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은퇴식' 이상화 "국민들 사랑받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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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행보는 미정…"당분간은 쉬고 싶다"
"포스트 이상화? 김민선을 추천"

'빙속여제' 이상화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공식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정들었던 스케이트화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15살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빙판에서 넘어지지 말자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17년이 지났다"며 "국민 여러분의 응원과 성원 덕분에 목표를 다 이룰 수 있었다"고 빙판을 떠나는 소감을 전하며 눈물을 보였다.

휘경여중 재학 시절 선배들을 따돌리고 태극마크를 단 이상화는 가파르게 성장하며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 자리로 올라섰다.

이상화는 첫 올림픽 무대였던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5위에 오르며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4년 뒤 밴쿠버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차지하며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써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안방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무대에서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며 변함없는 기량을 자랑했다.

은퇴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부상이 컸다. 이상화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도 국가대표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도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무릎이 문제였다"며 "마음과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는 더이상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팬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바람이다. 이상화는 "항상 '빙속 여제'로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며 "선수 생활은 오늘 마감하지만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이어 "국민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다. 많은 사랑과 응원 평생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기며 살겠다"고 작별을 고했다.


'빙속여제' 이상화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공식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다음은 이상화와의 일문일답

▶ 이상화 선수의 인사말

15살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던 날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팀 막내로 참가하게 돼 정신없이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다짐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17년이 지났다. 저도 이제 선수로서 여자로서 많은 나이가 됐다. 17년 전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뤄야겠다는 나만의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보유. 이 3가지 꼭 이루고 싶다고 마음먹었고,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국민 여러분 응원과 성원 덕분에 17년 전 세운 목표 다 이룰 수 있었다. 목표를 다 이룬 후에도 국가대표로서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힘입어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음 도전 이어갔다. 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무릎이 문제였다.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이런 몸 상태로는 더 이상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수술 통해 해결하려고도 했지만 수술 후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의사 말씀에 힘든 재활 및 약물치료만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다. 하지만 내 몸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스케이팅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한 채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국민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줄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었다. 항상 빙상 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비록 스케이팅 선수로서 생활은 오늘 마감하지만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개인적으로 노력하겠다. 이 순간이 지나고 당장 내일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걱정이 되지만 다른 일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고, 많은 사랑과 응원 평생 잊지 않고 가슴속에 새기며 살겠다. 그동안 감사했다.

▶ 은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들었다. 언제 은퇴를 결정했나?
= 사실 3월 말쯤에 은퇴식이 잡혀있었다. 막상 은퇴하고 은퇴식을 치르려고 하니깐 온몸에 와닿더라.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좀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재활을 병행했다. 근데 몸 상태는 나만 안다. 예전의 몸 상태로 올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지금 위치에서 마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케이팅을 하면서 내 목표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은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면서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당분간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 국가대표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 소치올림픽이다.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딸 것이라는 징크스가 있어서 저 또한 두려웠다. 그러나 그걸 이겨내고 올림픽 2연패를 했고 깔끔한 레이스를 펼쳐서 기억에 남는다.

▶ 올림픽 메달의 의미는?
= 밴쿠버올림픽 메달이 첫 메달이었다. 당시 3위 안에만 들자는 목표로 출전했지만 깜짝 메달을 따면서 금메달을 얻었다. 소치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계속해서 좋은 성적으로 2연패를 했다는 것 자체에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이번 평창올림픽 때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3연패라는 타이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겨내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부상이 4년 전보다 커지고 있었고 우리나라여서 긴장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평창 은메달도 색이 이쁘더라. 저에게는 다 좋은 메달이다.

▶ 고다이라 나오 선수와 은퇴에 대해 연락 나눈 것이 있는가?
= 지난주 금요일에 은퇴한다는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나오가 정말 깜짝 놀라면서 농담 아니냐고. 잘못된 뉴스였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더라. 상황을 보자. 일단락을 시켰다.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들에게 은퇴를 알리게 됐다.

▶ 은퇴 소식을 들은 부모님 반응은?
= 부모님은 계속 운동하는 걸 원하셨던 것 같다. 은퇴 날짜 잡히기 전에도 속상해하실까봐 말씀은 안드렸다. 저만큼이나 많이 섭섭해하실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잘하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나도 서운한데 부모님은 얼마나 서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차 제가 달래드려야죠.

