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춘천 레고랜드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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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레고랜드 조감도. (사진=강원도 제공)

 

강원도민들의 재산이었던 강원도 춘천 중도. 1967년 12월 춘천 의암댐 건설로 형성된 인공섬으로 춘천 레고랜드 사업이 추진되기 전까지 춘천 시민은 물론 수도권 관광객의 휴식처이며 오토캠핑의 성지였다.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된 2009년에는 10월까지 입장객이 1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춘천 마임 축제는 물론 캠핑 페스티벌이 열리는 축제의 장소였고 어린이날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가족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2000년대말 중도는 개발 대상으로 지목된다.

중도 레고랜드 조성 계획은 2007년 12월 13일 사업 제안 접수를 시작으로 현장답사, 투자상담 등 검토 수준에 머물다 2010년 열린우리당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당선된 직후 추진이 결정됐다.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 멀린사가 중도 100년 무상임대를 요구하면서 강원도 재산관리의 효율성 문제가 대두됐고 중도 곳곳에 선사시대 매장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발굴 부담도 장애물로 거론됐지만 연간 200만명 이상 관광객, 일자리 1만개 창출, 지방세수 연간 50억원 이상 증대,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 등 기대 효과에 가려졌다.

초반에는 개발 과정에 혼선도 있었다.

이광재 지사는 2011년 강원CBS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이를 위해 남이섬에 버금가도록 춘천 중도에 대규모 꽃밭을 조성하고 각종 공연을 유치해 관광 명소로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레고랜드 추진계획을 세운 채 또 다른 자체 활성화 전략을 선택한 모양새였다.

2011년 1월 2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이광재 지사는 이날 대법원 3부가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지사직을 상실했다.

지사 자리가 공석이 된 뒤 레고랜드 추진 절차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고 춘천 중도는 사계절 꽃섬으로 조성하는 사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다시 레고랜드가 떠오른 계기는 2011년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이광재 동정론과 연계론'을 앞세운 민주당 최문순 후보의 당선이다.

이 전 지사의 주요 시책과 공약을 승계했던 최 지사는 2011년 7월 19일 다시 춘천 중도에 레고랜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2012년부터 공사가 시작되면 중도에 레고랜드를 2014년까지 조성해 개장하고 이후 2018년까지 상중도에 스파단지와 하중도에 레고랜드 공원, 해양스포츠단지, 콘도, 워터파크, 호텔 등을 건립하겠다는 구상이었다.

2300억원 공사비는 테마파크 주변 부지를 매각해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업 참여 주주간 이견 조율과 법률 검토, 민원 발생 등으로 사업이 지연돼 2013년까지 첫 삽을 뜨지 못하고 1차 개장 시기도 2016년으로 미뤄졌다.

공사가 늦어지자 각계의 우려도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이광준 춘천시장은 춘천 중도 레고랜드 코리아 추진 본계약 체결 유보를 공식 요청하고 나선다.

협약서 상에 레고랜드 진입 교량의 국비지원액과 지방비 부담액을 명시하지 않고 협약이 체결되면 중앙정부 지원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사업 추진에 큰 지장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로 인해 사업추진이 지연되면 강원도가 부담하게 될 손해배상도 문제지만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게되면 춘천시민들이 오랫동안 중도 관광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피해도 간과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강원도의회 강원도정 질문에서도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투자 계약 내용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됐다.

새누리당 곽영승 의원은 "금융조달, 기반조성 지원, 시공사 관리 등을 모두 강원도가 책임을 지도록 돼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6개월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멀린(레고랜드 운영사)이 계약을 종결할 수 있도록 계약에 명시돼 있다"고 지적에 나선다.

"손해 배상도 멀린사가 투자한 금액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까지 해주도록 돼 있다"며 "과거 알펜시아리조트가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투룬 골프사측과 맺은 계약을 노예계약이라고 비판했는데 이 계약은 더한 노예계약이 아닌가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최문순 지사는 "너무 걱정이 과잉인 것 같다. 멀린은 그 사업을 실패하면 안되는 기업이고 실패한 사례도 없다. 우리보다 선진국인 덴마크가 깊은 신인도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우리가 실패하라고 해도 실패하지 않는 기업이다. 자신있는 사업이라는 점 이해해 달라"고 비판 여론을 경계했다.

직접 운영과 관련해서는 "강원도는 그런 능력이 없다. 지금 알펜시아를 보면 알겠지만 도가 운영하는 것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멀린사는) 레고랜드 운영 전문회사다. 그 쪽에서 운영하는게 좋다.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기업유치의 기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사진=강원도 제공)

 

사업 성공 자신감 속에 최문순 지사는 2013년 10월 29일 존 어셔 영국 멀린사 레고랜드 개발사장은 강원도청 통상상담실에서 '레고랜드 코리아' 개발 본 협약(UA)을 체결했다.

