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은 그들에게 '북간도'는 약속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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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연대기 ①]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 새 거점
"북간도 농사=생계 잇기+후대 교육+독립운동 지원"
기독교 품고 학교 설립…"新교육·서양문물 유입 확대"
"후대 제대로 가르쳐 빼앗긴 나라 되찾겠다는 의지"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면서 민족운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남다른 문화를 뿌리내리죠. 이는 당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해방 뒤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칩니다. 10월 17일 개봉을 앞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그곳 사람들의 숨겨진 가치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나라 잃은 그들에게 '북간도'는 약속의 땅이었다
<계속>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북간도는 두만강 북부 만주 땅을 일컫는다. 지금의 중국 지린(吉林)성 옌벤(延邊) 조선족자치주를 떠올리면 된다. 일제가 노골적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던 1910년 전후 북간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는 항일운동의 새 거점 마련으로도 이어졌다.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는 당대 조선인들이 북간도로 이주하게 된 배경을 '경제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 두 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많았다. 그런데 그 경제적인 빈곤의 원인에는 일제의 끊임없는 침략이라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는 것을 이분들(북간도 이주민들)이 깨달았다. 이 정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라는, 경제적인 빈곤 문제의 바탕에는 결국 정치적인 억압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북간도 일대 대표적인 한인 촌락으로는 '명동촌'이 있었다. 시인 윤동주가 나고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명동촌은 1899년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을 이끌고 북간도 '부걸라재'로 집단 이주한 이후 윤동주 시인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형성됐다.

이와 관련해 서굉일 한신대학교 명예교수는 "민족운동을 할 새로운 터전, 영토를 마련해야 되겠다고 해서 북간도에 '장재마을'이라고 하는 명동촌을 건설하게 된다"며 "그때 지도자들은 대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던 함경도 지역 계열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모여 북간도에 갔다"고 전했다.

북간도 농경지는 대부분 조선인들에 의해 개척됐다. 원래 이곳에서 나는 작물은 밀·콩·옥수수 등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를 비롯해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대거 옮겨오면서 땅에 물길을 내고 논을 만들어 벼를 심기 시작했다.

◇ "북간도 사람들, 대대로 신봉해 온 유교 포기하고 기독교 받아들인 데는…"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당대 북간도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던 데는 먹고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덕주 전 교수는 "(북간도 사람들은) 농사를 짓더라도 학전, 경전, 군전으로 셋을 딱 나눴다"며 "거기서 나오는 소득을 '자기네 먹고 사는 거 3분의 1'(경전), '애들 가르치는 거 3분의 1'(학전), '독립운동 후원하는 거 3분의 1'(군전)로 철저하게 구분했다. 마을을 조성할 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1907년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가운데 1명으로 역사에 남은 이상설(1871~1917)은, 앞서 1906년 북간도에 머물면서 용정에 항일민족 교육 요람 '서전서숙'을 세우기도 했다. 이곳은 만주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다.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명동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북간도에도 신학문이 보급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북간도에는 새로운 문물을 가르칠 교사들이 크게 부족했다. 이때 항일 민족운동에 뛰어든 기독교 인사들의 활약으로 북간도는 전환기를 맞이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 전도사인 이동휘(1873~1935)는 북간도 지역에 신교육이 보급되도록 힘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서굉일 명예교수는 "이동휘라는 분이 북간도에 기독교를 전하고 교육운동을 위해 북간도 교육회를 조직하는데, 이 북간도 교육회의 간도 선교를 맡은 분이 정재면이라는 전도사였다"며 "(정재면은 명동촌 지도자들에게) '내가 이곳에 와서 학교를 할 터인데 학교를 하는 조건이 있다. 반드시 학생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되고, 성경을 가르칠 수 있어야 된다'는 (전제를 단다)"고 전했다.

이덕주 전 교수 역시 "처음에는 (명동촌 지도자들이) 이동휘 선생한테 부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동휘 선생은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독립운동해야 하니까, 그래서 이동휘 선생이 추천한 사람이 정재면 선생"이라며 "(명동촌 지도자들은) 얼마나 고민이 컸겠나. 대대로 신봉해 왔던 유교를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이 과정에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서 이분들이 개종을 결심했기 때문에 진짜배기 신앙이 되는 것이다. 껍데기가 아니"라고 봤다.

◇ "중국 애들하고 모여 일본 애들 때린 적 있어도 한국 애들끼린 안 싸웠다"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북간도 학교 옆에는 교회가 들어섰다. 기독교와 함께 새로운 교육이 시작되고, 그 뒤를 이어 서양 문물이 전해진 것이다.

그렇게 개신교와 민족운동이 손을 맞잡고 발전시킨 북간도 교육 환경은 항일 운동의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초석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는 근대식 교육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끈질긴 노력 덕이었다.

1931년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서대숙 미국 하와이대학교 명예교수는 "소학교 다닐 때는 우리 민족 학교를 다녔다. 한국말로 가르치고 한국말로 배웠다"며 "우리가 싸움을 할 때도 한국 애가 한국 애하고는 싸움을 안 했다. 싸움하면 중국 애하고 한국 애들이 모여서 일본 애들을 때릴 적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북간도의 학교는) 민족성을 강조하는 그런 곳이었다"며 "거기서 가장 정직하게 살아나가는 것이 기독교인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북간도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이 절실했다. 이는 뚜렷한 목표 때문이었으니, 바로 조국의 독립이었다. 북간도 명동교회에서 전도사로서 부흥회를 펼치던 시절 이동휘의 아래 연설을 통해서도 이는 단적으로 확인된다.

"우리가 여기 왜 왔습니까. 내 땅을 버리고 여기 왜 왔냐는 말입니까. 단지 먹고 살려고 여기 왔습니까. 아닙니다. 자리를 잡으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3천 개의 교회와 3천 개의 학교가 세워지면 조선의 독립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시 북간도 한인들의 자치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1907년 일제가 간도에 통감부 파출소를, 1909년 용정에 일본 총영사관을 세워 항일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면서 어려움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1907년 간민교육회를 시작으로 1913년 간민(자치)회를 거쳐 1919년 (간도)대한국민회라는 독립운동단체가 발전한다.

결국 북간도 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근대식 학교를 세운 데는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침으로써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겠다는 뚜렷한 의지가 뿌리내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 뜻대로 북간도에 있는 학교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해냈다.

서굉일 명예교수는 "북간도에 세워졌던 정동학교, 명동학교, 창동학교, 장동학교 등 모든 학교는 일반적인 교육기관이었다기 보다는 사관학교와 같은 성격을 가졌다"며 "이를 증명하는 하나는 그 학교에는 병식체조라는, 말하자면 군사훈련을 체육시간에 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을 때 그 음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군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거기에는 역사 교육이 굉장히 중요했다. 역사를 독립운동사만 가르친 게 아니라 월남망국사를 가르쳤다. 이태리 혁명사를 가르쳤다. 아메리카혁명사를 가르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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