 가장 큰 주제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동물, 원'의 왕민철 감독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왕 감독은 "저한테 제일 충격적이었던 게 우리나라 최상위 포식자가 삵이라는 거였다. 그 삵조차 보호종이고, 로드킬을 통해 개체 수가 조절된다고 하더라"라며 "삵을 통해서 우리나라 야생동물 현실을 큰 틀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오랫동안 동물을 찍으면서 특별히 예쁘게 보였거나 안타깝게 느껴진 경우는 없었을까. 왕 감독은 "출근해서 카메라 들고 오면 제일 먼저 초롱이(아기 물범)를 본다. 초롱이도 거기서 태어나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표범이나 앵무새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런 동물에게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라고 답했다.

김 수의사는 "화면으로 봤을 때 저희 동물원 아닌 줄 알았다. 너무 예뻐 보여서"라면서 웃었다. 그는 "동물을 가둬놓은 사육 공간은 사실 협소하기도 하고 예쁘지도 않다. 저희는 동물을 많이 보고 일상도 동물 위주로 이뤄지는데, 화면('동물, 원')을 통해 비로소 주변을 보게 됐다. 나무나 꽃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못 봤더라"라고 털어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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