2014년 7월 2일 존 야콥슨(John Jakobsen) 레고랜드 총괄사장, 존 어셔(John Ussher) 레고랜드 개발사장 등 멀린사 관계자와 시행사 엘엘개발, 강원도, 춘천시는 회의를 열어 레고랜드 코리아 공식 개장일을 2017년 3월로 결정했다.

준공은 계획대로 2016년 하반기로 정했지만 동절기와 시험가동 등을 감안해 개장시기를 미룬다는 입장이었다.

속도를 냈던 사업 준비는 예상됐던 암초를 만나며 표류하게 된다.

2014년 7월 29일 레고랜드 사업 부지 중도에서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시대 공동묘지와 2000년 전 조성된 마을 유적 등 선사시대 유적이 대규모로 발견된 것이다.

(재)한강문화재연구원 등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기관 5곳은 1차 문화재 발굴(면적 12만2천25㎡) 조사결과 고인돌 101기 등 총 1400여 기의 청동기 시대 유구(遺構)를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보존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두달 여간 이어진 문화재위원회와 레고랜드 추진단간의 고민 끝에 문화재 위원회 자문을 받아 지석묘(고인돌) 이전 보존과 집터를 둘러싼 환호는 매립, 성토 후 위치를 표시하도록 하는 유적보존방안이 조건부 승인되면서 사업은 재개됐다.

그러나 대규모 매장 문화재 발굴과 보존 대책을 수립하는데 2018년 10월말 기준으로 1230억원이 집행되고 착공 시기 역시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한쪽에서는 춘천 레고랜드 개발을 반대하는 모임이 구성돼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저지하는 대책위가 구성되는 등 주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춘천시민단체들은 경제적인 효과 근거와 감정평가 관련 내용, 투자계획, 교통영향평가 등이 비공개로 추진된다며 사업 추진 투명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투명해야할 레고랜드 사업은 내부 비리와 관리감독 부실로 얼룩지기도 했다.

2015년 7월에는 레고랜드 사업이 초반부터 금융조달, 기반조성 지원, 시공사 관리 등을 모두 강원도가 책임지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멀린(레고랜드 운영사)이 계약을 종결할 수 있도록 계약에 명시해 불공정 계약 시비가 제기돼 온 것과 관련해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감사에서는 공무원들의 비위 행위도 드러났다.

외국 출장 중 엘엘개발 고위 간부로부터 200만원씩을 받아 사적으로 사용한 파견 공무원 2명이 정직 처분 요구됐고 또 다른 도청 간부는 특정인을 위해 시행사가 개발 부지를 헐값에 처분하는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동조한 사실도 확인됐다.

또 다른 간부 2명은 지방의회 의결도 없이 시행사에 대한 강원도 채무보증 규모를 확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주의 조치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검찰은 춘천 레고랜드 시행사 엘엘개발을 압수수색해 고위 간부의 자본금 유용 의혹 수사를 시작했다. 횡령과 배임 고발도 이어졌고 관리 감독을 위해 파견한 고위 공무원이 엘엘개발 임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와 관련한 조사도 이뤄졌다.

사업 초기 테마파크 완공 시기로 못 박았던 2016년, 현실은 문화재 보존 대책 마련과 시행사 잡음 등으로 공사는 진척되지 못했고 사업부지 특혜 매각 논란까지 더해졌다.

강원도와 엘엘개발은 한 건설컨설팅업체에게 전체 레고랜드 사업부지를 사실상 수의매각인 '협상에 의한 매각'을 검토 중인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 5월 테마파크 시공사로 선정된 대림·SK건설·온터이앤씨 컨소시엄으로부터 추천됐고 사업부지를 매입해 자금을 마련, 테마파크 공사비 1500억원을 조달하면서 부지 전체 개발권도 요구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강원도나 엘엘개발이 공사비를 자체 조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계획대로 테마파크를 8월에 착공해 2018년 상반기에 개장하려면 의지를 갖고 있는 투자사가 아쉬운 상황"이라며 "감정평가업체 3곳의 평균가로 매각하고 협상과정에서 안전장치를 다각화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사정을 설명했지만 도의회 안팎의 비판 여론 속에 계획은 철회될 수 밖에 없었다.

주변부지를 매각해 공사비를 조달하겠다는 당초 계획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2016년 10월 7일 강원도는 두번째 레고랜드 코리아 기공식을 열기에 이른다. 강원도는 2014년 11월 레고랜드 코리아 기공식을 가졌다. 주한 외교 대표까지 참석한 기공식을 기점으로 도는 2017년까지 테마파크를 개장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2년, 강원도는 또 다시 춘천 베니키아 호텔에서 기공식의 이름만 바꾼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파크 착공보고회를 열었다.

