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개봉일이 5월 30일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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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E&A 곽신애 대표 ①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바른손E&A 사무실에서 곽신애 대표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제안으로 우연히 영화 전문 월간지 '키노'의 창간 멤버로 합류했다. 그게 1995년이었다. 기자로, 마케터로, 프로듀서로, 제작사 대표로, 그 형태는 달라졌지만 영화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24년이 됐다.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분)처럼, 요맘때쯤엔 이걸 하고 다음엔 저걸 하자 하는 계획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영화판에서의 경험이 누적됐고, 그 시간이 쌓여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 개봉 22일 만에 872만 관객을 넘긴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을 제작한 바른손E&A의 곽신애 대표의 얘기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는 이름도 영화와 연관이 있다. 영문 이름을 SINAE로 쓰다가 자꾸만 잘못 불리는 일을 겪어서, 발음을 맞추고 의미도 생각해서 'CINE'(영화·영화관)라는 표기로 바꿨다. 처음엔 우스갯소리처럼 시작했지만, 어쩌다 보니 이탈 없이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도 아니고, 영화 작업을 총지휘하는 감독도 아닌, 가장 뒤편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지원하는 제작자. 그런 '제작자'인 자신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것을 보고 곽 대표는 무척 놀랐다고 털어놨다.

'기생충' 개봉 21일째였던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바른손E&A 사무실에서 곽신애 대표를 만났다.

곽 대표는 "20년 넘게 오고 보니 삶과 영화가 분리되지 않는 한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영화는) 이제 거의 삶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칸영화제 진출은 예상했지만, 수상까진 예상 못 해

곽 대표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칸 황금종려상 수상소감'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영화 최초로 받은 것이어서 더 주목도가 높은 게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곽 대표를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곽 대표는 수상 당시에는 오히려 너무 실감이 안 나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본인이 나온 영상을 찾아봤다고. "그때부터 민망함이 몰려들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터뷰를 하는 것을 두고도 "모든 멤버들 뒤에 있는 사람이 제작자인데, 너무 앞에 나서게 되는 바람에 부담스럽고 쑥스럽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이전에도 칸영화제에 자주 초청됐다. '괴물', '도쿄!', '마더', '옥자', 이번 '기생충'까지 총 3차례 칸의 초청을 받았다. 개봉 날짜를 정할 때 칸 일정을 고려 안 할 수 없었던 이유다.

곽 대표는 "칸에 초청은 받겠지, 하는 생각은 했다"면서 "개봉일 정하는 내부자들과는 '어쨌든 (칸에) 가긴 할 것 같다'는 가능성에 대해 공감대가 있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물론 수상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심사위원 성향이나 경쟁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칸영화제 일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개봉일을 정하는 작업엔 더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가 언제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곽 대표가 보기에 '기생충'은 여름·겨울방학이나 추석,설에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 남는 건 3, 4, 5, 10, 11, 12월 정도였다.

"이전에 개봉한 영화들 컬러를 보면 '요 시즌에는 요걸 봐준다, 혹은 요걸 봐줄 때가 됐어'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관객들도 '관람의 습관'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가을보단 봄이었죠. 3월에 할 거냐, 4월에 할 거냐, 5월에 할 거냐가 남았는데 가을엔 서정적인 영화가 잘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5월이 됐죠. 텐트폴* 아닌 영화에게 좋은 때이기도 하고요." (* 기자 주 _ 텐트 칠 때 세우는 지지대에서 나온 말로, 특정 시기를 겨냥해 나온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를 의미한다)

'괴물'에 이어 봉 감독의 천만 영화를 노릴 만큼, 많은 관객을 동원한 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흥행은 말 그대로 "하늘이 정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곽 대표는 평소에도 흥행 수치를 예측하거나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단다. 그보다는 "열심히 만들어서 열심히 풀어나가겠다"는 게 그의 방향이었다.

투자팀이 밝힌 공식적인 손익분기점 수치는 370만이었고, 넉넉하게 잡은 손익분기점은 400만 정도였다. 이 감독에, 이 배우에, 이 스태프에, 이 완성도를 포함하면 이 정도 제작비를 써도 손해 보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거의 두 배가 넘게 된 거니까 그냥 감사한 기분이에요. '이야~ 이게 웬일이야! 우리 관객들 짱이다!' 이런 생각 하고 있어요. (웃음) 숫자뿐만 아니라, 그 어떤 영화보다도 너무 적극적으로 봐주시는 것,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관객들끼리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이를테면 밥을 하더라도 그냥 '네' 이러고 먹는 사람보다, '진짜 맛있는데요? 뭐 넣었어요?' 하고 얘기해주면 기분이 되게 좋잖아요. 밥 한 끼 차릴 때도 이런데, 이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걸 그 많은 관객이 봐주시니 감동 그 자체죠."

◇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화라 걱정했지만…

곽 대표는 2015년 4월 15장짜리 트리트먼트 버전일 당시부터 '기생충'을 좋아했다. 2017년 12월 30일, 봉 감독으로부터 받은 완성된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다양한 효과와 음악이 입혀진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을까.

곽 대표는 "시나리오에 없는 것은 연기랑 미장센이지 않나. 그게 구현된 게(결과가) '아, 이거였구나!' 하는 게 좋았다. 시나리오의 이야기가 바뀌진 않았다. 캐릭터의 그 순간을 저런 얼굴과 저 표정, 저 감정으로 해냈구나 싶더라"라고 답했다.

