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스토리] 플라스틱에 감춰진 파멸적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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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新 플라스틱 보고서 ⑬ 마지막 이야기>
[영상] 플라스틱 쓰레기 인포그래픽
요람에서 무덤까지, '플라스틱은 지옥이다'

생각하는 모든 형태의 물건을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천사의 능력.

난 지구상에 없던 존재였어. 인류는 자신들을 편의를 위해 싸고, 가볍고, 편리한 소재를 원했지. 많은 연구 끝에 벨기에 태생의 미국인 베이클랜드가 1906년 합성수지를 발명했고 그것이 나의 시작이야.

태어난 순간부터 축복받았어. 남녀노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서양인과 동양인 등 모든 곳에서 나를 원했어. 이때까진 거의 신이 내린 천사로 인식됐지.

인류는 내가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비포 플라스틱(BP : Before Plastic)과 애프 터플라스틱(AP : After Plastic)으로 구분돼. 신석기, 구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가 있었다고?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금은 '플라스틱기 시대'가 맞아.

BP 시절, 인류는 무거운 금속으로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고, 깨지기 쉬운 유리로 투명한 물건을 생산했어. 값비싼 소재로 옷도 만들었고 한번 쓰면 오랫동안 써야 된다는 인식도 강했고.

AP 이후 가볍고, 튼튼하고, 저렴한 나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류의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어.

플라스틱 용기에는 폴리에틸렌인 PE, 섬유에는 폴리프로필렌 PP, 사 먹는 생수에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PET, 스티로폼에는 폴리스티렌 PS 등 폴리로 시작하거나 폴리로 끝나는 소재에는 모두 내가 들어있어.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봐. 화장품, 스마트폰, 자동차, 옷, 포장용 비닐, 거기에 섬유유연제, 담배, 식품첨가제 등 생각지도 않은 곳까지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모든 곳에 내가 있을 거야.

흔히 내가 열에 약하고 잘 부서지는 열가소성 물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열에도 강해. 대표적으로 우주선, 인공위성 등에도 열경화성 물질로 사용돼. 주사기, 의료기기 등 위생적으로 사용되는 의료용품에도 빠질 수 없어. 사실상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나와 함께하는 셈이야.

어때? 내가 없으면 철기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지?

1950년대 100만 톤이던 전 세계 플라스틱 제품 제조량은 1990년대 들어 1억 만 톤을 넘어섰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2억만 톤을 넘겼고 현재는 약 3억만 톤에 달해. 수치에서 보듯 내가 태어나서 1950년대까지 사용됐던 양보다 지금의 한 해 사용량이 훨씬 많아.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들이 쌓여있다. (사진=이충현 기자)

◆ 천사에서 악마로, 플라스틱에서 미세플라스틱으로

요즘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 문제로 나를 악마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마이크로플라스틱은 내가 5mm 이하로 아주 작아진 상태를 말해. 분류하자면 처음부터 아주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진 1차 미세플라스틱과 버려진 후 아주 작은 알갱이로 부수어진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나눌 수 있어. 더 잘게 부서지면 나노 단위 이하까지 쪼개지지.

작아지더라도 가지고 있던 특성은 그대로야. 가볍고 잘 부수어지지만 잘 사라지진 않아. 물에 녹지도 쉽게 가라앉지도 않지. 작아진 나를 분리해서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어제 마신 생수에도, 지금 쓰는 화장품에도, 내일 숨 쉴 공기에도 내가 들어있다는 것이 확인됐어. 당신이 쉽게 썼던 만큼 삶 깊숙이 들어와 있어.

보이진 않지만 작아진 나는 생물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 세포벽을 찌른다거나 생물 체내에 쌓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 태생부터 환경호르몬 등 화학물질이 뒤섞여있는 만큼 나쁜 물질도 많아. 다른 바이러스를 옮기는 운반자가 될 수도 있고. 악마의 재능이 어디 가겠니?

뭐 사실 플라스틱 산업이 한창이던 1960년대 이미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논문이 나왔어. 하지만 당시 산업계에서는 플라스틱 붐이 일던 시기였지. 당연히 연구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어.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이었을 컸을지도.

