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장악은 성관계가 주 방법" 10년전 폭로도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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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스포츠계 성폭력 대책, 10여년 전과 같다?
이번 대책, 2008년 체육계 성폭력 대책과도 판박이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난해 1월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영구제명을 논의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과정의 문제가 발견돼 무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해당 징계를 최종 확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피해 폭로 이후 체육계 전반에 숨어있던 성폭력 범죄가 모습을 드러내고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폭로 하룻만인 9일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고 15일에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런데 문체부의 대책이 10년 전과 같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문체부가 마련한) 대부분의 대책이 사실 10여년 전 다 나와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렵게 용기를 낸 심석희 선수의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이미 답은 다 나와 있었던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진=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페이스북 캡처

스포츠계 성폭력을 막기 위한 문체부의 대책, 정말 10년 전과 같을까?

◆ 스포츠계 성폭력 대책, 10년 전과 대동소이

10여년 전에도 스포츠계 성폭력의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났던 적이 있다. 2008년 2월 11일과 3월 17일 방송된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시사기획 쌈-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보고서'가 시작이다. 방송에서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고, 성폭력이 은폐되는 과정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진=2008년 방송된 <시사기획 ‘쌈’-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보고서 1부> 캡처

당시 성폭력 피해를 겪은 학생운동선수의 가족으로부터 "합숙소에서 저녁마다 하나씩 끌려갔다"며 "(선수들이) 잠을 못 자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손을 다 묶고 있었다고 한다"는 증언이 나와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외에도 "지도자들 사이에 여자를 장악하려면 다 건드리라는 말도 있었다", "선수 장악은 성관계가 주 방법" 등 감독들 사이 오간 충격적 발언이 보도돼 분노를 샀다.

방송 일주일이 지난 2008년 2월 18일, 문화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 대한체육회는 관계 기관(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등)과 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이 만들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인권위는 2008년 11월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중·고교 학생선수의 학습권, 폭력, 성폭력 실태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조사 결과, 전체 학생의 78.8%가 폭력을 경험했으며 전체의 63.8%가 성폭력 피해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력 피해 중에서는 언어적 성희롱이 58.5%, 강제추행이 25.4%, 강간 및 강제적인 성관계 요구가 각각 1%와 1.5%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이런 인권 침해의 구조적 원인으로 '엘리트 체육의 경쟁주의, 승리주의 가치에 내재된 남성적 문화와 폭력 허용 문화' 등을 꼽았다.

인권위는 이를 바탕으로 2009년 3월 <스포츠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스포츠 인권교육, 피해자 지원 체계 구축 방안, 스포츠 지도자 임용 및 자격 강화 방안 등의 정책제안이 담겼다. 2년 후에는 이를 발전시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도 제정했다.

2008년 대한체육회 등이 만들었던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과 이번 문체부의 대책.

최근 문체부 대책 중 성폭력 가해자를 국내외 체육단체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거나, 국내·국제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해 성폭력 가해자의 '영구 제명'을 확실히 할 장치를 만든 것은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다.

하지만 문체부가 발표한 대책 대부분은 10여년 전 나왔던 사항과 비슷하다. 체육계 성폭력 가해자 영구 제명, 고충상담 창구 설치, 훈련체계 개선방안 마련 등은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방안'에서 이미 논의되었던 내용이다. 체육단체 규정 정비와 실태조사, 외부참여형 위원회 구성, 인권상담사 상주와 성폭력 지원전담팀 설치 역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에 담겨 있다.

문체부는 왜 10여년 전에 발표된 대책을 되풀이하게 됐을까.

◆ 스포츠 성폭력 근절방안, 유명무실했다

과거 대책의 주요 내용은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위원회 구성 ▲체육단체 내부 규정 정비 ▲훈련체계 개선 등이다. 그러나 정작 대책 이행은 미흡했다.


성폭력을 저지른 지도자를 '영구제명'하겠다는 지침은 유명무실했다. 손혜원 의원실이 입수한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신고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4~2018년 동안 지도자가 선수에게 성폭력을 가한 15건 중 7건(46.7%)에 대해서만 '영구제명' 조치가 이뤄졌다.

규정상으로도 성폭력은 '원스트라이크 아웃'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성폭력이 있었어도 '(일정 기간)자격정지'가 4건(26.7%), '처분 대상 아님(미등록 지도자)' 2건(13.3%), '무혐의 징계없음' 2건(13.3%), '민원 취하' 2건(13.3%)의 처분만 있었다.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성추행을 저지른 경우에는 3~5년의 자격정지 징계로 그칠 수 있다.

성폭력 신고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체육회의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대표 선수의 1.7%(10명, 13회)가 최근 1년간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일반 선수 중에서는 5.4%(58명, 117회)가 성폭력 피해를 보고했다. 종합하면 한 해 68명·130회의 스포츠 성폭력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반면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에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접수된 성폭력 신고는 27건으로 한 해 평균 5.4건에 그쳤다. 그마저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조사했다는 보도가 이어져 공분을 샀다.

성폭행 피해를 고발한 전 유도 선수 신유용씨도 "(성폭력) 제보 이후에 적절한 보호 조치는 마련되지 않은 채 제보만 받겠다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며 제보 자체가 힘든 환경을 비판했다.

체육시민연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신고 센터만 만들 게 아니라 제3의 기관에 감사를 맡겨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선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코치와 감독,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폐쇄적인 합숙소와 훈련장,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묵인, 방조, 심지어 공조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스포츠계 성폭력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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