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다음날, 북한 주석궁에서 비밀회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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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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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비밀 정보문건으로 본 광주 북한군 개입설 팩트체크
북한군 침투 계획 논의 되지 않아…北 '일단 지켜보자'

일단 제목만 보고 오해는 하지 말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북한 평양의 주석궁에서 비밀회의는 열렸지만 광주에 대한 북한군 침투 계획 등은 논의되지 않았다. 북한 수뇌부의 결정은 '일단 지켜보자'였다.

1980년 5월 29일 미 국방정보국(DIA)가 작성한 첩보보고서. 5.18 다음날인 5월 19일 북한 주석궁에서 김일성 당시 주석이 주최하는 비밀회의가 열렸다고 전하고 있다. (자료=팀 셔록 정보공개문서)

 

근거는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1980년 5월 29일 작성한 '광주사건과 관련한 북한의 의도/인식'이라는 첩보 보고서(3급비밀/confidential)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탐사전문기자 팀 셔록이 미 정부로부터 정보공개청구로 받아낸 3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문건 중 하나다.

이 첩보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5월 19일 북한 평양의 주석궁에서 비밀회의가 열렸다. 김일성 당시 주석이 주재한 회의에는 오진우 당시 인민무력부장 등 수뇌부들이 참석했다.

회의석상에서는' 한국에서의 소요사태(광주)'에 대한 북한의 향후 행동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비밀회의에서 북한 수뇌부들은 "광주에서의 소요사태가 전국적인 대중 반란(revolt)으로 이어진다면 남한 침공을 회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DIA보고서는 그러나 "한국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준비를 하는 특이, 중대한 활동들은 포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군 측에서도 80년 5월 당시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보고서를 보면 북한 수뇌부는 광주 항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면서, 이것이 전국적 봉기로 퍼져나갈 경우에 개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광주 상황에는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왜 그랬을까.

◇ CIA "북한 섣불리 움직이면 전두환 행동 정당화 시킬 것 우려"

북한이 광주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본 이유를 분석하고 있는 1980년 6월 5일자 CIA 보고서 (자료=CIA 비밀해제문건 자료실)

 

그 이유는 지난 2005년에 비밀이 해제된 1980년 6월 5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극비문서(top secret)에 설명돼 있다. 해당 문서는 향후 90일 이내 발생할 수 있는 대외 위험요소 10가지를 분석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제시된 것이 당시 한국의 광주 상황과 관련된 것이었다.

해당 문건은 '북한의 의도'라는 소제목 아래, "평양이 지난 한 달 동안 계속해서 불개입 선언을 반복하고, 의심스런 군사 이동을 피하는 이유는 전두환이 '북한의 위협'을 들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오판 가능성'이라는 소제목 하에서는 "폭력시위가 발생하고 이것이 지금까지는 조용했던 지역으로까지 번진다면, 김일성은 대규모 간첩과 게릴라를 침투시키는 1966-68년의 무장 투쟁 전술로 회귀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광주 상황이 전국적으로 번지는지 여부를 지켜보고 개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앞서 미 DIA 첩보보고와 견해가 일치한다.

◇ 계엄당국 배포한 광주상황 개요 자료에도 북한군 언급 없어

1980년 6월 2일 미 국방정보국이 한국 국방부가 광주상황을 설명하는 배포자료를 본국에 보내면서 작성자가 "자료가 편향되고 다소 왜곡돼 있다"고 해석에 주의를 당부했다. (자료=팀 셔록 정보공개문건)

 

흥미로운 부분은 1980년 5월 26일 한국 국방부가 주한 외국대사관의 무관들을 대상으로 "일부 외국 통신사의 왜곡된 보도에 오도되지 않고 사태의 실상을 알도록" 배포한 '광주에서의 시민소요 개요' 자료에서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다만 4페이지짜리 영문 자료에서는 "80년 5월 22일 15시쯤 광주 시위대가 여성 2명을 포함한 적(북한) 간첩 5명을 붙잡아 계엄 당국에 넘겨줬다"는 부분과 "5월 23일 오전 6시 15분쯤 서울역 인근에서 북한 간첩 1명이 붙잡혔다"는 부분이 나온다.

같은 해 6월 2일 미 DIA는 이 자료를 첩보보고 형태로 본국으로 보내면서 작성자의 의견을 특별히 첨부했는데 "이 자료는 일방적인 것이며 다른 수단으로 입수한 정황을 다소 왜곡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계엄 당국이 직접 작성한 상황 설명자료에도 북한군 600명 침투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 더러, 미 정보당국은 서울에서 북한 간첩 1명이 체포되고, 광주에서 간첩 의심인물 5명이 인계됐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 30년전 美 '광주백서', "북한 위협 징후 없었다" 결론

사실 팀 셔록 기자가 공개한 미 국무부와 중앙정보국, 국방정보국 등 수천 페이지의 문서 가운데는 80년 5월 당시 북한의 특이 동향이 없었다는 내용이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정리해 1989년 부시 행정부가 작성한 광주백서에는 "(백서가) 다루는 기간 동안 미국은 북한의 위협 징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바 없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80년 5월 13일 전두환을 만난 뒤 "전두환이 북한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청와대 입성을 위한 포석에 불과할 뿐이라고 본국에 보고했다"고 백서는 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군 광주 침투설은 이미 30년 전에 미국이 '사실무근'이라고 판정한 사안이다.

◇ 팀 셔록 "아직 미공개 자료 더 있어...한국 정부차원에서 요청해야"

미국의 탐사전문기자 팀 셔록 기자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특파원을 만나, 자신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3500페이지에 달하는 광주관련 미 정부의 문건에서 북한군 광주 침투설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팀 셔록 기자는 CBS노컷뉴스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입수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문건 중에 북한군 개입과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CIA 비밀해제 문건에서도 (광주 상황이 전국으로 번질 경우) 북한군이 개입할 가능성을 분석해 놓았을 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모두 전달했다"면서 "해당 자료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조속히 온라인에 공개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셔록 기자는 또 자신이 정보공개를 통해 입수할 수 있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 측의 자료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고 한국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미국 정부에 자료를 요청해 남아있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자신의 회고록 집필을 위해 CIA 등에 요청한 자료가 있는데 미국 정부는 그 자료를 내게 공개하기를 거부했다"면서 "그 내용에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측에 자료를 요청하고 분석해야할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현재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 3명 중 2명이 자격 미달로 논란이 일면서 아직 발족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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