2000년대 들어서 내 몸에 들어있는 비스페놀, 포탈레이트 등 환경호르몬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아졌고 동시에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조금씩 제기됐어.

2010년대부터는 포유류, 조류, 어류 등 동물이 폐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작아진 플라스틱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고.

최근 관련된 논의는 더 늘어났어. 특히 바닷속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야. 쓰레기가 된 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 쌓이게 돼. 그 과정에서도 계속 작아져.

바다에서는 작아진 내가 먹이로 착각될 때가 많아. 때로는 플랑크톤이, 때로는 물고기가 나를 먹어. 그 후 다시 상위 포식자가 먹지. 이게 먹이사슬에 쌓이게 되면 당신의 밥상에도 내가 올라가. 운이 좋으면 당신의 자녀한테도 가겠지.

이미 당신 몸에도 내가 들어가 있어. 당신의 소변과 대변에서 내가 검출된 지 오래야. 실험실 환경에서 내가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어.

미세플라스틱 분야 인체독성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인체에 영향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해. 어떤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특정한 오염조건에 노출돼도 암에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생기듯 미세플라스틱의 독성도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야.

미세플라스틱 단일 물질로 독성을 보일 복합물질로 노출됐을 때 독성이 다를 수 있어.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경고도 해. 체내에서 배출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도 있고.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해줄까?

현재 기술로는 20마이크로미터 아래로 작아진 나를 측정하기 어려워. 아직 인류의 과학기술이 분석할 수준이 안 돼. 나노 단위로 이하로 쪼개진 나의 위험성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야. 그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고 하더라.

이렇든 저렇든 내가 안 좋다는 이야기인데, 악마의 재능이 어디 가겠어?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이 논리적으로 봤을 때 미세플라스틱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이견이 없어.

물고기 배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 조각. (사진=그린피스 제공)

◆ 8000원짜리 굴국밥 한 그릇에 담긴 의미

대한민국 사람들은 수산물 많이 먹지? 굴 값이 싸잖아. 유럽에서는 귀한 음식인데 한국에서는 굴국밥을 먹지 않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해봤어? 남해안은 굴 양식을 하는데 아주 좋은 조건이야. 남해안에 스티로폼을 담그기만 해도 굴이 생기지. 놀랍지 않니?


그런데 그거 아니? 스티로폼도 플라스틱이야. 굴, 홍합, 김 등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부표 때문에 대한민국 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수치는 매우 높아. 바다에 밀려온 해초를 자세히 봐. 하얀 스티로폼 알갱이가 가득할걸? 느끼지 못했겠지만 백사장 어딜 가도 나를 볼 수 있어. 이미 관련 연구도 발표됐어.

스티로폼만 알갱이만 있냐고? 아니야. 해변에는 당신이 버린 내가 구석구석 쌓여 있어. 햇빛을 받아 색이 변하고 부서졌지만 누가 봐도 당신이 그냥 버렸던 내가 맞아. 그나마 유리는 날카로워 경각심이라도 느끼지만 난 그냥 스쳐 지나가지. 그냥 더럽다 정도?

그렇게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어. 그뿐이겠어? 산, 들, 강 어디에도 내가 있지. 북극의 빙하에도 내가 들어 있어. 남극 빙하에도 들어있지 않을까?

어제 분리수거를 잘해서 버렸다고?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않아. 태생부터 재활용이 안 되는 것도 있고 당신이 재활용을 어렵게 만든 것도 있어. 그러면 소각이나 매립을 해야 해. 소각이든 매립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독성을 가진 가스가 나와. 잘 썩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지? 최소 백 년이 넘어야 조금 썩을걸.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나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수출했지. 자국에서 처리 않고 다른 나라에서 처리하겠다는 심보야. 얼마 전 중국이 더는 폐비닐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분리수거 대란이 일어났던 일 기억하지? 아시아로 수출됐던 내가 돌아온 사례도 있어. 선진국에서 아시아 국가에서 내가 쓰레기로 많이 나온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자신들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경북 포항 구룡포 해수욕장에 밀려온 해초 위로 흰 스티로폼 알갱이가 가득하다. (사진=박기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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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선택은 자유일까? 필수일까?

