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 사람 '의사'에게 수백만 시민들이 위로받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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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 칼럼]

4일 오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강북삼성병원 제공)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의사가 숨진 사건으로 정신질환자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10여 년 전의 한 남자가 기억났다.


그 남자는 정신질환이 있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5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 술에 취하면 아버지를 죽이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집에는 아버지와 아들 둘만 살았다. 아내는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살 수가 없어 두 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와 시내에서 식당일을 하며 살고 있다.
50대 아들이 낫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날 밤, 사촌들이 달려와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이튿날 정신병원 직원과 경찰이 들이닥쳐 그를 데려갔다. 그리고 동네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6개월 후 그가 돌아왔다. 어느 일요일 오전 길목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는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었고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말끔한 얼굴로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정신병원에서 6개월 간 치료받고 난 후 그의 변모된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가을날, 그 남자가 술에 취해 골목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얼마동안 평상심을 유지했지만, 서서히 정신질환이 도진 것이었다. 그는 홀로 방치된 상태였다. 그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없었고 지속적으로 상담과 약물처방을 해줄 병원도 없었다. 제 발로 찾아갈 곳조차 없어 보였다. 그즈음 나는 직장 때문에 그 남자가 살던 동네의 전원주택을 팔고 시내로 이사를 나왔다. 그 남자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숨진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의 유족과 동료들이 보여준 정신질환자에 대한 걱정과 우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점 등을 접하면서 한층 이해가 쉬웠던 것은 아마도 10여 년 전 같은 동네 살면서 지켜본 알코올 중독자 때문인 것 같다.

고인의 발인식 날 '올바르게 살아줘서 고맙다'며 아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어머니와 '오빠와 같은 이 분야의 사람들은 자신의 진료권 보장도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질환을 극복하기를 동시에 원한다고 생각한다'는 여동생의 말에 시민들은 숙연할 수밖에 없었다. 칼을 휘두른 정신질환자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동료교수들은 '정신질환의 관리책임은 사회와 국가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더는 개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저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정신질환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의료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퇴원한 환자 대부분이 정신질환자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퇴원 후에도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퇴원한 정신질환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내가 10여 년 전에 보았던 50대 알코올중독 정신질환자의 고통과 슬프고도 처연했던 일상이 지금도 똑같다는 것 아닌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진료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라니. 낫을 들어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정신질환 알코올중독자인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다시 병원으로 갔을까. 아니면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며 지옥 같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을까. 숨진 유 교수가 우려하고 걱정한 것이 바로 이 남자처럼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이었다.

시민들은 임 교수가 악조건 속에서도 정신질환자의 진료에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도 정신질환자의 편에 서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무엇보다도 유가족이 정신질환자의 칼에 찔려 숨진 고인의 뜻을 따라 정신질환자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받는 데 써달라며 조의금을 기부했다는 소식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험한 세상,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지만 등불 같은 의사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에 시민들은 위로 받았다. 한 사람의 의사로 인해 수백만 명의 시민들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것 뿐 아니다. 공감하고 지지하고 사랑하게 만들었다.

10여 년 전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50대 정신질환 알코올중독자가 궁금하다. 그 동네로 가려면 승용차로 30분을 달리면 된다. 그를 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이 역시 한 사람의 '의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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