관심을 받아야할 행사지만 한쪽에서는 도와 시행사인 엘엘개발이 지난 시간 사업 진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자인하고 도민들만 기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강원도는 2년전 기공식은 기반공사와 관련됐고 이번 착공보고회는 테마파크의 본격 착수를 알리는 자리라고 성격을 구분하면서도 시공사 재선정과 투자사간 갈등, 문화재 발굴, 사후관리 대책 수립 등으로 사업 추진이 다소 지체된 측면이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2018년 3월 14일. 7년째 표류하고 있는 레고랜드는 춘천시민사회단체 네크워크로부터 중단 요구를 받는다.

사업중단에 따른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레고랜드 운영사인 멀린이 출자한 돈이 50억원대에 불과한만큼 계약파기에 따른 배상액과 사업 대출비용 2000억원 중 사용비용 1200억원을 합쳐도 강행에 따른 손해보다 중단에 따른 이득이 크다는 주장이었다.

2018년 12월. 사업비 확보에 난항을 겪던 강원도는 추가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 멀린사에게 시행권을 넘기는 방안으로 사업을 재조정하는 대안을 모색한다.

2018년 12월 14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 강원도 권리의무 변경 동의안(이하 '레고랜드 동의안')이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강원도의원들의 찬성으로 강원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의안은 기존 엘엘개발이 직접 추진하던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을 멀린으로 사업 주체를 변경하는게 핵심이다.

여기에 테마파크 사업비용 예상액 2600억원 가운데 멀린이 1800억원을, 엘엘개발이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대출금 2050억원 가운데 800억원을 투자하는 권리의무도 담겼다.

반대 입장이던 한국당 원내대표 신영재 의원은 레고랜드 동의안 처리에 앞서 반대 토론을 통해 "강원도는 협약 발효일에 즉시 200억원을, 중요 계약 체결일에 나머지 600억원을 즉시 투자하도록 돼 있지만 멀린의 대응 투자 계획은 없어 결국 우리 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득에 나섰지만 민주당 다수의 도의회를 설득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진통 끝에 사업 주체가 변경된 지 7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춘천 레고랜드를 둘러싼 잡음은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춘천 레고랜드 사업 시행주체인 영국 멀린사는 현대건설과 시공사 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지난해 강원도, 강원중도개발공사(구 엘엘개발) 등과 시행 주체 변경 계약을 통해 사업 주도권을 확보한 멀린사는 시공 능력과 공사 금액 절충 등을 고려해 기존 시공사 승계 대신 신규 업체와의 계약을 확정한 것이다.

다시 공사가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정작 강원도와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지리한 법적 공방에 직면하게 됐다.

강원중도개발공사와 지난해 3월 시공 계약을 체결해 1년 넘게 기반 공사를 진행해왔던 STX건설은 계약 배제에 따른 2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손해 배상 등 법적 대응에 사실상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STX건설은 멀린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대로 이번 결정을 기존 발주처였던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계약 불이행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전망이다.

2018년 최문순 지사 3선 도전을 앞두고 빈 자리로 남아있던 시공사에 선정된 STX건설은 외상공사 조건까지 받아들이며 최 지사와 강원도에 힘을 실어줬던 조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법적 공방에 휘말리게 되면 시공사 재선정과는 별개로 공사중지가처분 소송 등으로 인한 공사 지연이 불가피하게 된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면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경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강원도 공무원들의 배임 문제도 불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낙관적 전망만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던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향한 정치적 책임론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법적 대응과는 별도로 지난해 멀린사와 총괄개발협약을 체결하면서 시공사 재선정 확정시 강원도가 추가 분담하기로 한 800억원 가운데 기존 지급 분담금 200억원을 외에 남은 600억원을 즉시 지급해야하는 조항도 있어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자본 잠식도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행 주체 변경 과정에서 예상됐던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도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것이 빌미가 된 것이다.

강원도청 안에서는 공직사회가 사업 검증 능력도, 체계적인 자본 조달 계획도 갖지 못한 채 낙관적 경제 효과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유재산 개발에 뛰어들었다 긴 시간 고초를 자초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도청 간부 공무원은 "레고랜드가 들어와 연간 200만명의 입장객이 온다해도 이것이 춘천시민들의 직접적인 삶의 질 향상에 어떤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라며 "28만명 춘천시민이 모두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만 하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공유재산만 100년 내어주고 주말 교통난만 겪고 레고랜드 비정규직만 양산되는 건 아닌지 씁쓸한 면이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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