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0년째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장자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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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자료사진)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10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고 장자연씨가 생전에 남긴 이른바 '장자연 문건'의 일부이다.

배우의 꿈을 위해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힘없는 신인 여배우의 한 맺힌 절규였다.

장씨는 결국 이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났다.

장씨는 죽음으로 사회유력인사에 대한 성상납과 술 접대 강요 등 연예계의 비리를 고발했지만 숱한 의혹만이 제기됐을 뿐 진실규명이나 그에 따른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이번에 10년 만에 이뤄진 검찰 과거사위의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 결과 발표가 기대를 모은 이유다.

이번에야말로 진실 규명에 한걸음 다가감으로써 죽음으로 항변한 장씨의 한이 풀릴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검찰 과거사위가 13개월간 진행한 조사의 결론은 조선일보 외압 의혹 등은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성 접대 강요 등 핵심의혹에 대한 수사권고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성 접대를 받은 가해자 명단으로 추정됐던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장자연 문건을 직접 봤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조사단이 리스트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가 이런 식으로 결론 내린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특수강간과 같이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도 그것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발견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검경의 수사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경찰은 수사 초기 장씨의 주거지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지만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의 자필 다이어리, 수첩, 휴대폰, 컴퓨터 등을 가져갔고 디지털포렌식까지 했지만 수사기록에는 간략한 수사보고나 사건과 무관한 경찰 보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수사를 위해 중요한 장씨의 1년치 통화내역, 휴대폰과 컴퓨터, 메모리칩 등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결과 등은 자료로 남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매니저 유모씨에게 장씨가 사망 직전 보낸 문자메시지도 삭제된 것으로 알려져 진실 은폐 의혹까지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사위가 수사권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책임이 어디에 있든 이로써 장자연 사건은 이대로 묻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과거사위까지 수사권고가 힘들다고 결론 내린 사안에 대해 다시 수사하도록 힘을 불어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처벌도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계속될 수 있는가.

그 피해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여배우'였다는 점에서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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