시나리오 볼 때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았는데, 영화로 보고 나서 감탄했던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후반부, 기택 가족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서 빠져나와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가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에서는 짧게 쓰여있던 문장이, 화면으로 구현되니 달랐다. 물이 넘쳐서 기택네 집이 잠기는 장면은 시나리오에서도 강렬했지만, 끝도 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 터널을 지나치는 장면 등은 영화로 봤을 때 훨씬 더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는 게 곽 대표의 설명이다.

영화 '기생충'은 빈자와 부자 가족을 등장시켜 눈에 띄는 대비를 보여준다. (사진=㈜바른손E&A 제공)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 가족을 등장시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주인집의 와이파이를 훔쳐 쓰고, 피자 박스 접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꼽등이 퇴치를 위해 창문을 닫지 않고 소독차의 연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족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는 입주 가사도우미를 들여도 거뜬한 매우 넉넉한 집에 살며, 과목별로 과외 선생을 구하고, 채끝살을 곁들인 짜파구리를 먹는 가족이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느끼는 모멸감, 많은 돈을 소유하는 데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우월감을 세밀하게 담아낸 '기생충'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누군가는 박사장네가 너무 불쌍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기택네에 딱 붙어버린 지긋지긋한 가난에 고통스러워했다. 과연 누가 '기생'하고 있는지를 두고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된 '기생충'을 곽 대표는 어떻게 봤을까. 그는 비극이어서 더 좋은 영화도 있다고 생각했고, 같은 의미에서 '기생충'은 이렇게 끝나는 게 너무 맞고 옳다고 느꼈다.

곽 대표는 "저는 다 이해가 됐다. 되게 당연하다는 느낌이 드는 구조와 결론과 흐름을 갖추고 있었다"면서 "시나리오를 고쳐야 한다거나 그런 건 1도 없었다. 근데 이게 관객에게 낯설 수도 있었을 것 같긴 했다"고 말했다.

"되게 다른 기대를 가지고 갔다가 당황하기도 할 거 같았어요. 어디까지를 알리고, (관객에게) 어떤 영화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게 최적일지 그 고민이 되게 컸어요. 홍보사, 마케팅팀과 엄청나게 많은 얘기를 했죠. (웃음) 정말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제목과 카피부터 어떻게 할지 온갖 것을 펼쳐냈어요. 우리가 서로 뭘 걱정하는지 저절로 공감대가 생길 때쯤이 하나씩 픽스(확정)됐어요. 상의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봤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제일 어려웠어요."

◇ 곽신애 대표가 본 '창작자' 봉준호

곽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키노' 기자 시절부터 봉 감독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작자가 되고 나서도 변함없었다. 20여년간 팬심을 간직해 오다가 '기생충'으로 한 팀이 되었으니, 스스로를 '성공한 덕후'라고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멀리서 팬으로서 바라본 것과, 실제로 작업해 본 후의 모습은 어떻게 달랐을까. 곽 대표는 "작품으로 볼 때도 되게 이야기가 파워풀하고, 작품의 의미는 정말 선명하게 쥐고 드러내면서 유머도 있었다. 그게 다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단편 '지리멸렬'을 처음 봤을 때의 소감도 전했다. "너무 재밌고 희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세상에 봉준호라는 이름을 알린 작품 '살인의 추억'도, '괴물'도 보면서 충격을 느꼈다.

영화 '기생충' 팀 단체사진. 곽신애 대표는 배우 최우식과 현지소 사이에 있다. (사진=㈜바른손E&A 제공)

 

'기생충'을 하면서 곁에서 본 봉준호 감독은 곧 본인이 만드는 영화와 같았다. 또, 곽 대표는 봉 감독에게 단어를 붙이자면 '디테일'보다는 '배려'나 '성실'을 택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이 일해보기 전까지) 몰랐던 것으로 치면 '아, 이렇게까지 성실하구나.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실할 수가 있지?' 하는 게 제일 컸죠. 계속 고민하고 준비하세요. '이것까지 생각했단 말이야?' 했어요. 감독이면 굳이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을 것들을 했어요. 보통 제작의 회차를 짜는 건 조감독이 하고, 우리('기생충')도 그랬어요. 예산 고민은 프로듀서가 하죠. '내가 찍을 건 이거야. 넌 스케줄 짜고 넌 예산 짜, 땡!' 이런 식이 아니라 더 효율을 낼 수 있는 스케줄을 본인도 고민하는 거예요. 이 때 이 씬을 찍으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고요. 그럼 예산도 줄잖아요. 이건 일례일 뿐이고, 여기까지 하는 감독들이 있긴 하지만, (봉 감독은) 정말 매사에 그렇단 느낌을 받아요."

곽 대표는 바른손E&A 문양권 회장과 이야기하면서도 "봉 감독님은 천재인데 너무 성실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곽 대표는 "우리 나이에 일가를 이루면서, 아직 현역인 사람들, 퇴출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성실하신 것 같다. 보통 감독님들이 30대에 데뷔했다고 하면 15~20년은 해야 50대이지 않나. 지금도 현역 활동하시는 분들은 재능과 성실함 모두를 갖추신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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