듣고 보면 섬뜩하지 않니?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해. 나도 예전처럼 천사가 되고 싶어. 조금 덜 만들고, 불편하지만 덜 쓰고, 쓰더라도 잘 버리고, 버린 것을 잘 처리한다면 지금처럼 악마가 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그러지 않잖아.

누구나 이유는 있을 거라 생각해. 지금 행동하지 않더라도 당장 당신에게 피해는 없으니까.

기업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계속 만들어도, 소비자가 플라스틱을 마구 써도,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해도 당장 당신에게 피해가 없으니까. 뉴스를 봐. 미세플라스틱으로 고래나 새가 죽었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잖아.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 쓰는데 나 혼자 습관을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경제적으로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곧바로 현자타임에 빠지겠지. 미세먼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던 것과 달리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무덤덤한 게 그런 이유 아닐까.

어떻게 보면 나를 만드는 기업이 생각을 고치는 게 가장 중요해. 수도꼭지가 열려 있어서 집에 물이 샌다고 생각해봐. 제일 먼저 할 일은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잖아? 물이 새고 있는데 집 안에 있는 물을 치워내 봤자 다시 물이 차니까.

가끔 내가 친환경이라고 말해. 그렇다고 내가 환경에 완전 무해한 게 아니야. 일반 플라스틱보다 조금 더 분해가 잘 될 뿐이지. 미생물이나 벌레를 이용해 나를 없앤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미생물이나 벌레를 세상에 뿌려 놓을 수 없잖아. 부작용은 또 어쩌고?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야.

어쩌면 당신이 늙어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어. 어쩌면 당신의 자녀 세대에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고. 그래서 오늘 익숙하게 플라스틱을 쓰고, 내일 플라스틱을 버릴 거야. 당장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겠지.

싸서, 가벼워서, 편해서 천사로 생각됐던 내가 당신의 남은 삶을 비싸고, 무겁고, 불편하게 만들 악마로 변할 거야.

나는 계속 늘어나. 작아진 나의 수치도 계속 높아질 거야. 다음 세대는 당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고민을 해야 할 거야. 당신이 사용량을 줄이지 않는 한, 함께 행동하지 않는 한 인류를 지옥으로 안내하는 것이 내가 가진 악마의 재능이야.

그러니 비난하지만 말고 당신의 생활을 바꿔봐. 내가 천사가 될 수 있게.


부탁할게.

(2019 新 플라스틱 보고서 기획 끝)

<사진 자리>

2019 新 플라스틱 보고서
① [르포]CNN도 놀란 그 쓰레기산, 3개월만에 다시 가보니
② [팩트체크] 초대형 쓰레기섬보다 더 위험한 미세플라스틱
③ [팩트체크] 굴값이 쌀 수록 바다는 썩어간다?
④ [팩트체크] 미세플라스틱,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⑤ [팩트체크] 플라스틱, 담배·홍차·섬유유연제에도 들어있다?
⑥ [팩트체크] 종이컵, 플라스틱컵 보다 더 친환경적이다?
⑦ [팩트체크] 대한민국 재활용률 세계2위, 숨겨진 비밀
⑧ [팩트체크] 우리나라 재활용 신화 속 불편한 진실
⑨ [팩트체크] 쓰레기대란 1년, 더이상 대란은 없다?
⑩ [팩트체크] 미세플라스틱 피해, 화장품 규제만 하면 된다?
⑪ [팩트체크] 플라스틱 쓰레기문제 풀 새해법, 효과있나
⑫ [팩트체크] 400억 모금한 16세 소년의 꿈, 왜 좌절됐나
⑬ [노컷스토리] 요람에서 무덤까지, '플라스틱은 지옥이다' (끝)


플라스틱은 인간의 '일상'과 '일생'을 점령중이다. 플라스틱으로 지구는 멍들고 환경은 곪고있다. 최근엔 '미세플라스틱'이 인간 건강의 위험요인이 되고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CNN도 주목한 플라스틱 오염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플라스틱에 대해 무지하고 편견 속에 사로잡혀 있다. CBS노컷뉴스는 이를 바로잡아 플라스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팩트체크 형식의 '2019 新 플라스틱' 보고서를 연재한다.[편집자]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해당 기사는 '2019 新 플라스틱 보고서' 기획취재를 통해 취합된 자료와 전문가 의견을 통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된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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