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역대 대통령과 손정의…상상력이 운명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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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에 초고속인터넷 조언, IT강국 발판…MB는 재생에너지 권고 무시
이번엔 "AI 집중투자해야"…文, 동북아 전력·철도 등 통합의 상상력 제시

(사진=청와대 제공)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때의 일화를 익살스럽게 술회한 적 있다.

경제위기 탈출이 절박했던 김 전 대통령은 재일교포 3세인 손 회장에게도 자문을 청했다.

그런데 손 회장의 답은 좀 생소했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

박식하고 신 문물에 열려있는 김 전 대통령도 브로드밴드는 낯설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더구나 당시 국내에선 브로드밴드 보다 초고속인터넷이란 표현이 일반적이었다.

신중한 김 대통령은 함께 있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추가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게이츠 회장의 반응도 같았다. "100% 공감합니다."

그제서야 김 대통령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노라."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브로드밴드가 대체 무엇입니까?"

2011년 6월 손 회장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뒤 밝힌 에피소드다.

이 전 대통령도 세계적 기업가인 손 회장으로부터 '경제 살리기'를 위한 묘수를 듣고 싶어했다.

손 회장은 청와대 방명록에 'Renewable'(재생에너지)을 세 차례 반복해서 쓰고, 이 대통령에게 집중 투자를 권했다.

과거 김 전 대통령에게 권고한 것이 'IT 강국 코리아'의 씨앗이 됐던 성공 공식을 되살려 이번에도 삼세번 강조어법으로 훈수를 뒀다.

손 회장은 "한국은 태양광 분야에서 삼성과 LG가, 풍력은 현대가 치고 나가고 있는데, 한국의 성장세를 보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환경파괴 비판을 받는 4대강 사업에 몰두하면서도 표면상으로는 '녹색성장' 기치를 함께 내걸고 있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손 회장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물론 손 회장 조언대로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경제성장에 정말 큰 도움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2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놓고 온갖 부작용을 앓고 있는 '콘크리트 회색성장'이란 오명은 얻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손 회장이 4일 다시 청와대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AI),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AI 분야 후발주자라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과 5G 기술 등을 강점으로 거론하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이 손 회장의 조언을 실제로 국가정책에 얼마나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문 대통령이 '동북아 슈퍼그리드' 비전을 언급하며 동북아 철도, 에너지, 경제, 다자안보 공동체까지 연계한 것을 보면 이해도가 매우 깊은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북한까지 전력망을 연결해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로 손 회장이 개념을 제안했다.

유럽 통합의 단초가 됐던 석탄·철강 공동체처럼 국가 핵심 자원인 전력을 매개로 각국을 묶어세움으로써 항구적 평화의 발판을 만드는 원대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손 회장의 조언에 솔깃한 것이 문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도 손 회장 면담 당시 '고비 테크 프로젝트'(고비사막 태양광발전) 개념을 이해하고 "동북아 에너지 협력을 위해 한국은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능동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실행이 되지 않을 뿐이다.

역사에 가정은 소용없지만 이 대통령과 손 회장의 일화는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소한 경제 면에서는 아까운 혈세를 4대강에 쏟아 붓지는 않았을 테고, 외교안보 면에서도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동북아 통합의 첫발을 뗀 지도자로 기억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판문점 남북미 3자회동과 관련해 외교와 정치에서의 '상상력'을 얘기했다.

중대한 국면에서 난제를 돌파하고 역사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상상력은 담대한 실천력과 불가결한 관계임을 강조한 것으로 들린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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