▶ 제2의 이상화 꿈나무들도 많다. 지도자 계획은 있나?
= 은퇴를 계획했다면 평창 때부터 미래 계획을 했을 것이다. 평창 때 우승 목표로 임했기 때문에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다. 목표를 차근차근 세워가야 할 차례다. 은퇴함으로써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후배들을 위해 지도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이, 생각이 정리된 다음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 은퇴 결정 후 가장 큰 아쉬움은 무엇인가?
=겨울에 성적을 내기 위해 여름에 훈련한다. 3년간 캐나다에서 훈련했고 여름에 과정이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게 많았다. 비가 올 때는 인터벌을 하기 싫어서 비가 내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게 아쉽다.

▶ 팬들이 앞으로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
=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올림픽에서 어떤 선수로 남고 싶냐고 물었을 때 살아있는 레전드라고 했다. 그건 변함이 없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에 이런 선수가 있었고, 그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라고 기억해주셨으면. 안되는 걸 되게 하는 선수, 항상 노력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 고다이라 나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오 선수랑은 인연이 많다. 우정이 깊다. 아직 나오는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하던대로 했으면 좋겠다. 나가노 놀러 가겠다고 했다. 언제든지 오라고도 했다.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다.

▶ 베이징올림픽 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
= 베이징 올림픽을 간다면 그때도 부담감 속에 떨 것 같다. 항상 제가 1등만 하는 이미지인 것 같다. 2등만 해도 죄를 짓는 기분이라 평창 때도 힘들었다. 준비과정이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평창은 이렇게 준비했는데 결과 이렇게 나왔다. 참 힘들겠네요. (선수 아니더라도 갈 생각) 예를 들어 해설위원, 코치로 갈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로 참가하고 싶다.

▶ 고다이라 나오 선수 말고 기억에 남는 라이벌이 있다면?
= 2015~2016시즌에 중국 선수가 500m 강자로 떠올랐다. 이번엔 한중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지금처럼 2등 하던 상태가 아니라 번갈아 가며 1~2등 다투던 때가 있었다. 그때 목표가 세계선수권 우승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결국 제가 우승했다. 한중전과 이번 한일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 선수 생활하면서 고마운 사람들 많을 것 같다
= 초등학교 때부터 국대까지 도와준 코치 선생님들, 제가 금메달 따게끔 도와주신 분들이 많다. 소치부터 평창까지 같이해준 케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된다면 저도 캐나다가서 찾아뵙고 싶다. 한국에 계신 많은 코치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할 예정이다.


▶ 세계신기록이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이어지길 바라나?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 기록은 언젠가 깨지라고 있는 것. 지금 선수들 기량을 보면 많이 올라왔더라. 언젠가는 깨지겠지만 1년 정도는 유지됐으면 좋겠다.

▶ 국가대표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면?
=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힘들었다. 어떻게 주변 신경을 안 쓰고 제 일에 매진하겠다. 많이 힘들었고 부담이 많았다. 꼭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계속 식단 조절도 해야 했고 남들 하나 할 때 저는 두 개를 해야 했다. 모든 걸 자제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제가 혼자 해야 한다는 게 많이 힘들었다.

▶ 포스트 이상화가 나온다면 어떤 선수가?
= 김민선 선수 추천해주고 싶다. 나이 어리지만 정신력 많이 성장한 선수다. 저 어렸을 때 모습과 흡사. 평창 때 같이 방을 쓰면서 어린 선수가 '언니 떨지 말라'고 해줘서 대견스러웠다. 신체 조건을 잘 갖고 있다. 500m뿐만 아니라 1000m까지 연습해서 500m 최강자가 되는 것 보고 싶다.

▶ 최근 연예 소속사랑 계약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 아직 향후 계획은 없다. 연예 소속사라 해도 스포츠 선수도 많다. 거기에 어울려서 친분을 두텁게 하고 싶다.

▶ 선수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나?
= 평창올림픽 앞두고 제일 힘들었다. 링크장에 나가면 선수들이 받는 느낌이 있다. 평창에 넘어가기 전에 독일에서 나름대로 최고 기록을 세우고 갔는데 느낌이 조금 다르더라. 한편으로는 메달을 못 따면 어쩌지라는 걱정했다. 잠을 편히 자고 싶었지만 1등을 꼭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서 힘들었다.

▶ 현재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 잠을 편히 자고 싶다. 평창 끝나고 알람을 끄고 생활한다고 했는데 그게 하루 이틀밖에 못 했다. 은퇴식을 앞두고 마음이 힘들고 착잡했다. 이제는 은퇴 발표하면서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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