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같은 판사들의 카톡방 뒷담화…"생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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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원 해결 지시 받았는데 문제의식 없이 수행
"부적절한 행위인줄 몰랐다"…뒤늦은 후회

양승태 전 대법원장퇴임식 자료사진. (자료사진=이한형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하거나 지시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법관들의 재판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 사회는 법관들에게 평범한 '직장인' 이상의 직업정신과 정의·공정성·독립성 등을 기대해왔지만, 재판에서 드러난 대다수 판사들의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5월 마지막 주(27~31일)에는 28일 하루를 제외하고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된 법관들에 대한 재판이 연일 열렸다.

이들 재판에서는 통상 40대 중반인 경력 15년 내외의 부장판사들이 '윗사람'의 지시를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무력하게 수용해 왔는지가 낱낱이 공개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재판에서 증거로 나온 법원행정처 심의관(부장판사 급)들의 2016년 단체 카톡방 대화 내용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모 심의관은 카톡방에 '판결문 공개하면 전관예우 사라진다'는 제목의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그러자 박모 심의관은 "정작 심결문을 전면 공개하는 특허심판원은 기술심리관과의 유착과 전관예우가 너무 심해서 작년에 청와대에 민원이 들어가는 바람에 저랑 최모 판사님이랑 며칠을 생고생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박 심의관이 말한 '청와대 민원'이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2015년 특허소송에 관한 것이다. 이들 부부는 '시술용 실 삽입장치'와 관련해 다른 의료기기업체와 특허분쟁을 벌이던 중이었는데, 특허청에서 파견 나온 기술심리관이 판사와 나란히 앉아 재판을 진행하는 등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박 대통령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이 민원은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과 곽병훈 법무비서관을 거쳐 법원행정처에 대한 지시로 이어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기술심리관의 법정 좌석 배치를 변경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김영재·박채윤의 소송 상대방 로펌이 특허법원에서 부당하게 사건을 수임하고 있는지 등 현황을 파악한 자료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장판사급인 행정처 심의관들이 청와대 보고를 위해 직접 특정 사건의 재판 '진행내역'을 취합·정리하는 일까지 했다.

박 심의관은 지난달 19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청와대의 민원은 '기술심리관 법정좌석 배치 변경방안 보고서'에 기재된 2015년 8월 청와대의 민원을 의미하는 것이 맞다"고 증언했다.

이어 "'생고생'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2015년 9월 하순경부터 (청와대 민원에 따른) 각종 자료를 취합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을 의미한다"고 진술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난데없이 특정 로펌의 사건 수임 현황과 승소율 등을 확인하고 기술심리관의 자리배치 문제를 검토하는 일에 동원됐는데도 독립성이나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카톡방에서 '뒷담화'를 하는 데 그친 것이다.

지난달 29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모 부장판사 역시 당시 윗선의 지시를 문제의식 없이 수행한 점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혔다. 최 부장판사는 2015년부터 2년간 헌법재판소에서 연구관으로 파견근무를 하면서 임 전 차장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전달한 인물이다. 검찰은 최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전달한 정보가 총 325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임 전 차장의 지시가 부당하므로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냐'는 검찰 측 질문에 최 부장판사는 "지금이라면 거절했을 것이다.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보다 앞선 지난달 23일 증인으로 나온 조모 부장판사도 비슷한 질문에 "부적절한 행위인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일본군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오직 사실과 법리에 따라야 하는 재판을 두고 '외교적·정무적' 이해관계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도 현직 판사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서울의 한 법과대학 교수는 "판사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재판부인 사법부에서 사실상 '윗사람'은 없다"며 "그럼에도 상사와 선배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눈치보게 된 조직문화가 사법농단이라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행정처의 특수성이 종종 변명거리가 되는데, 그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판사에게 요구되는 공정성과 독립성은 일반 행정분야 직원에 비할 수 없다"며 "많은 판사가 '그땐 몰랐다'는 것은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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